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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아버지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4
존 버닝햄 지음,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1995년 9월
평점 :
우리 할아버지. 원제는 Granpa이지만 그냥 할아버지가 아닌 우리 할아버지란 표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물론 영어권에서는 자신의 할아버지에게만 Granpa란 표현을 쓰니 굳이 앞에 소유격이 들어가지 않아도 자신의 할아버지임을 표현하지만 우리말에서는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께 모두 할아버지란 표현을 쓰니 이렇게 우리라는 말이 없다면 누구네 할아버지?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 할아버지라는 단어가 더욱더 따스하게 느껴진다.
표지의 파란 하늘, 연두색 풀밭. 작고 귀여운 마차를 타고 가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모습이 무척이나 다정하고 행복해 보인다. 이 세상 부러울 것이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할아버지와 손녀. 두 사람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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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팔을 벌리고 손녀를 기다리는 할아버지와 두 팔을 벌리고 할아버지에게로 달려가는 소녀. 두 사람의 얼굴에는 행복한 표정이 가득이다. 우리 꼬마 아가씨 잘 지냈니?란 표현 하나에는 할아버지의 사랑이 고스란이 담겨 있다. 지금 이 순간 이 말외에 무슨 말이 필요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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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꽃씨를 뿌린다. 때로는 서로에게 하는 말이 동문서답일때도 있지만 한 공간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무며 꽃씨를 심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모습이 참 정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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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손녀는 때로는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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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손녀의 인형놀이 상대를 해주시기도 한다. 그렇게 정다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서로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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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날에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해주시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맑은 날이든 비가 오는 날이든 언제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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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손녀와 할아버지가 늘 다정한 사이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무례하게 굴기도 한다. 손녀에게 서운함을 표시하는 할아버지의 말과 등을 돌리고 서계신 모습에 짠해진다. 그저 세대차이라고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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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손녀는 할아버지 말씀에 반박하기도 한다. 자기 일에 열중하면서 말이다. 할아버지의 말씀에 장단을 맞춰주기엔 너무 어린 나이라 너무나도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손녀의 모습에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머쓱함을 느끼실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괜시리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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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역시 해변에 가야지. 모래 사장위에서 모래 장난을 치는 손녀와 의자에 앉아 편안히 주무시고 계신 할아버지의 모습. 이보다 더 평화로울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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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할아버지는 늘 할아버지였을 거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때의 모습밖에 볼 수 없었으니까. 할아버지도 그 언젠가는 아기였고, 소년이었고, 청년이었고, 아빠가 되었고, 그후에야 할아버지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손녀에게는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다. 아마도 언젠가 손녀가 할머니가 될 날이 오면 그때의 할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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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작은 배를 타고 낚시를 하러 간다. 알록달록한 단풍, 작은 배. 아무것도 잡히지 않아도 즐거울 것만 같다. 손녀는 고래를 낚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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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시간이 흘러 겨울. 겨울엔 역시 썰매를 타야지. 하지만 할아버지의 연세에는 얼음이 너무나도 미끄럽다. 그래서 이때만큼은 할아버지가 손녀를 부축하는 것이 아니라 손녀가 할아버지를 부축하고 도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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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할아버지와 외출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무릎담요를 덮고 앉아 계신 안락의자옆 테이블위에 보이는 약병이 할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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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할아버지는 손녀를 무릎위에 앉히고 함께 티비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가진다. 언젠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아프리카에 가자는 약속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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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제 저 안락의자에 앉아계신 할아버지를 더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늘 저곳에 앉아 손녀를 반겨주시던 할아버지는 더이상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슬퍼하지는 말자. 손녀에게는 할아버지와의 기억과 추억이 한가득 남아 있으니까. 그것은 언제까지나 지워지지 않을, 잊혀지지 않을 따스한 추억이니까. 당장은 슬퍼도 나중엔 아련한 그리움이 될 것이다.
첫 장면을 보고서 우리 외할머니가 떠올렸다. 지금은 서른이 넘은 손녀인 나를 만날 때마다 늘 꼭 끌어 안아주시면서 얼굴에 뽀뽀. 그리고 우리 강생이, 이쁜 강생이라고 하신다. (강생이는 강아지의 경상도 사투리)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라 머쓱하기도 하지만, 그게 할머니의 애정 표현이니까 지금은 스스럼없이 나도 잘 받아 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어린 나이에는 쑥스러워하기도 했지만.
할아버지와 손녀에 관한 이야기니까, 나도 내 할아버지 이야기를 조금 언급해볼까 한다. 나는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내가 6살무렵에 돌아가셨으니까. 게다가 외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셨기에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평상침대 위에 누워 계신 모습 뿐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장례식.
그렇다면 친할아버지는? 애석하게도 친할아버지와도 그다지 다정한 시간을 보낸 기억은 없다. 난 수많은 손주들의 하나였고, 또 할아버지께서 무척 무뚝뚝한 분이시라 애정 표현같은 건 전혀 없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옛집에서 할아버지가 우리들을 위해 장작불을 때서 세숫물을 준비하시고 자반고등어를 직화로 구워주시던 그런 뒷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또한 장작을 패시던 모습이라든지, 할아버지와 함께 땅콩을 심던 일, 이런 것도 기억에 남아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 방(그당시에는 사랑채에 할아버지 방이 따로 있었다)에 가끔 놀러를 가도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저 함께 티비를 보는 것 뿐. 할아버지의 유일한 애정표현은 손을 들어 인사를 하시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할아버지 저 갈게요, 라고 말을 할때도 거의 묵묵부답. 대신 손인사를 하셨다. 하지만 그런 시간도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나와 할아버지는 비록 책에 나오는 할아버지와 손녀같은 다정한 시간을 보낸 적은 없어도 우리 할아버지니까 내게 남겨주신 기억과 추억은 전부다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우리 할아버지와 보낸 시간이니까.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