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판 조류도감 사가판 도감 시리즈
모로호시 다이지로 글 그림, 김동욱 옮김 / 세미콜론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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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호시 다이지로를 좋아한다면 제괴지이와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를 분명 읽었을 독자가 많을 것이다. 나 역시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제괴지이로 시작했고, 그 후에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를 읽게 되었다. 제괴지이는 중국의 신화나 고사를 바탕으로 그려진 요괴 이야기라면,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는 현대판 요괴 이야기로 독특한 유머 코드와 상상 이상의 상상력을 보여준다. 그러하다 보니 난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신작 사가판 조류도감이 출판된 것을 봤을 때 망설임없이 구입했다.

사가판이라. 한글로 적어 놓으니 굉장히 낯설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 보니 사가판(私家版)이란 개인이 비용을 부담하여 한정된 부수를 자가(自家) 출판하고 유지(有志)들과 나누어 가지는 책이란 뜻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만화에 대한 그의 열정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게 바로 이런 사가판의 제작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한정된 부수의 자가출판 작품을 이렇게 번역본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책 표지를 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까마귀나 참새, 백조를 비롯해 하르퓌이아와 천사의 모습까지 나온다. 제목엔 분명 조류도감이라 씌어 있기는 해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류도감과는 거리가 있다. 그게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재미란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책을 펼치면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새들이 그려진 컬러 페이지가 보인다. 총 23종의 새가 그려져 있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새들 뿐만 아니라 신화나 상상속의 새를 비롯해 작가 창작의 새도 그려져 있다. 이 새들에 대해서는 책 뒷편에 자세한 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새를 파는 사람은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이다. 폐허와 같은 미래의 지하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이미 인류에게 잊혀진 새가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분별한 유전자조작으로 이미 우리가 알던 생물들은 변종이 되어 사라진 세상.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한 남자가 데리고 온 새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그 새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생물인지를 아는 사람은 정확히 없다. 이 단편은 우리의 현실이 가져올 미래를 보여주는 듯 하다. 현재 세계에서는 유전자 조작 식물을 비롯해 동물의 복제 실험 등 인간의 가져야 할 능력을 상회하는 기술을 앞다투어 선보이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정말 이렇게 변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기도 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새로운 희망을 암시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명탐정 슬리퍼는 6개의 작품 중 가장 코믹한 작품이다. 게다가 등장하는 새의 정체에 대한 설명을 보고 웃음이 빵빵 터지기도 했다. 정말 이런 게 있단 말이지?? 명탐정 슬리퍼가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 듯한 사건 해결을 보여 주는 작품.  

붕의 추락은 붕이라는 상상속의 새를 소재로 하고 있다. 북명이라는 북쪽 바다에 사는 곤이라는 물고기가 때가 되어 변화하는 것이 붕이라는 새이다. 얼마나 큰 새인지 그 길이만 수천리가 된다고 하는데, 붕이 제대로 날지 못해 추락하게 되어 자연에 재앙이 찾아온다. 새들은 선녀인 여와를 찾아가 재해에 대해 이야기하고, 여와가 하늘의 구멍을 메워 재앙을 멈춘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무척이나 흥미로운 것은 붕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재앙이 생기자 마치 사람처럼 파벌로 나뉘어 권력을 쟁취하려는 새들이 생겨나는데, 이는 인간의 모습과 꼭 닮아 있다. 또한 모든 생명이 창조된 후 여와에 의해 인간이 생겨났다는 것도 흥미로운 관점이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라기 보다는 지구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생물이라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 아닐까.

탑을 나는 새는 평행우주론과 맞닿아 있는 듯한 작품이다. 거대한 탑은 우리가 사는 곳, 신의 광구는 태양, 허공은 우주. 하지만 거대한 탑은 하나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존재하며 다른 탑에는 어떤 생명이 사는지 아무도 모른다. 또한 거대한 탑은 길이를 알 수 없는 나선으로 연결되어 또 다른 세상과 연결된다. 하지만 주인공이 도착한 거대한 탑의 사람들은 인간중심의 우주론을 내세운다. 탑의 바깥쪽에 존재하는 새들은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한 생물로 배척되기까지 한다. 우리 인간들은 항상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 역시 우주의 중심에 있는 것 역시 인간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

호무치와케는 고대 일본의 역사와 신화를 바탕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이즈모와 야마토의 대립, 토착신앙과 전래신앙의 대립등 인류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인간의 역사는 어느 시대나 비슷비슷한 게 아닐까 하고.

마지막 작품인 새를 보았다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다. 유일한 현대물이기도 하고, 약간의 공포스러움도 내포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현실과 상상의 적절한 조화가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하면 될까? 낡은 급수탑과 그 근처에서 보이는 거대한 새의 비밀. 이 작품은 문득 스즈키 코지의 검은 물 밑에서라는 작품이 떠오르기도 했다. 아마도 급수탑이란 것이 등장하기 때문일지도... 소년들의 상상과 그 뒤에 숨겨진 안타까운 사연이 인상적이었던 작품으로 기억될 듯.

이렇게 살펴보니 6편의 작품 중 어느 하나도 시대나 나오는 새가 겹치는 작품이 없다. 게다가 어느 작품 하나라도 제외하고 싶은 작품이 없을 정도로 스토리도 탄탄하다. 똑같은 걸 봐도 다르게 보는 사람이 꼭 있다더니,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바로 그런 작가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것들에 대해 이렇게 다른 해석을 내렸으니 말이다. 그의 다른 작품인 사가판 어류도감 역시 상당한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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