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와 생쥐 - 2010년 칼데콧 상 수상작 별천지 제리 핑크니
제리 핑크니 글.그림, 윤한구 옮김 / 별천지(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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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펼치고 난 두가지에 놀랐다. 하나는 틀림없이 여성작가일 거라고만 생각했던 제리 핑크니가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셨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글이 없다는 것이었다. 의성어정도만 씌어 있을 뿐 동화에 관한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엔 글을 몰라도 그림만으로 여러가지 상상을 했는데, 한글을 깨치고 부터는 글에 집중하는 독서 습관을 가진게 아닌가 싶다. 게다가 어른이 되면서 그림이 없는 책을 주로 읽다 보니 동화책을 읽어도 자연히 그림보다는 글에 집중을 하게 되었으니 당연한 걸까?

내용은 우리가 잘 아는 이솝우화의 내용과 같다. 어느날 낮잠을 자는 사자를 깨워버린 생쥐. 사자는 처음에 혼을 내주려고 하나, 생쥐의 말을 듣고 생쥐를 무사히 돌려 보낸다. 그후 사자는 인간이 설치한 덫에 걸리게 되고, 생쥐는 사자가 걸린 그물을 끊어 사자를 구해준다는 내용이 전부이다. 하지만, 그림으로 내용이 더 풍성해졌다는 느낌을 받은 건 나뿐일까.


아프리카의 사바나. 그곳에는 맹수들의 왕 사자와 생쥐처럼 연약한 동물이 공존하는 곳이다. 생쥐는 자신을 노리는 새를 피해 도망을 치다가 낮잠자는 사자를 깨우고 만다. 잠을 자다가 깨버린 사자는 처음엔 생쥐를 혼내주려고 하지만 생쥐는 목숨을 살려 달라고 부탁을 한다.

문득, 어른이 된 나로서는 이런 생각이 먼저 든다. 사자가 생쥐를 놓아준 이유는 한입거리도 안되기 때문이 아닐까? 요런 못된 심보를 가진 어른이 되었다니 갑자기 서글퍼진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본다. 생쥐는 사자에게 어떤 말을 했길래, 사자가 생쥐를 보내줬을까. 다른 그림을 찬찬히 살펴 보면 생쥐에게는 아직 어린 새끼들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어미 잃은 녀석들은 아마도 무사히 어른이 되지 못할 것이다. 생쥐는 자신의 어린 새끼들을 봐서라도 목숨을 살려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사자 역시 아비이기에 생쥐의 마음을 잘 안다. 그래서 생쥐를 무사히 보내줬을거야. 만약 내가 없다면 어린 사자들역시 이 위험한 사바나에서 살아남기 힘들겠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후 사자는 자신의 영역을 순찰하다가 인간들이 놓은 덫에 걸리고 만다. 사자도 놀랐지만, 원숭이도 새도 모두 놀라서 어쩔줄을 모른다. 이 그림을 보면서 사자의 표정을 얼마나 잘 포착했는지 감탄을 거듭했다. 정말 놀라고 당황한 표정이 그대로 살아 있다.

사자는 발버둥 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그물을 빠져나갈 수 없다. 절체절명의 때, 누군가 사자를 도와주진 않을까? 하지만 옆에 있는 건 원숭이와 새밖에 없어 구해줄 동물이 없다.


사자의 절박한 울음소리를 듣고 나타난 건 사자가 전에 목숨을 살려준 생쥐였다. 생쥐는 이로 열심히 그물을 갉는다. 작은 이빨로 열심히 열심히 밧줄을 갉아 결국 사자가 그물에서 빠져나오도록 도와준다. 그물안에 있는 사자는 왠지 못미더운 표정이지만, 생쥐는 '사자님, 제가 구해드릴게요, 걱정마세요'라고 소근거리는 것 같다. 그물에서 풀려난 사자와 생쥐가 마주 보고 서 있는 모습은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구해줘서 고마워', '뭘요, 사자님이 절 먼저 구해주셨잖아요?'라고 대화하는 듯한 둘의 모습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책의 내용이 다끝났다 싶었는데, 마지막 페이지에 정말 가슴 뭉클한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자신을 구해준 생쥐 가족을 등에 태운 숫사자와 숫사자의 아내인 듯한 암사자와 새끼 사자가 나란히 걸어 가고 있는 모습은 비록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에 있는 동물들이라도 진심을 나눌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듯 하다.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피라미드 구조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힘센 동물이 늘 이기는 것도 아니요, 약한 동물이 늘 지는 것도 아니다. 서로 돕고 도울 수 있는 관계이며, 진정한 우정을 나눌수도 있는 관계인 것이다, 랄까.

『사자와 생쥐』를 보면서 간만에 글이 없는 책의 즐거움을 새록새록 깨닫게 되었다.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전해지는 내용, 그림뿐이니까 사자와 생쥐간에 오가는 대화를 상상하게 되고, 그림뿐이니까 그림을 더욱 더 자세히 보게 되었다. 어린 시절 그림만으로도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에 무척이나 행복해진다.

그림 출처 : 책 본문 中 ( 본문에는 페이지 표기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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