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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고양이야? - 베틀리딩클럽 저학년 그림책 2002 ㅣ 베틀북 그림책 10
기타무라 사토시 지음, 조소정 옮김 / 베틀북 / 2000년 7월
평점 :
나야? 고양이야?
무슨 뜻이지? 언뜻 든 생각으로는 나와 고양이를 놓고 양자택일을 하란 것으로 들린다. 내가 좋아, 고양이가 좋아? 라던가, 나를 선택할거야, 고양이를 선택할거야? 라던가...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증을 가득 안고 책을 펼쳤다.
어느 날 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마녀는 이상한 주문을 외고 사라진다. 별일 아니겠지 싶어 잠이 든 니콜라스는 다음날 아침 뭔가 심히 수상쩍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건 바로, 니콜라스와 고양이 레오나르도의 몸이 뒤바뀐 것. 이거 어쩌면 좋아라고 하면서 발을 동동 구를새도 없이 니콜라스의 몸을 한 레오나르도는 학교에 가게 된다. 그리고 레오나르도의 몸을 한 니콜라스의 하루도 시작되었다.
니콜라스는 고양이가 되니 나른해진다. 한숨 푹 자고, 집안을 탐험하다가 집을 어질러 쫓겨나고, 담장을 걷다가 동네 고양이들과 싸우다 담장 밑으로 떨어지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개인 버나드에게 쫓기기까지 한다. 니콜라스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학교에서 돌아온 레오나르도를 만나는데, 그후부터 레오나르도의 움직임이 심상치않음을 본다. 모습은 자신의 모습 - 니콜라스의 모습-인데 하는 짓은 영락없이 고양이이기 때문이다. 고양이문을 통해서 들어오려 하고, 바닥을 기고, 운동화를 물어 뜯고, 가구에 손톱을 갈고, 털실을 가지고 놀다가 온몸에 칭칭 감고, 고양이 변기에 앉아서 볼일을 보는 등 해괴한 일을 벌인다.
니콜라스는 그런 레오나르도를 보면서 슬슬 헷갈리기 시작한다. 저 모습을 하고 있는 건 진정 나인지, 고양이 레오나르도인지. 그래서 나온 말이 나야? 고양이야?
하지만 이 책이 단지 사람과 고양이가 뒤바뀌어 벌어지는 해프닝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고 있을까? 문득 사자성어 중 역지사지(易地思之)란 단어가 떠오른다. 나와 상대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본다는 뜻의 역지사지. 니콜라스는 단 하루뿐이긴 하지만 고양이 레오나르도가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경험해 보았다. 집안을 어지른다고 엄마에게 혼난 후 쫓겨나고, 동네의 힘센 고양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개에게까지 쫓긴다. 늘 나른하게 집에서 졸고만 있는 것처럼 보여도,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하는 것처럼 보여도, 레오나르도도 자기 나름대로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니콜라스 입장에서는 늘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하는 레오나르도가 내심 부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일단 레오나르도는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니까! 초등학생이든 중고교생이든 학교에 가기 싫은 때가 꼭 온다. 하지만 어쩔수 없이 학교에 가야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늘 집에서 졸고만 있는 것처럼 보이니 니콜라스에게 있어서 그것 하나만큼은 정말 부러울 지도 모르겠다. 물론, 다른 의무에서도 마찬가지 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럼 레오나르도는 인간으로서의 하루가 어땠을까? 인간은 이렇게 불편하게 사는구나, 쓸데없는 것에 신경쓰면서 사는구나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신의 자유로운 삶에 더욱더 고마움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레오나르도는 말이 없다. 다만 나의 짐작일뿐)
책 표지도 그렇지만, 본문에 수록된 그림이 다른 동화책과는 확실이 다른 점이 보인다. 그건 바로, 만화같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작가인 기타무라 사토시는 스스로 만화광을 자처하는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 그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이 이 그림들이다.
특히나 이 장면은 니콜라스의 몸을 하고 학교에 다녀온 레오나르도가 몸은 인간인채로 고양이 행동을 하는 걸 보여주고 있는데, 한편의 만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고양이의 습성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 그대로의 모습을 한 아이의 모습에 웃음이 나와버렸다. 물론 그 모습을 보는 니콜라스의 마음은 절대로 그렇지 않겠지만 말이다.
경쾌한 그림과 판타지와 현실적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진 나야? 고양이야?는 상대의 입장이 되어봄으로서 상대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니콜라스가 만약 레오나르도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았다면, 레오나르도 나름의 고달픈 삶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을까?
현실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우리는 동물이 될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없다. 하지만, 상대에 대해 선입견을 먼저 가지기 보다는 먼저 상대의 입장을 헤야려 볼 수는 있다.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해도 상대에 대한 배려는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24~2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