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이 부르는 소리 잭 런던 걸작선 4
잭 런던 지음, 곽영미 옮김 / 궁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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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런던의 책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십여년전 강철군화를 읽으면서였다. 그러다가 작년 궁리출판사에서 새롭게 잭 런던 걸작선을 펴내면서 비포 아담을 읽게 되었고, 또다시 시간이 지나 올 여름 야성이 부르는 소리를 읽게 되었다. 이건 아마도 몇달전에 읽은 다니구치 지로의 동토의 여행자 때문이리라. 동토의 여행자에 수록된 작품 중 잭 런던의 화이트 팽을 바탕으로 한 만화가 있었고, 그때문에 잭 런던의 소설 중 알래스카를 무대로 하는 또다른 작품인 야성이 부르는 소리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기 때문이다.

야성이 부르는 소리에는 총 세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작인 야성이 부르는 소리는 벅이라는 개를 주인공으로 혹한의 알래스카에서 살아남으며 자신의 본성을 되찾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따뜻한 남쪽 지방, 판사의 저택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왔던 벅이 인간의 욕심에 의해 알래스카의 썰매견으로 팔리게 된다. 처음에는 인간에게 반항하고, 다른 개들과도 잘 지내지 못하던 벅은 몽둥이와 엄니의 법칙에 순응하며 서서히 적응해나가게 된다. 몽둥이와 엄니의 법칙, 벅은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법칙이 존재하는 세상으로 발을 디디게 된 것이다.

1800년대 말, 알래스카에서 발견된 금광때문에 골드 러시가 일어나게 되고, 그곳에 수많은 백인들이 찾아간다. 얼음과 눈의 땅이 알래스카를 횡단하기 위해서는 썰매개처럼 유용한 운송 수단이 없었고, 벅을 비롯해 수많은 개들이 썰매개로서 이용된다.  

단지 운송 수단으로 이용되던 개들에 대한 인간들의 학대, 개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서열 다툼과 썰매개로서 이용되는 개들의 참혹한 죽음 등은 너무나 잔혹해서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인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의 개들은 그저 이용가치에 따라 평가된다. 따라서 벅은 이 사람에게 팔렸다가 저사람에게 팔렸다가 하는 물건 이상의 효용가치이외의 가치는 없었다. 게다가 개들은 자신들을 위협하는 다른 개들을 비롯해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늑대들에게도 맞서야 한다.

인간의 지배하에 있지만 혹독한 자연과 자신의 목을 물어 뜯으려는 다른 개들 사이에서 살아 남기 위한 알래스카는 생존의 각축장이자 벅에게 숨겨진 본성을 조금씩 드러내게 만든 야생이기도 했다. 썰매개로서의 주인에 대한 복종, 썰매개들 사이의 우두머리 각축전등은 잔혹하기만 했다. 야생에서는 인간보다 더 강한 존재이지만, 몽둥이에 길들여져 인간의 종속물이 된 썰매개들. 벅도 그렇지만, 난 특히 데이브의 이야기에서는 눈물이 쏟아질 뻔 했다. 다 죽어갈 지경이 되어서도 썰매를 끌기 위해 움직이던 데이브. 죽어가면서도 썰매을 끄는 일이 자신의 사명이라 여기는 데이브를 보면서 인간은 저만도 못한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몽둥이와 엄니의 법칙, 날것 그대로의 야생이 존재하는 알래스카에서 벅은 손턴이라는 사람을 만나 처음으로 사랑이란 것을 받게 된다. 그리고 손턴이 키우는 개들을 만나면서 개들사이에서도 엄니의 법칙만으로 지배와 피지배가 아닌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 행복도 잠시, 손턴과 손턴의 개들의 죽음으로 벅은 완전히 야생으로 돌아가 버리게 된다. 자신을 붙잡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었기에....

여기에 등장하는 벅은 세퍼드와 세인트 버나드의 잡종으로 몸무게만 70KG에 육박하는 초대형견이다. 따라서 개의 조상인 늑대의 피를 많이 물려받은 개이기도 하다. 벅의 몸속을 타고 흐르는 야성의 유전자, 그리고 좋은 머리와 타고난 보스기질은 벅을 생존의 각축장에서 살아남게 만들었다. 만약 벅이 유약한 성향을 가진 개였다면 알래스카에 끌려가기도 전에 수명이 다했을지도 모르겠다. 벅이 생각하는 것중에 무척 인상깊었던 것은 양심이나 도덕성은 야생에서의 삶에서 사치요 허영이란 것이었다. 생존이란 것 앞에서는 어쩌면 도덕성이란 것은 따질수 없을 정도의 무가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문명화된 인간사회. 아이러니컬하게도 인간은 문명화될 수록 야만성이 더 커진다. 야생에서는 필요를 위해 희생이 불가분하지만,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목적에 의한 희생이 더 많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뒤로는 사람을 짓밟고 우위에 올라서려 한다. 그러는 동안 양심도 도덕성도 사라지는 경우도 많다. 특히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사회 아래에서는.... 야성이 부르는 소리를 읽으면서도 인간 사회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리라.

두번째 수록작품인 불을 필우기 위하여는 무척이나 짧은 단편이다. 알래스카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노인의 말을 무시하고 혼자 길을 떠난 한 남자. 극한의 추위와 사투를 벌이며 생존을 위해 온갖 몸부림을 치지만 결국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 스러지고만다. 그러나 자연의 힘에 굴복했다기 보다는 인간으로서 의연한 죽음을 선택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어쩌면 인간의 가소로운 자존심일지도 모르겠지만... 

마지막 작품인 북쪽 땅의 오디세이아는 원주민들의 땅에 들어온 백인과 그 땅의 부족장인 한 남자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사랑하는 여인을 백인에게 빼앗긴 아쿠탄의 추장 나스는 그녀를 되찾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거친다. 유색인이라 손가락질 받고, 처음 보는 세상에 힘겨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여인의 행적을 쫓아간 나스. 그런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난 여인은 너무나도 많이 변해버렸다. 그새 백인 사회에 물들여져 자신의 기반이었던 고향을 싸그리 잊고 만 것이다. 이 이야기는 짧지만 무척 많은 것을 시사한다. 평화로운 공존의 땅에 침략한 백인들의 원주민에 대한 만행은 이루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자연과 공존하고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면서 살던 원주민들을 문명화시킨답시고 백인들이 보여준 새로운 세상은 원주민들을 파멸의 길로 이끌었다. 소수부족이 사라지고, 빈곤의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원주민들의 모습은 지금도 여전하다.

세편 모두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골드 러시 당시를 무대로 하고 있다. 개, 백인, 그리고 원주민의 추장을 각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내세워 알래스카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그러한 것은 작가 잭 런던이 직접 알래스카에서 2년간 생활했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라 생각한다.

자연은 그 자체로 잔혹한 존재도 혹독한 존재도 아니다. 자연이 잔혹하고, 혹독하다고 여기는 것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려하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자연은 필요 이상의 낭비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필요 이상의 낭비를 하고 있다. 거대한 존재인 자연앞에서는 인간도 그 일부일뿐이다. 벅이 본성을 찾고 야성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자연을 지배하기 보다는 자연의 법칙에 순응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벅도 자연의 법칙을 따랐다. 오직 인간만이 그렇지 못할 뿐이다.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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