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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시간
토요다 테츠야 글 그림, 한나리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10년 8월
평점 :
제목만으로, 표지만으로 커피 생각을 물씬 나게 하는 커피 시간.
커피를 둘러싼 각양각색의 에피소드 17편이 이 책 한권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총 200페이지가 약간 넘는 분량에 17편이나 되면 한 편당 차지하는 페이지 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각각의 이야기는 완결성을 가진다. 장편이나 중편의 경우 이야기가 길기 때문에 조금씩 이야기가 진행되고 인물의 감정이나 행동이 수많은 페이지를 통해 묘사되지만 이런 초단편의 경우 단 몇 컷에서 작품의 분위기를 몽땅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무척 어려운 작업이라 생각되지만, 이 작품집 안에 실린 단편은 모두 수작이라 부르고 싶을 만큼 뛰어나다.
첼리스트와 자신을 영화감독이라 하는 수상한 이탈리아 남자와의 만남은 처음부터 웃음이 터지게 만들었고, 그 뒤에 나올 이야기에 대해 큰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때로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때로는 SF적인 느낌을, 때로는 하드보일드, 때로는 가슴 아프지만 왠지 웃기고, 때로는 안타깝고 애틋하고, 때로는 가슴 뭉클한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이 작품집은 커피란 것 단 하나로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있구나 싶어 작가에 새삼 감탄하게 되었다.
나오는 등장인물도 무척이나 다양하다. 첼리스트, 영화감독이라는 이탈리아 남자, 탐정, 엄마에게 버림받은 소년, 형사, 로봇 형사, 박사, 이모와 조카, 아버지와 아들, 지금은 적이 된 두 친구, 싱글맘, 아버지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소녀, 이혼하려는 부부, 북카페를 운영하는 남자 등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이 대거 등장한다. 작품의 배경은 현실에서부터, 어딘지 모를 환상적인 곳, 세상에는 없을 법한 곳 등 배경도 무척이나 다양하다.
모든 작품이 너무나도 좋았지만 특히 인상적인 몇 편을 꼽으라면, Hate to See You Go와 Little Girl Blue, Where are you, 기린, 겨울의 파도타기, 거짓말쟁이 박사 등이 있다. Hate to See You Go는 서로 친구였던 두 사람이 이제는 적이 되어 만나 마시는 마지막 커피에 대한 내용으로 결말 부분이 애매하긴 하지만, 아마도 비극이었을 듯한 느낌이 든다. 서로에게 총을 겨눈채 마시는 커피의 맛은 어땠을까. Little Girl Blue는 아버지에게 학대받아 왔던 한 소녀의 이야기로, 아저씨와 나누는 이야기, 그리고 아저씨가 슬며시 내민 커피 한잔의 따스함에 가슴이 뭉클해져 왔다. Where are you는 이 책에서 총 세 번 등장하는 첼리스트와 이탈리아인 영화감독 모렐리와 한 떠돌이 개의 이야기이다. 그 개가 무엇을 위해 거리를 떠돌아 다녔는가를 알았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질뻔 했다. 기린은 배경이 무척이나 애매모호하다. 마치 꿈속인듯도 하며, 나오는 사람들도 각양각색.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이거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고민했던 작품이다. 겨울의 파도타기는 마음속에 자리한 미움이란 것에 대한 이야기였고, 거짓말쟁이 박사는 영화인지 꿈인지, 아니면 피안과 차안의 경계인지 무척이나 애매모호하지만, 누구나 느낄법한 감정이 잘 전달되어 온다.
이렇듯 이 글에서는 단 몇 작품만을 언급했지만, 정말 모든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나 마지막 작품은 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함께 등장하므로, 어디의 누가 나온건지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듯 하다. 사람들의 희노애락의 순간과 함께하는 커피. 그들이 겪고 있는 상황도, 그들이 가진 감정도, 그들이 마시는 한 잔의 커피의 종류조차도 다르다. 하지만, 한가지 공통되는 것이 있다면 그들은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통해 무언가를 선사받는다는 느낌을 가진다는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