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기엔 좀 애매한 사계절 만화가 열전 1
최규석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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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세상 참 좋아졌다, 라고 한다. 하지만 삶은 팍팍해졌다고 한다. 물질적으로는 분명 풍요로워지고, 편해졌지만, 정신적으로는 견디기 힘든 시절이다.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 사회, 그곳에선 돈이 진리다.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는 것도 돈이 있어야 가능한 세상이니까. 세상은 이렇게 변했는데,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고등학생들은 어떨까. 손에는 너도나도 핸드폰, MP3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선 너무나도 흔하다. 하지만, 그건 물질적인 것 뿐이지, 여전히 입시 경쟁에 시달리고, 주위의 친구는 어느새 라이벌이 되어 간다.

따지고 보면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 없어 보인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도 역시나 수능 준비에 눈코 뜰새 없이 바빴고, 점수에 맞춰 지원을 했다. 합격과 불합격 사이에서 친구 사이도 어색해져갔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고등학교 다닐때는 학원이나 과외등 사교육을 받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그저 학교에서 보충수업, 야간자습을 했을뿐이다. 그러나 요즘은 엄마 뱃속에 있을때부터 경쟁이다. 바야흐로 무한 경쟁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울기엔 좀 애매한』은 입시를 위한 한 미술학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대 지망생도 있겠지만, 여기에선 특히나 만화학과 지망생들의 이야기이다. 표지 맨 앞에서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녀석은 고교생으로 이름은 원빈. 원빈이란 영화배우와 이름은 똑같지만, 외모는 영 딴판이라 자기 소개를 할때면 늘 그 이야기부터 꺼낸다. 뒤로 보이는 사람 중 줄무늬 티셔츠는 재수생이고, 오렌지색 티셔츠는 학원 강사다. 서로 다른 위치의 세사람은 책 속에 나오는 세 그룹의 사람들을 의미할지도 모르겠다. 원빈을 비롯해 지금 고 3으로 입시 준비에 한창 바쁜 고교생 또래집단, 대학생과 재수생이란 커다란 차이를 가진 은수와 미진, 그리고 학원 강사 두 명은 무척이나 극과 극의 대비를 보여준다.

원빈이의 경우 잘 살다가 집안이 망한 경우로 지금은 어머니가 김밥집을 운영하며 원빈이의 학원비를 내고 있는 형편이고,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술집 알바를 하며 학원비를 충당해야 하는 여고생도 있다. 그에 비해 지현이는 형제 자매가 모두 명문대 출신에 아버지가 재력이 빵빵하다. 이렇다 보니 수시 원서를 쓸 때 다른 아이들은 모두 반대를 당하지만, 모르게 수시를 접수한 지현만 수시 합격이란 걸 하게 된다. 돈도 재능이라며 고개를 푹 숙이는 원빈과 아이들의 추궁에 눈물을 보이는 지현.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기도 전부터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접한다.

은수는 작년에 미진과 똑같은 대학에 붙었지만 결국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지금은 재수생이다. 미진을 좋아하지만, 자신의 처지때문에 섣불리 다가설 수도 없다. 또래 친구가 대학때문에 대학생과 재수생의 운명으로 갈리게 된다, 사실 이런 관계는 굉장히 미묘하다. 서로가 무척이나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나 역시 고 3때 재수를 하게 된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무척이나 난감해했던 기억이 난다. 은수의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학원비를 내기 위해 열심히 알바를 하지만,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그 돈은 고스란이 엄마가 빼간다. "그냥 형 보면, 나한테 꿈이 없다는 게 참 다행스럽달까……" (82p) 라고 하는 은수의 동생을 보면서 한숨이 팍 쉬어진다.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꿈도 없는 세상에서, 아니 감히 꿈을 꿀 수도 없는 세상을 살아가게 된걸까.

이런 대조적인 구도는 어른인 학원 강사인 태섭과 종화도 마찬가지이다. 태섭은 아이들 편에 가깝다면 종화는 어른들 편에 가깝다. 아이들의 습작을 지현의 포트폴리오에 무단으로 사용하고, 지현의 합격을 위해 지현의 아버지에게 돈을 받고 신형차를 뽑는다. 태섭은 학원장과 조금 맞서 보지만, 핀잔만 듣고 결국 학원을 그만두게 된다. 

세 그룹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지만,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저 이런 시스템에 순응해서 살 수 밖에 없다. 재능이 있어도 가난때문에 재능을 꽃 피우지 못하는 아이, 재능은 별로 없지만 돈이 많아 재능을 커버할 수 있는 아이. 우린 가난때문에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이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너희가 어른이 되면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거야, 라고? 지금은 힘들겠지만, 조금 지나면 다 괜찮아 질거야, 라고? 어른인 우리도 살기 힘든 세상이다. 지금 아이들과 똑같은 길을 걷지는 않았어도 비슷한 길을 걸으며 살았다. 결국 지금의 우리는 울기엔 좀 애매한 시기를 넘어 한 방울의 눈물조차도 사치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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