홍길동전.전우치전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7
김현양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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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은 딱딱해. 재미없을 거야, 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편견이다.
그리고 고문이라고 하면 시험 공부, 골치 아파, 라고 생각하는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고등학교 때 배우던 고문을 떠올리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시험을 위한 책읽기는 고문 아닌 고문이었으니까. 글의 주제가 뭔지, 그 단어가 비유하는 게 뭔지 등등을 달달 외던 기억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으니까. 그래서 문학동네에서 고전문학이 새로 편찬되어 나왔을 때 흥미가 가기도 했지만, 손이 쉽사리 나가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지금껏 나온 책 중에서 어떤 책을 고를까 하다가 제일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먼저 골랐는데, 바로 이 책이 그것이다.

서자로 태어나 왕이 된 남자, 홍길동

홍길동전을 안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나도 어린 시절 어린이용으로 각색된 홍길동전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림책이긴 했는데, 그림이 아니라 인형을 사용한 사진으로 구성된 책이었던 기억이 나지만 워낙 오래되어서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어린이용이다 보니 내용이 홍길동의 영웅적인 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이번에 완역 홍길동전을 본 것이 처음이라서 그런지 때때로 생소한 홍길동의 모습을 만나 볼 수 있었다.

홍길동전을 떠올리면 이런 것들이 생각난다. 신분계급사회에 맞선 남자,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던 의적 등. 물론 이것이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완역 홍길동전을 읽으면서 이제까지 생각하던 홍길동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일단 홍길동의 전 생애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내가 아는 홍길동전의 내용과 달랐다.

서자로 태어나 호부호형도 허락되지 않았고, 과거 시험 응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데다가 아비의 첩에 의해 죽임을 당할 뻔한 홍길동은 세상에 대해 일종의 울분을 가지고 있었다. 어미의 곁을 떠나 도적떼의 수령이 되고, 도술을 이용해 해인사에 침입해 재물을 몽땅 훔쳐 오기도 하고, 임금을 희롱하기도 하며, 탐관오리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나라에서 그런 홍길동을 그냥 놔둘리가 없다. 형인 인형은 자신의 가문과 나라를 위해 홍길동을 잡아들이기로 한다. 

하지만 홍길동은 도술을 이용해 오히려 왕을 농락한다. 결국 자신이 원하는 병조판서 지위를 손에 넣고, 호부호형을 허락받은 홍길동은 조선을 떠나 제도로 향하고 결국 율도국을 공격해 율도국의 왕이 된다. 그후 신선이 되는 것으로 끝난다.

홍길동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다 이루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싶었던 욕망, 벼슬을 하고 싶었던 욕망은 서자로서는 이룰 수 없던 꿈이었으니까. 게다가 한 나라의 왕이 되기까지 한다. 당시 조선의 신분제도아래에서는 입밖에도 낼 수 없던 꿈을, 홍길동은 당시 서자들을 대신해서 이룬 것이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서출들의 로망을 담고 있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도술로 세상을 희롱한 남자, 전우치

전우치전은 얼마전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내가 전우치전을 읽은 것은 요번이 처음이다. 영화도 보지 않았으니 내용을 전혀 모르는 상태로 읽었는데, 홍길동전보다 더 재미있었다고 할까. 여우에게서 빼앗은 호정과 천서로 갖은 도술을 익힌 전우치의 모험담이 스피디하게 전개된다.

캐릭터 역시 홍길동보다 더 장난스럽다고 해야 할까. 그가 도술을 이용해서 양반을 농락하고, 임금을 희롱하고, 중들을 골탕먹이는 장면을 보면서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나왔다. 도술도 어찌나 다양한 것을 사용하는지...

전우치전은 홍길동전과 비슷한 얼개를 가지고 있지만 전우치의 캐릭터나 전우치가 벌이는 일들은 오히려 홍길동보다 더 유쾌하고 재미있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홍길동전의 결말부와는 달리 전우치는 결국 서화담과의 도술 겨루기에서 패한 후 스스로 인간 세상을 등진다는 것이다. 홍길동이 자신이 반항해왔던 계급 사회의 제일 우두머리가 되어 세상을 떠난 것과는 결말부가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좀더 가벼운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전우치쪽의 결말이 더 마음에 든다는 것도 사실이다.

도술이란 것을 사용하여 자신이 살던 사회에 대항했던 두 남자 홍길동과 전우치의 이야기는 무척 유쾌하고 즐거웠다. 한국형 판타지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작품들은 요즘 판타지와는 달리 전개가 무척 빠르다는 것도 흥미롭다. 즉, 쓸데없는 이야기가 전혀 들어있지 않다.

이 책 뒷부분에는 원본 홍길동전과 원본 전우치전이 실려 있다. 번역본과 원본이 한 권에 동시에 실려 있으니 번역본을 먼저 읽고 원본을 읽으면 원본의 내용이 쉽게 이해된다. 아마 원본만 있었더라면 눈이 어질어질해서 얼른 덮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번역본과 원본을 함께 보니 더욱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무척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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