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퍼 존스가 문제다
크레이그 실비 지음, 문세원 옮김 / 양철북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간결한 한 문장,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 도대체 재스퍼 존스란 인물은 어떤 인물이기에 문제라는 것일까. 책 뒷페이지를 보니 '왕따'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래서 처음에는 학교를 배경으로 한 성장 소설일까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지만, 책을 읽어 보면 학교 생활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방학 기간이다.

1960년대 말, 오스트레일리아의 작은 마을 코리건은 광산과 발전소에서 근무하는 백인들이 주를 이룬 마을로 겉보기엔 조용하고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 마을이다. 하지만, 어느 날 밤 주인공이자 화자인 열세살의 소년 찰리에게 재스퍼가 찾아온다. 재스퍼가 찰리를 데리고 간 곳에는 주지사의 딸 로라의 시체가 있었다! 이 사건 하나가 이 찰리의 삶과 코리건 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과연 이 소녀의 죽음은 자살인가, 타살인가.

소설은 한 소녀의 죽음과 그 죽음의 진상을 밝히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추악한 진실들을 보여 준다. 작은 마을이 안고 있는 커다란 문제점이 이 사건 하나로 완전히 그 속살을 드러내는 것이다. 베트남 전쟁을 위한 파병과 해고가 만연한 탄광촌의 불안감은 사람들의 배타성과 차별 의식을 역력하게 드러나게 하며, 그것은 특히 재스퍼와 제프리란 두 인물에게 집중된다.

재스퍼는 원주민과 백인의 혼혈로 마을에 나쁜 일만 생기면 무조건 범인 취급을 받는 아이로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어린 시절부터 도둑질을 하게 되고 불량스러운 모습을 보이게 되지만 실제로 재스퍼는 거친 면이 있을 뿐이지, 뼛속 깊이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 그저 재스퍼가 혼혈이기에, 백인 우월주의가 만연한 이 마을에서는 마을을 대표할 희생양으로 재스퍼를 골랐을지도 모른다.
찰리의 친구인 제프리는 베트남계 오스트레일리아인이다. 즉, 동양계로 당시 백인 사회에서의 동양인이란 다른 유색 인종과 마찬가지로 홀대를 받던 시기에다가, 시기적 배경이 베트남전이 한창인 시대인지라 베트콩, 공산당이란 욕을 얻어 먹기도 한다. 제프리는 또래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제프리의 부모는 단지 베트남인이란 것 때문에 마을 사람에게 해꼬지를 당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찰리는? 찰리는 순수 백인이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잘하는 똑똑한 아이란 이유만으로 다른 아이들에게 배척을 당한다.

도대체가 이 마을 사람들은 누군가를 미워할 핑계만을 찾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 정작 중요한 일에는 눈을 감고 귀를 막아 버린다. 로라의 사건이 터진 후 마을 사람들은 재스퍼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그를 무조건 가두고 폭행한다. 아직 로라의 시신도 찾지 못한 상태인데도 무조건 죄부터 자백하기를 강요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혀를 차게 만든다.

이 세상은 뭐가 단단히 잘못되었다. 너무 작고 더럽고 슬픔으로 얼룩진 세상이다. 모든 바윗돌 아래에, 모든 벽장 속에, 모든 나뭇가지들 사이에 내가 알고 싶지 않는 끔찍한 것들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이 마을 사람들이 온갖 일에 오지랖을 떨며 만사를 안정적이고 편안하고 고용하게 유지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399p)

이 소설은 로라의 의문사 사건이 시작과 끝을 이루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나 찰리의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나 로라와 일라이저의 집안 문제는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어느 정도의 예상을 끌어내고는 있지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가정이란 가장 작은 공동체 안에서도 지배와 피지배가 이루어지고, 서로를 격렬히 미워하고 배척하며, 문제가 생기면 덮어 놓고 숨기려고만 한다. 가정부터 이러니 마을이라고 다른 점은 없다. 마을을 하나의 공동체로 봤을 때 그에 속할 수 있는 사람과 속하지 못하는 사람을 분명히 구분하고 희생양을 만들어 그에게 모든 죄를 덮어 씌우는 코리건 마을의 사람들. 그러나 그들에게 멸시당하고 무시당하는 재스퍼, 제프리, 찰리는 그들만의 반격을 준비한다. 불합리와 부조리에 맞서게 되는 것이다.

소설은 현재형의 시제와 짤막짤막한 문장으로 몰입도를 한층 높인다. 사건 전개는 지루할 틈없이 이어져 눈을 떼지 못할 정도였다. 하나의 비극이 또하나의 비극을 가져올 거란 예상이 들어도 손을 놓을 수가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게다가 찰리의 심리에 대한 묘사도 걸출해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사건과 관련해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하는 찰리의 모습과, 부모와 갈등하고 첫사랑에 설레하는 일상의 모습에서는 그 또래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는 찰리의 모습을 보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든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는 오스트레일리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본문의 내용은 오스트레일리아 소설이라는 느낌이 별로 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주인공인 찰리가 언급하는 영화나 소설이 전부 미국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마크 트웨인의 책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그러한 점에서는 다른 오스트레일리아 작가의 작품속 내용을 언급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좀 아쉽기도 했지만, 마크 트웨인의 소설 속 내용이 책 내용과 무척이나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사회적 부조리와 불합리함에 맞서는 희생양들의 반격과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을 담고 있는 소년들의 모습을 보면서 가슴 속에서 뭔가 묵직한 것이 차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배트맨과 슈퍼맨중 누가 진정한 영웅인지에 대해 토론하는 찰리와 제프리의 대화는 과연 진정한 용기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한창 사랑과 행복으로 충만해야할 나이에 어른들 세상의 추악함과 마주하게 된 소년들의 성장 소설이자 우리가 묵과하고 왜곡하는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을 하고 있는 이 소설은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과연 누구인지 진지한 의문을 떠올리게 한다. 문제는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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