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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동물들의 이야기
금선란 지음, 조수연 그림 / 보림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요즘 티비 프로그램 중 동물이 나오는 것을 시청하다 보면 학대받고, 버려진 동물들에 대한 사연이 많이 나온다. 개중에는 버리지는 않았더라도 방치 상태로 두어 유기 동물이나 마찬가지의 삶을 사는 녀석들의 모습도 있다. 그런 녀석들을 보면 도대체 반려인은 어떤 생각으로 저 녀석들을 키울 생각을 했을까, 싶은 경우도 많다. 차라리 처음부터 키우지나 말지, 저렇게 고통속에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큰소리를 떵떵 친다. 내가 키우는 개인데, 왜 당신들이 상관하냐고. 이는 우리나라의 동물들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개와 고양이같은 동물은 법적으로 사람의 '소유물'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대받고 방치되는 동물들이 있어도 함부로 구조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한국동물보호협회 회장인 금선란씨가 펴낸『버려진 동물들의 이야기』는 다양한 동물들의 사연을 담고 있다. 각 동물들의 사연은 시간 순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어린 시절 집에서 키우던 양구란 개가 6.25.전쟁때 끌려가게 된 이야기나 고등학교때 키우던 토끼 쫑아가 어머니의 위장병약으로 먹혀 버린 일등 아주 오래된 사연들도 있고, 금선란씨가 동물 고아원을 만들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고양이 가족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나는 가엾은 동물들을 보면, 그들이 마음껏 뛰놀며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지구를 반으로 갈라서 사람에게 반쪽 그리고 동물에게 반쪽을 나누어 주는 꿈을 갖기도 했다. (62p)
동물 고아원을 만들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깜동이란 고양이와 깜동이의 가족 이야기를 보면, 처음에는 동물을 키운다는 것에 대해 남편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고양이는 쥐를 잡는 용도로, 개는 집을 키우는 용도로 키워진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깜동이가 새끼를 낳고 가족을 이루면서 남편의 마음도 서서히 풀려가지만, 입양 보낸 새끼들이 사라지고, 남편이 운영했던 약국 건물마저 헐리면서 어미 고양이인 깜동이마저 행방불명된다. 피부병이 있다는 이유로 버려졌던 깜동이가 가족까지 이룬 사연은 참으로 따스했지만, 깜동이네 가족의 불행은 너무나도 컸다.
이후 동물 고아원을 만들게 된 금선란씨는 다양한 동물을 구조하고 보살핀다. 고양이 100마리, 개 30마리를 시내에서 키운다는 것은 왠만한 결심으로 하기 힘들다. 게다가 주변의 시선도 곱지 않다. 또한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것도 없다. 개인의 손으로 동물을 구조하고 구조된 동물을 보호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지만, 그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오히려 여러 동물들의 사연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의 무지로 인해 고통받는 동물의 사연을 더 많이 들려준다.
아이들의 놀림감으로 질질 끌려 다니던 고양이가 결국 재래식 화장실에 빠져 죽은 일이나, 이웃 사람이 고양이를 한마리 달라고 해서 보냈더니 하루만에 잃어 버린 사연, 이사를 가면서 고양이를 버리고 가고, 과수원으로 보냈다고 하면서 개장수에 팔아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나라 동물들이 처한 현실이 얼마나 참혹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우울한 사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려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던 검둥이의 이야기나, 남편의 죽음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던 한 여성이 고양이 가족을 돌보게 되면서 삶의 희망을 얻게 된 사연, 지나치게 죄는 목줄에 목을 심하게 다친 개를 구조한 사연 등 마음이 따스해지는 사연도 많다.
특히 내가 읽으면서 마음이 너무나도 따스해져 왔던 건 미돌이와 녹원이란 고양이 두마리의 이야기였다. 잘생긴 외모에 다른 고양이들에게 인기도 많았지만 다리를 다쳐 절름발이가 된 미돌이와 사람들에게 두들겨 맞고 버려진 후 영영 울지 않게 된 녹원이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사람보다 나은 게 이 아이들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서로를 의지하고 보살피며 굳은 우정을 나눴던 미돌이와 녹원이를 그린 그림은 보고 있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금선란씨가 처음부터 동물고아원 운영을 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 어떻게 해야 구조된 동물들이 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새동이의 사연은 그것을 잘 보여주는 사연중의 하나였다.
조금이라도 더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살도록 해 준다는 것이, 오히려 동물들에게는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다. 결국 희생을 치르고서야, 나는 '위험이 따르는 자유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132p)
새동이는 울타리가 없는 동물 고아원에서 외출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시내에 있는 동물 고아원인 만큼 밖에는 차가 씽씽 달린다. 자유롭게 바깥을 탐험하는 것도 좋지만, 동물에게 있어 도시는 너무나도 위험했던 것이다. 그들을 배려해준다는 것이 오히려 화를 불렀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어쩔수 없이 안락사를 하는 경우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구조해야 할 동물의 수는 자꾸만 늘고, 그들을 수용할 시설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구조 동물중 안락사를 택해야 할 때 그 마음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정말 어쩔 수가 없는 경우가 있다는 건 인정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동물을 장난감 취급하거나 단순히 흥미에서 키우다가 버리는 경우도 많다. 야성이 남아있으니 버려도 잘 살겠거니, 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이미 사람에게 길들여진 동물은 야성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런 동물들에게 도시는 위험으로 똘똘 뭉친 곳이다. 쓰레기를 뒤지고, 로드킬을 당하는 동물들을 보면, 그들이 무슨 야생의 습성을 가지고 있냐고 묻고 싶다.
우리나라도 1990년대 중반부터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많이 늘어났다. 단순히 쥐잡기 고양이나 집지키는 개의 용도를 벗어나 가족으로 살게 된 동물의 수의 증가와 더불어 유기동물이나 방치동물, 학대받는 동물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동물을 키우고자 하는 사람은 수십 번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내가 키우려는 동물이 무지개 다리를 떠날 때까지 잘 보살펴 줄 자신이 있는지를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키울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리고 무턱대고 동물을 구조한답시고 설레발을 치는 사람도 있는데, 순간의 동정심에서 데려와 놓고 결국 책임을 지지 못해 2차적으로 유기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 자기만족의 동정심도 버려야 한다. 내가 구조한 녀석을 내가 책임지지 못할 바에는, 오히려 구조가 그 동물에게 더 큰 고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동물은 인간보다 약한 존재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동물을 잘 보살피고 돌봐줄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동물을 사랑한다는 것은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인간 사랑의 기본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13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