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튼 1 - 방랑하는 자연주의자, 늑대왕 로보 시튼 1
다니구치 지로 지음, 이마이즈미 요시하루 스토리 / 애니북스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어린 시절 표지가 나달다달해지도록, 책장이 다 떨어져 나갈 정도로 좋아했던 책 중의 하나인 시튼 동물기. 지금은 시간이 너무나도 많이 흘러 그 내용을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지만,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 하나가 바로 늑대왕 로보의 이야기이다. 수십년만에 다시 만난 늑대왕 로보. 가슴이 뛴다.

어니스트 톰슨 시튼은 동물화를 그리는 화가였다. 파리 그랜드 살롱에서 '잠자는 늑대'란 그림으로 입선한 후 다시 늑대를 그린 작품인 '늑대의 승리'를 출품하지만, 당시 화단을 지배했던 기독교적인 인간중심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던 파리 미술계는 그의 그림을 낙선시켰다. 특히 윌리엄 브라이너의 "영혼이 깃든 인간을 영혼이 깃들지 않은 야생동물의 희생자로 표현한 것은 신이 아닌 자연이 만물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바꿔말하면 이단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59p)라는 평가는 당시 파리 화단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과 동물에 대한 인간의 잔혹성과 폭력성을 보여주기 위해 그렸던 그림인 '늑대의 승리'의 낙선에 대한 실망감을 안고 미국으로 건너간 시튼은 뉴멕시코 커펌포의 늑대왕 로보 이야기를 듣고 뉴멕시코로 향한다.  
오랜 기간동안 목장을 습격해 소와 양을 죽여왔던 로보는 늑대가 아닌 악마로까지 여겨지는 존재였다. 독이 든 미끼를 설치해도 덫을 설치해도 결코 잡히지 않는 로보. 시튼은 로보에 대한 흥미와 더불어 로보를 꼭 잡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된다.

시튼은 일반적인 독미끼가 아닌 인간의 흔적을 최대한도로 지운 독미끼를 사용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로보는 도대체 어떤 능력이 있기에 이렇듯 인간의 함정을 잘 피해나갈 수 있는 것일까. 게다가 인간을 능멸하듯 독미끼위에 배설까지 해놓는다. 덫을 놓아도 마찬가지이다. 땅에 파묻은 덫은 파헤쳐져 있기도 하고, 아무 늑대도 잡히지 않은채 덫이 잠겨있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모든 덫을 한군데에 모아 놓고 인간을 조롱하기도 한다.

예전에 읽었던 로보의 이야기이지만 지금 다시 읽으니 로보는 정말 위대한 늑대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무리의 수는 적지만 무리를 보호하고, 목장에서 인간들 보란듯 사냥을 하면서도 절대 잡히지 않는다. 또한 다른 늑대무리 역시 로보에게서 보고 배운 것이 있는 듯 다른 늑대들 조차도 독미끼나 덫에 희생되지 않았다. 간간이 코요테만 걸려들 뿐.

동물을 좋아해 동물화만을 그렸던 화가인 시튼은 왜 로보와의 싸움에 그토록 치중했을까. 인간의 생각과 논리를 가뿐히 뛰어 넘는 로보에 대한 흥미만이었을까. 아니면, 인간을 경멸하듯하는 로보에 대해 인간으로서 자존심을 걸고 싶다는 생각이 더해졌을까. 아마도 둘다가 아니었을까. 물론 로보가 당시 커럼포 주변의 목장에 큰 피해를 주었다는 건 인정해야만 한다. 하지만, 늑대의 영역에 들어와 늑대의 먹이인 버팔로를 몰살시키고 그곳에 목장을 지은 건 인간이 아니었던가. 늑대는 원래 경계심이 강한 동물이기에 인간 주변을 얼쩡거리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 목장이 만들어지면서 자연상태에서 늑대의 먹이는 점점 줄어들어 갔다. 그렇다 보니 늑대는 목장에 있는 소나 양을 노릴수 밖에 없었다.
 
인간들은 로보를 원망하지만, 로보 역시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인간을 원망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자신의 주변에서 인간의 독미끼나 덫에 희생되어 간 다른 늑대를 보면서 인간을 더욱더 경계하게 된 것은 아닐까. 로보의 능력은 악마의 능력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생겨난 것이 아닐까.
로보가 더욱 악명을 떨치게 된 것은 먹지도 않을 양이나 소를 죽였다는 것이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재산이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로보를 미워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로보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행위는 인간의 침입에 대한 저항과 자신의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저항이 아니었을까.

시튼은 로보와의 대치 상황에서 수없이 갈등한다. 진정 로보를 잡는 것이 옳은 일일까를 반문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그러나 자연을 지배하려고 하고, 자신의 지배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없애려고만 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하지만, 시튼은 로보를 만나고 싶었고, 꼭 잡고 싶었다. 독미끼로도 덫으로도 잡을 수 없었던 로보를 잡을 단 한가지 방법. 그것은 로보의 짝인 블랑카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자연상태에서의 늑대는 우두머리 수컷과 우두머리 암컷이 다른 늑대를 지배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물론 새끼를 낳는 것도 우두머리 늑대 부부에 한정된다. 그것이 늑대 무리의 결속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영리한 로보를 잡기 위해서 블랑카를 먼저 잡아야했다. 블랑카를 잡고, 그 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는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면서 읽었다. 영리하고 경계심많던 로보가 블랑카를 잃은 후 어떤 행동을 보였는가. 로보의 블랑카를 향한 애정은 얼마나 컸던가. 그리고, 결국 자신들의 무리에게 버림받은 로보, 로보는 물과 음식을 거부한채 자신이 다스리던 골짜기만을 바라보다 굶어 죽었다.

로보, 블랑카를 잃은 너의 고통이 얼마나 힘겨운 것이었는지 잘 알았다. 힘을 잃은 사자, 자유를 빼앗긴 독수리, 짝을 잃은 독수리는 반드시 죽는다고들 하지. 실의와 절망으로 마음이 부서져 버리기 때문에... 정말로 그렇다면.... 로보는... 그와 같은 고통을 한꺼번에 짊어진 꼴이 돼버렸어. (274~275p)

로보를 포획했지만,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로보는 죽었지만 그게 인간의 승리일까. 인간이 무기와 독미끼, 덫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즉 자연상태에서 로보와 감히 대치할 수 있었을까.

그후 로보와 같은 미국 회색늑대는 인간들에 의해 멸종 단계를 밟아갔고, 결국 멸종되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코요테같은 동물들이 채워나갔다. 현재는 미국 늑대를 복원하는데 성공했고, 멸종위기까지 갔던 버팔로도 그 수가 많이 늘었다. 그러나 그것은 옐로스톤 국립공원처럼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에 국한되어 있다. 즉, 언제 다시 멸종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자연을 하위에 두고 지배하에 넣으려는 인간의 무지와 이기심은 과연 어디까지 향하게 될까. 

늑대왕 로보의 이야기는 늑대와 인간의 싸움에 관한 이야기도, 악마같은 늑대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인간의 잔혹한 폭력성앞에 죽어간 동물의 이야기이며, 그들의 인간에 대한 투쟁의 이야기라 봐야 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