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림 이야기 - 옛그림의 인문학적 독법
이종수 지음 / 돌베개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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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그림 이야기. 총 8글자의 책 제목에는 아무런 방점이 없다.
도대체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까.
이야기, 그림 이야기? 아니면 이야기, 그림, 이야기? 그것도 아니라면 이야기 그림, 이야기?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그림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세번째 정도의 의미를 가질거라 생각한다. 이야기를 담고 있는 혹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려진 그림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책장을 휘리릭 넘겨 보던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보통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들을 보면 도판 목록이 많게는 100장 가까이 되는 것도 있지만, 이 책의 경우 도판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림의 바탕이 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씌어진 글이라면 이러한 구성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책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모두 동양화들로 중국의 옛그림과 우리의 옛그림들에 담긴 이야기와 그 그림의 바탕이 되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동양화라.. 사실 난 동양화라고 하면 부끄럽게도 '그것'이 먼저 떠올려진다. 시쳇말로 동양화 감상이라는 그 놀이말이다.
진지하게,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배운 민화며 풍속화, 산수화 몇 점, 그리고 어른이 되어 좋아하게 된 일본의 우키요에 정도가 내가 아는 동양화의 전부이다.

그렇다면 왜 동양화에 대해 이정도의 지식밖에 없을까. 예전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중고교 시절 미술 시간에 배웠던 것은 주로 서양의 그림이었다. 그리고 대학 교양수업으로 들었던 미술의 이해란 과목도 서양 화가와 화풍을 중심으로 하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서양화의 흐름이나 유명한 서양화가들의 그림은 보면 대충 알수 있을 정도이지만, 그에 비해 내가 속한 동양권의 그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내게 다가온 이야기 그림 이야기는 내가 몰랐던 동양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는 권(卷), 두번째는 축(軸), 세번째는 병풍, 네번째는 삽화이다.
병풍이나 삽화는 지금도 볼 수 있는 우리가 잘 아는 그림 형식이다. 그렇다면 권과 축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실 한자로 써놓아서 그렇지 의미가 어려운 단어는 아니다. 권은 두루마리 그림을 의미하고 축은 벽에 걸어 놓고 감상하는 그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권, 축, 병풍, 삽화로 나뉘어진 그림 양식은 각각의 주제아래 총 2가지의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두루마리 그림은 종이가 발명되기전 대나무에 글을 쓰고 말아서 보관하는 죽간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종이가 발명된 이후에는 종이에 그림과 글을 쓰고 말아서 보관하겠지만, 종이 이외에도 비단도 이런 용도로 사용되었다. 말려 있는 긴 종이에 그려진 그림과 텍스트. 한번에 펼쳐 보기 보다는 조금씩 펼쳐 보는 그림이라고 할까. 따라서 두루마리 그림인 권은 서사성이 강조되는 작품이 많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조금씩 펼쳐 보기에 종이의 길이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권의 형식으로 그려진 이야기 그림에 나오는 낙신부도는 조조의 아들 조식이 사랑했던 한 여인에 대한 시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장한장 넘기는 그림이 아니라 펼쳐가는 그림이기에 물흐르듯 진행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후적벽부도는 관직을 멀리하고 낙향한 소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서사성이 강조된 작품이라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변화등이 뚜렷하게 보여 정말 한편의 이야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걸어 놓는 그림인 축은 한번에 모든 것이 보이기 때문에 두루마리 그림이 갖는 서사성보다는 한장의 그림에 모든 것을 담아내는 함축성을 지닌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축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그럴지는 그림의 바탕이 되는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이 그림의 전체 전개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사람중의 하나로 필자가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더라면 도대체 이게 무슨 내용일까 싶었을 것 같다. 하지만 권과 달리 한폭에 모든 걸 담아내기에 권보다는 사람의 눈을 집중시키는 힘을 가진듯 보인다. 특히 장대천의 도원도를 보면서 나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사람들의 이상향이라 일컬어지는 도원의 입구를 그린 이 그림은 그 자체로 나를 압도시켰다고 할까. 묵의 농담, 흐드러지게 핀 꽃의 아름다움, 그리고 보일듯말듯한 도원의 입구는 비록 서사성은 가지고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이었다.

병풍은 우리에게 꽤나 익숙한 그림 형식의 하나이다. 물론 병풍이라고 해서 그림만을 그려 놓은 것만이 있는 것은 아니고, 좋은 글귀를 써놓은 병풍이나 장수를 기원하기 위해 십장생도를 그린 병풍, 풍경의 아름다움을 그린 산수화로 이루어진 병풍도 있지만, 이 책은 이야기 그림을 다룬 것이니 이야기를 담은 병풍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병풍에 나오는 그림은 우리나라 산수화가로 유명한 정선의 작품과 풍속화로 유명한 김홍도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선의 그림과 김홍도의 그림을 비교해 보면 무척이나 재미있다. 정선의 그림에서는 사람을 아주 작게 표현해서 멀찍이서 보면 산수화를 그린 병풍이 아닌가 싶지만, 자세히 보면 사람이 조그맣게 그려져 있다. 반대로 김홍도의 그림은 사람들이 큼직하게 그려져있고, 게다가 등장인물수도 꽤 많다.


위의 사진이 바로 김홍도가 그린 병풍 그림인 서원아집도인데, 총 6폭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에 그림을 나눠서 봤을 때는 각각 다른 시간대를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멀찍이서 보니 전체가 연결된 그림이었다. 게다가 많은 사람과 사물, 그리고 나무를 배치시켜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른쪽위에서 왼쪽 아래로 이어지는 사선이 탁 트여있어 복잡한 그림인데도 전혀 답답하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인물과 사물의 절묘한 배치란 부분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작가의 대작이란 생각이 든다.

마지막에 나오는 삽화는 요즘도 많이 쓰이는 그림의 종류나 누구에게나 익숙할 것 같다. 이 삽화란 것은 책의 보급이란 것과 연관되어 있다. 목판화로 제작하는 방법은 책의 보급률을 높여준다. 필사본의 경우 그 수량이 한정되게 마련이지만, 판화 기법이라면 언제든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그림도 특수한 계층의 소유가 아닌 서민층도 소유할 수 있고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본의 우키요에 역시 목판화란 기법을 이용함으로써 서민층에게 널리 보급되었다. 물론 이럴 경우 가치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서민 문학의 발달과 서민 문화의 발달이란 점에 비추어 본다면 무척이나 긍정적인 요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위 사진의 그림은 진홍수의 당심지정북서상비본의 삽화이다. 양쪽으로 나뉘어져 들어가 있는 삽화는 어찌 보면 요즘 만화의 시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특히 밑에 있는 그림의 구름속 장면은 더욱더 그렇게 느끼게 만든다. 저자는 이 삽화를 설명하면서 연극과 관련된 희곡을 염두에 두고 그려진 그림이라고 하는데, 나는 연극보다는 만화가 먼저 생각났다.

이렇듯 총 4개의 카테고리로 총 8개의 이야기 그림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국문학과 미술사학을 공부한 저자의 깊은 지식을 보여준다. 특히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이기에 그림의 바탕이 되는 이야기에 대한 이해와 그림 자체에 대한 이해가 상당함을 느낄수 있었다. 조금 어려운 용어도 많이 쓰이기는 햇지만, 그림 하나하나, 그리고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설명, 그리고 그 인물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차례차례 보여줌으로써 이 책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주었다.

이 책은 어렵다고만 생각한 옛이야기와 옛그림들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떨치게 만들고, 동양화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되고, 흥미를 가지게 만드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의 설명이 너무 자세하게 나와 있어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부분이 있는듯 느껴지기는 하나, 옛그림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게 하는 걸로는 더할 나위 없는 듯 하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162~163p, 196~1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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