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튼 3 - 방랑하는 자연주의자, 샌드힐의 수사슴 시튼 3
다니구치 지로 지음, 이마이즈미 요시하루 스토리 / 애니북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드디어 시튼 3권이다. 아껴가면서 한권씩 소중하게 읽었건만, 번역서로는 마지막 작품인 샌드힐의 사슴을 앞에 둔 내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 얼른 읽고 싶은 마음과 이것을 읽어 버리면 더이상의 번역서가 없기에 아쉬움이 클 거란 마음이 교차했지만, 다니구치 지로의 아름다운 자연과 동물에 대한 그림, 그리고 시튼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장한장 섬세한 그림을 감상하면서 천천히 읽어 나갔다.

샌드힐의 수사슴은 시튼의 청년기의 이야기이다. 20대 초반, 캐나다 매니토바 평원에서 만나게 된 수사슴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된 3권은 시튼이 자연주의자로서 좀더 성장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표지를 보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갈 듯 도약하는 사슴 세마리의 모습이 보인다. 이 사슴들은 뮬 사슴이라 불리는 종으로 노새 사슴이라고도 한다. 얼마나 높이 점프를 하는지 - 우스개소리처럼 들릴지는 몰라도 - 산타클로스의 썰매를 끄는 순록처럼 보였다. 정말 아름다운 생명체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3권은 20대 초반 시튼의 이야기도 담고 있지만, 그에 앞서 시튼이 매니토바 평원으로 가기전까지의 여정도 함께 담고 있다. 이는 시튼 시리즈의 특징이기도 하다. 1, 2권 역시 마찬가지로 중심이 되는 시기 이야기에 앞선 시기의 이야기를 함께 담고 있기 때문이다. 3권에서는 시튼의 런던에서의 생활에 대한 부분을 볼 수 있다. 런던 로열 아카데미에서의 수학과 그곳에서 보고 듣고 배우며 느낀 것에 대한 이야기로, 적은 돈으로 생활하면서 고생하던 시튼의 모습이 너무나 잘 보여진다. 특히 자연에 대한 그리움때문에 결국 환청까지 들리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시튼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할 자연주의자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튼의 형들이 개척 농장을 만들고 있는 매니토바에서 늘 그렇듯 주변을 산책하던 시튼은 사슴의 발자국을 발견한다. 사슴이 사라진줄로만 알았는데, 다시 돌아왔다! 그것은 시튼에게 있어 커다란 기쁨이요, 행복이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눈으로 본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멋진 사슴을 자기 손으로 꼭 잡고 싶다는 욕망 또한 가지게 된다.

내가 시튼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복잡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자연을 사랑하고, 동물을 사랑한 시튼이지만 이처럼 샌드힐의 수사슴이나 늑대왕 로보를 잡고 싶어한 욕망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이었다. 자연을 관찰하고 동물의 습성을 파악하고 그들을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손에 넣고 싶어하는 욕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것이 시튼의 다른 모습일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물론 시튼이 처음부터 샌드힐 스테그를 잡고 싶어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보기만 해도 좋겠다, 라는 것에서 발전해 보게 되니 잡고 싶어졌다, 라고 발전하게 된 것이랄까. 물론 그 시대 상황에 비춰 생각해야 하니, 이런 시튼의 욕망에 대해 나쁘게만 볼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시튼은 샌드힐 스테그를 추적하던 중 원주민 차스카와 만나게 된다. 이 장면에서 뭔가 굉장히 미묘하고 좀 껄끄러운 기분을 느끼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시튼의 철없어 보이는 모습때문이랄까. 공교롭게도 샌드힐 스테그를 같이 추적하던 차스카를 보면 여기는 자신들의 땅이요, 샌드힐 스테그는 자기 사슴이라고 우겨대는 시튼의 모습에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원래대로 따지자면, 백인들은 개척민이 아니라 침입자에 불과하고 사슴은 누가 잡느냐에 따라 소유자가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슴은 자연의 일부이긴 하지만. 차스카와 함께 지낸 며칠은 시튼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날들이었다. 자연을 읽고, 사슴의 족적을 읽는 것 등은 자연과 한없이 가깝게 사는 사람들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차스카에게 배운 지혜로 샌드힐 스테그를 추적하던 시튼은, 다른 사람과 함께 나선 사냥길에서 샌드힐 스테그가 거느린 암컷을 사냥하게 된다. 그 장면을 보고 시튼은 큰 충격을 받는다.

시튼은 이날의 행동이 도대체 무엇이었나 생각했다. 샌드힐을 헤집고 돌아다닌 나날. 시튼의 즐거움은 대체 무엇이었던가. 사슴의 발자국을 쫓는 즐거움이란 결국 잔혹하게 죽이기 위한 과정이었단 말인가. (208p)

시튼이 샌드힐 스테그를 추적하면서 얻은 것은 자연에 대한 지식만이 아니었다. 자신들 인간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자연주의자로서 한걸음 더 내딛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보여진다.

인간은 여타의 동물과는 달리 자신의 만족감과 즐거움을 위해 사냥하는 종족이다. 물론 그것은 문명화된 - 하지만 어떻게 보면 더 야만적인 - 인간들의 모습이다. 자연과 더불어 숲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정도로만 사냥을 하고, 육식 동물들은 새끼 초식동물을 사냥함으로써 초식동물의 개체수를 조절하고, 늙거나 병든 동물을 사냥함으로써 또한 개체수 조절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총을 들고 다니는 인간들은 어떠한가. 요즘은 야생동물을 수입해서 부자들의 유희로 사냥을 즐긴다고 하던가.


시튼 시리즈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자연주의자로서의 삶을 걸었던 시튼조차도 자신의 욕망에 휘둘리기도 했다. 시튼이 그러했을진대, 범인(凡人)들인 우리가 우리보다 약한 생물을 사냥하고 싶어 하는 욕망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모든 생명은 그것들이 존재하는 자리에 있어야 더욱더 아름답게 마련이다. 아름답게 도약하는 사슴들은 평원에서 뛰어야 아름다운 것이다. 이미 철조망 안에 갖혀 버린, 사람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은 동물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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