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런트
토요다 테츠야 지음, 강동욱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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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었던『커피 시간』. 200페이지 남짓한 분량에 총 17편의 단편이 수록된 작품집이었다. 커피란 것을 소재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던 『커피 시간』은 다양한 감정을 자극해왔다. 또한 각각의 이야기의 완결성은 얼마나 뛰어난지,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읽었다.『언더커런트』는 시기적으로 볼 때,『커피 시간』보다 앞선 작품이지만, 무엇을 먼저 읽어도 좋을 거란 건 확신할 수 있다.

『언더커런트』는 장편이다. 분량도 꽤 많아 300페이지 정도 되는데, 읽는 내내 지루한 줄을 모르고 읽었다. 다 읽고 나서 뭔가 가슴속에서 샘솟는 기분이었달까. 그래서 또다시 책을 펴고 다시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만화란 장르의 특성상 글을 읽다 보면 사람의 표정이나 사물 등 그림에 관한 것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두 가지 흐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편의상 내가 나눈 것이다) 하나는 목욕탕 주인 카나에와 실종된 남편에 관한 이야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카나에와 새로운 직원 호리 사이의 이야기이다.  
 

누군가를 안다는 게 뭘까 - 카나에와 사토루

카나에의 남편은 두 달 전 갑자기 사라졌다. 교토로 여행을 간다고 나선 길로 행방불명이 된 것이다. 카나에는 백방으로 수소문하지만 돌아오는 건 좌절감뿐. 아줌마와 더불어 세명이서 하던 목욕탕은 사토루의 실종으로 문을 닫고 만다. 멍하니 시간을 보내던 카나에는 드디어 목욕탕 문을 열고, 일을 시작한다. 친구의 도움으로 탐정을 소개받은 카나에는 탐정과 만나면서 남편의 행방을 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탐정이 카나에에게 알려준 사실은 카나에게 짐작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카나에와 사토루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가 과연 상대방에 대해 안다고 하는 게 무엇인가를 곰곰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난 저 사람 잘 알아." 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저 사람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어." 라고 절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잘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시간을 함께 보내고, 추억을 공유하는 것? 그 사람이 내게 해주는 말에서 얻어지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걸 통해 내가 종합해서 내린 판단이 "아는 것"의 범주에 들어갈까? 카나에 역시 이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탐정의 조사를 통해 자신이 남편 사토루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연애 4년, 결혼 4년. 남들은 이 정도 시간이면 당사자 자신보다 상대가 자신을 더 잘 안다고 할 정도이지만, 그게 정말 '아는 것'일까?

사람들은 상대방을 자신의 눈으로 판단한다. 즉, 자기자신의 생각에 맞추어 상대방을 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내가 몰랐던 상대방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심한 배신감을 느끼게 되지만, 그게 과연 배신감을 느낄 일일까? 내가 보기 싫어서, 듣기 싫어서 모른척 하고 있던 부분이 아니었을까. 실은 카나에도 뭔가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을 뿐. 만약 카나에가 남편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을 때 그에게 물어봤다면 남편의 실종은 없었을지도 모를까. 글쎄다.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완벽히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결국, 카나에는 남편을 용서한 걸까, 이해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나도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그건 카나에의 마음이니까. 그리고 독자들의 마음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카나에는 이 일을 통해 마음의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아픈 과거를 마주한다는 것 - 카나에와 호리

남편의 실종 후, 다시 목욕탕문을 연 카나에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당분간 카나에의 목욕탕에서 일할 그 남자의 이름은 호리. 아무 말없이 묵묵하게 카나에의 옆을 지키고 지탱해주지만, 언제 떠나버릴 사람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호리와의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마음이 안정되어 가는 걸 느끼는 카나에지만, 그게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인지 아닌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호리는 수수께끼같은 인물이다. 한곳에 정착하지 않는 사람이며,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문다. 표정 역시 한결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웃는 모습 한 번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뭔가 큰 비밀을 가진 게 분명해 보인다. 호리가 나오는 부분을 보면서 미스터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도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니까. 게다가 카나에게 자꾸만 보는 환영도 심상치가 않다. 카나에 역시 깊은 비밀이 있을 거란 생각을 들게 만든다. 목을 조르는 손, 그리고 서서히 물속으로 가라앉아 가는 자신을 보면서 카나에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그러던 어느 날 목욕탕에 자주 놀러오는 미유란 아이의 실종 사건이 터지면서, 카나에의 상처가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카나에가 겨우 다섯살때의 일. 그것은 수십년간 카나에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았다가 그 사건과 연계되어 터져나온 것이다. 호리편의 마지막을 보면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생겨났다. 사부 영감의 말로서 모든 것이 완벽하게 들어맞고,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리고 호리가 발걸음을 돌린 곳은....?

이 작품을 읽으면 스토리가 정말 잘 만들어진 영화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과 비일상의 교차, 비극과 희극의 교차, 만남과 이별, 상실과 재생이란 구도는 나무랄데 없이 깔끔하고 감동적이다. 남편의 실종이란 걸 배경에 깔고 있지만, 카나에의 일상은 늘 우울하고 슬프지만은 않다. 오히려 가끔씩 튀어나오는 유머 코드에 풋하고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사람의 감정을 너무나도 잘 잡아낸다고 해야 할까. 사람이 어떤 일을 겪으면서 슬프기만 하거나, 우울하기만 한다면 그 사람은 결국 미쳐서 죽을지도 모른다. 망각의 기제가 작용하면서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 간다. 그런 것이 곳곳에 깔려 있다. 

이 작품의 또다른 재미는 감초역할을 하는 조연 캐릭터들이라고 할 수 있다. 목욕탕을 찾는 손님들을 비롯해서 꼬마 미유, 사부 영감, 친구인 요코 등 개성넘치는 조연들은 이 작품을 더욱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특히 늘 영양가 없는 말이나 행동만을 하는 듯한 사부 영감이 마지막에 큰 한방을 날릴줄이야!!!! 또한 여기에 등장하는 탐정 야마자키는『커피 시간』에도 등장한다. 야마자키의 탐정으로서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이 작품의 커다란 재미였다.
 
정말이지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웠던 언더커런트. 언더커런트는 만남과 이별, 슬픔과 행복, 상실과 재생이란 이야기를 다룬 사람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다니구치 지로의 추천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잘 만들어진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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