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책마을을 가다 -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은 동네
정진국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에겐 여행이란 건 대부분 관광이란 목적을 가지고 떠나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그런지 한때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여행기를 비롯해 관광이란 목적에 맞게 편집된 여행기들이 우후죽순처럼 발행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의 여행기를 보면 특수한 목적 - 책, 그림같은 예술품, 혹은 고양이같은 동물을 만나기 위한 - 을 가지고 떠난 여행에 관한 여행기가 많이 나온다. 그 이유는 해외 여행이란 것이 달나라 여행만큼이나 특수한 사람들이 가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많이 떠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정진국 작가의 유럽의 책마을을 가다는 책이란 것을 목적으로 떠난 여행에 관한 에세이이다. 젊은 사람들이 떠나고 활력을 잃은 농촌 마을과 문명의 발달로 자신의 자리를 내주게 된 책이 만나 만들어진 책마을. 이 책은 총 6개의 카테고리로 나뉘어져 유럽의 다양한 책마을을 돌아 보며 저자가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옮겨 놓았다. 스위스, 프랑스, 베네룩스 3국의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스칸디바비아 반도의 노르웨이와 스웨덴, 독일, 영국 & 아일랜드 편으로 나뉘어진 이 여행은 2007년 봄에서 2008년 초겨울까지 2년간 다닌 여러번의 여행을 바탕으로 씌어졌다. 

제일 처음에 나오는 스위스의 책마을은 두군데가 소개되어 있다. 프랑스어권, 독일어권, 이탈리아권 마을을 이어주는 발레의 생피에르 드 클라주의 경우, 여름에 책마을 축제가 열리고, 고서적상과 특수서적 출판인만을 위한 큰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위 사진은 스위스 주네브의 플랭팔레의 모습이다. 좌판 가득 놓여있는 책 사이에서 화집을 고르고 있는 한 신사의 모습이 너무나도 정겹다. 우리 나라같으면 양복을 쫙악 빼입은 신사가 자신의 가방을 저렿게 다리 사이에 끼워놓고 책을 고를 여유나 있을까. 사실 이런 좌판이란 것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이젠 보기 힘들다. 가끔 버스 터미널 근처에 좌판을 벌이고 책을 파는 사람들이 보이긴 하지만, 대부분 해적판 책이나 조잡한 책이 대부분이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주중에 두번씩 이렇게 열리는 책 시장의 장점은 늘 같은 사람이 같은 책을 가지고 오지 않는다는 점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엔 어떤 책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은 이런 책시장의 쏠쏠한 재미가 아닐까. 


위 사진은 프랑스의 아키텐 마스다주네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이렇게 박스채로 거래된다고 한다. 1년에 딱 한번 열리는 책시장. 전국 각지에서 책과 골동품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펼치는 책마을 축제는 그날을 놓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한다.

프랑스의 책마을은 총 8군데가 소개된다. 그중에는 프랑스 최초의 책마을인 브르타뉴 베슈렐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4계절에 따른 다채로운 행사를 열어 책쟁이들을 불러 모으는 니에브르의 라 샤리테 쉬르 루아르도 있다. 또한 서점과 예술 공예 관련 공방을 함께 모아 책을 구경하고 구입할 수 있을 뿐더러 다채로운 공방 체험을 할 수 있는 비엔의 몽모리옹도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역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브루고뉴 퀴즈리의 한 할머니 이야기였다. 폴란드 수용소 모형을 가지고 나온 할머니는 지난 역사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한 분이었다.

베네룩스 3국에 소개되는 책마을은 총 다섯군데. 그중 플랑드르의 담이란 곳은 연간 다섯차례의 도서 경매가 이루어지는 곳이며, 뤽상브루의 르뤼는 유럽 최초의 책마을로 1984년에 만들어진 곳이라 한다. 유럽 최초라고 해도 30여년도 안되었으니, 책마을의 역사는 인간의 긴 역사에 비추어 볼때 아직 신생아 단계라 봐도 무관할 듯 하다.  


룩셈부르크의 비안덴의 좌판 모습과 상자에 들어있는 책들의 모습은 여느 다른 나라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 특이한 것이 있다면 릭텐스타인의 작품을 복제한 판화일 것이다. 책마을이라고 해서 책만 팔지는 않는다. 그들은 문화도 함께 파는 것이 아닐까?


네덜란드의 유일한 책마을인 헬데를란트의 브레더보르트에는 무인 판매대가 있다. 책을 구입하는 사람의 양심을 믿고 내놓은 무인판매대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작은 시골마을이라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하지만 그래서 더 정겹기도 하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노르웨이는 기후적 특성때문인지 여름에만 책마을을 연다고 한다. 게다가 습기가 많은 기후탓에 책은 튼튼한 양장본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습한 기후도 아닌데, 양장본이 쏟아져 나온다. 무겁고 가방에 잘 들어가지도 않는 양장본을 보며 난 늘 한숨이 나온다. 문고판 사이즈라면 휴대하기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에....
스웨덴의 책마을인 쇠데르만란드의 멜뢰사는 평화의 책마을이다. 전직 기자 출신으로 에디오피아의 참상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안주인의 바람이 담긴 명칭이 바로 평화의 책마을이다. 아직은 이웃나라에 비해 당국의 지원이 미미한 실정이라 어렵게 꾸려가고 있지만, 부부의 열정과 염원이 이 책마을을 유지시키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독일의 경우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라인 만큼, 건물에 전쟁의 역사와 흔적이 남아 있다. 1미터에 달하는 두꺼운 벽, 방공호와 붕커(벙커)들은 여전히 그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브란덴부르크의 뷘스도르프의 고서적은 전쟁의 역사를 전문으로 취급한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는 말이 맞다는 것을 보여주듯 수없이 쌓여 있는 전쟁관련 책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 곳곳은 여전히 내전과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물론 이는 독일의 책마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독일 책마을과 출판 시장의 장점은 단연코 다양한 번역서들이란 것에 있을 것이다. 세계 각국의 좋은 책들을 번역한 책들이 많은 독일은 프랑스조차도 따라갈 수 없으리 만큼 많은 번역서를 내놓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영미, 일본 문학이다. 그외에 간간히 프랑스나 독일 문학이 소개되긴 하지만, 사실 거의 접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또한 일부 인기 작가들의 책이 주로 번역이 되다 보니 수많은 다른 작가들의 책은 그대로 묻혀버리기도 한다. 요즘은 여러나라의 책들이 많이 번역되어 나오기는 하지만, 여전히 영미나 일본 번역서적이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나도 큰 게 무척이나 아쉬운 일이 아닐수 없다.

영국 & 아일랜드 편은 웨일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책마을을 각각 하나씩 소개하고 있다. 웨일스의 헤이 온 와이는 1964년에 세계 최초로 책마을을 만든 곳으로, 책 마을을 만든 리처드 부스는 아프리카 말리의 제 2의 책마을을 조성하는 중이라고 한다.  


스코틀랜드의 덤프리스 앤드 갤러웨이의 윅타운은 '스코틀랜드 국립 책마을'로 불리운다. 이 정도면 정말 주민들이 자부심을 가질만 하지 않을까. 특히 'FAB'라는 음식 · 예술 · 책을 조합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가지고 책마을을 부흥시킬 계획을 수립했는데, 이는 책마을이라고 해서 단지 책만을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교류하는 것이란 걸 보여주는 듯 하다. 윅타운의 사진중 인상깊은 것은 두가지. 하나는 타다남은 책으로 세워진 기념비를 찍은 사진이고, 또 하나는 응접실처럼 편안한 분위기로 꾸며진 서점이다. 응접실다운 편안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을듯한 바이올린을 켜는 해골의 모습은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다다른 곳, 아일랜드. 그곳은 개개인이 운영하는 서점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조합식으로 운영된다는 것이 재미있다. 책마을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한편, 마을 주민들 간의 친목도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이니 일석이조의 효과가 아닌가 한다.

시골 마을과 책마을이라.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아날로그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 농촌과 책이란 생각이 들어 묘하게 궁합이 잘 맞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요즘은 인쇄되어 나오는 책이 아니라 전자 서적의 형태로 나오는 책도 많아졌다. 새책 냄새, 바스락 거리는 종이 소리가 없는 전자 서적은 문명의 이기가 가져다 준 편리함이겠지만, 책 자체가 주는 책의 향기는 풍기지 않는다. 방법이 어떻든 책을 읽는 게 중요하지 않냐는 반문도 하겠지만, 역시 난 책은 아날로그적인 아름다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농촌마을도 요즘 들어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농촌체험마을 정도에 그친다. 물론 그것도 환영할 일이다. 이미 도시와는 별개의 외부 세상으로 단절된 농촌마을에 사람들의 활기가 넘치도록 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니까. 우리 나라의 출판 문화는 다양성을 추구하며, 색다른 변모를 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은 여전히 수도권에 사는 사람을 대상으로 그 변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 유럽쪽이 책마을을 먼저 시작한만큼 그들의 모습이 보기 좋은 건 사실이고, 사실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본문 중간중간 우리나라의 책문화나 출판문화를 폄하한 문장에서는 마음이 좀 불편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풍성한 사진과 다양한 책마을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책마을 문화가 얼른 도입되었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32~33p, 48~49p, 192~193p, 200~201p, 312~3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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