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차사 화율의 마지막 선택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부터 김진규 작가의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남촌 공생원 마나님의 280일이란 제목과 내용 소개를 보면서 무척이나 궁금해했는데, 어영부영하다 보니 해를 넘기고 결국 올해 나온 저승차사 화율의 마지막 선택이란 작품을 선택했다. 처음엔 저승차사?? 라고 하며 고개를 갸웃갸웃.. 내가 알기론 저승사자인데, 뭔가 좀 다른가 싶은 생각도 생각도 들고.... 읽어 보니 색다른 역사 판타지라고 해야 할까, 무척이나 신선한 느낌이었다.

배경은 조선 영조 임금 시대. 이렇게 보면 혹시 역사 소설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지 모르겠지만, 역사 소설이라기 보다는 시대물이며, 판타지 성향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니 영조가 등장해도 그저 그려러니 하고 납득하고 보는 게 책 몰입도를 높여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저 배경 정도로 이해해도 무관할듯 하다. 물론 시대상은 그 시대를 반영하고 있기에 오히려 시대적인 감각을 덧붙이기 위해 영조를 등장시키고, 주인공들에게 시련을 내리기 위해 영조가 등장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즉 영조는 중심인물이 아니란 뜻)

이야기는 수습 저승차사가 된 화율, 연홍, 수강, 염색장 채관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면서 진행된다. 화율이 인간이었을 때의 이름인 우재와 징신의 이야기는 금지된 사랑과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 나고, 그리고 수습 차사가 된 후에도 징신을 잊지 못해 징신을 찾아다니는 화율의 이야기와 화율의 실수로 시력을 잃게된 연홍의 이야기, 그의 정혼자이자 영조의 노여움을 사 혀를 잘리게 된 수강의 이야기, 전생을 기억하며 환생하는 채관의 이야기는 좀 복잡한 설정이군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금세 이야기의 틀이 잡혀갔다. 물론 전생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좀 헷갈리기는 했지만...

일단 화율의 이야기를 보면 인간이었을때 화율은 우재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어려서 버려지고 징신의 어머니에게 길러져 징신과 형제처럼 자랐지만, 어느새 둘은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고 만다. 사랑을 느낀 상대가 사내였으니,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어땠을까. 결국 죽임을 당하고 저승에서 차사가 된 화율은 징신을 찾아 헤매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도대체 징신은 어디에 있는 건지.. 징신을 찾다 실수로 화율은 연홍의 시력을 잃게 만드는 실수까지 저지른다. 그러나 화율은 자신과 징신의 전생을 알게 되고, 저승에서 같이 수습 차사로 지낸 징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등의 충격으로 더이상의 진심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어 결국 마지막 선택을 내린다.

연홍은 양갓집 규수로 곱게 자라 수강의 배필로 일찌감치 짝지워졌으나, 영조시대의 정쟁 문제로 인해 집안의 남자들은 몰살당하고, 어머니와 연홍은 관비가 될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어머니는 돌림병으로 급사하고 연홍은 눈을 잃게 된다. 연홍은 수강을 찾아가지만 그 동안 겁탈을 당해 아이까지 임신하게 된다. 그런 연홍을 잘 보살펴 준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연홍을 겁탈한 사람의 아우인 검송이었다.

수강은 연홍의 집안 문제에 얽혀 혀가 잘리고 염색장 채관의 집으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매일매일 연홍을 생각하지만 결국 연홍이 자신앞에 그런 처지가 되어 나타나자 외면하게 된다. 결국 수강은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배워왔던 유학의 사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염색장 채관과 연홍의 인연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과거의 자신의 아내였던 연홍은 자신을 거부하고 아이를 유산시켜 버린다. 그후 채관은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환생을 거듭하게 되고, 연홍은 자신이 놓아버린 자식에 대한 미안함으로 저승과 이승에 걸쳐있는 몸으로 살게 된다.

이렇듯 인물들 사이의 관계는 전생과 현생을 넘나들며 복잡하게 얽혀간다. 특히 연홍을 되찾기 위해 환생을 거듭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 채관을 보면서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결국 이번 생에서도 그들은 연결되지 못한다. 그건 아마도 그들 사이에는 부부의 연이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또한 우재(화율)과 징신도 마찬가지. 서로를 연모하나 끝끝내 이어지지 못할 인연이었다는 것이 나중에 드러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인연이란 것이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붉은 실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인연.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 모두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때를 못맞춘 것이 아니라, 결국 인연은 거기까지였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연홍과 먼옛날 죽은 아이의 인연만이 줄기차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을 뿐. 그래서 그런지 너무나도 안타깝고 애틋했다. 특히 화율이 같은 저승차사가 된 징신을 알아 보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징신은 아무말 없이 영면으로 들어가 버린 것에 대해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어쩌면 징신만이 우재를 알아봤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에서 또하나 재미있는 것은 상제의 존재이다. 모든 것이며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이자, 진실이자 거짓인 존재. 상제와 차사들의 대화, 상제와 화율의 대화는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절대적인 권능이라 생각한 존재에 대한 믿음을 단박에 부숴버린 것이라고나 할까. 오히려 너무나도 인간에 가까운 존재였다.

첫 장부터 찬찬히 읽어 내려가면서 여성 작가답게 쫀득쫀득한 비유나 수식어, 수많은 의성어와 의태어등은 평소 간결하고 날 것같은 느낌의 글을 읽어오던 나를 조금 당황시키기도 했다. 또한 작가의 시선이 화율, 연홍, 수강, 염색장 채관으로 옮겨가면서 바뀌어가는 통에 처음엔 좀 헷갈리기도 했다. 게다가 이들이 윤회를 거듭하던 인물이다 보니 나중에는 누가 누군지 헷갈릴뻔 했으나, 나중에 한번에 설명이 좌악하고 이루어져 난감할 일은 없었다.  

그러나 문장들이 너무 나폴나폴 날아다니는 통에 집중이 좀 안된것도 사실이다. 감수성 예민한 독자라면 아름다운 문장들에 영화같은 장면을 상상했겠지만, 평소 간결하고 똑부러지는 느낌의 미스터리같은 장르 소설을 즐겨 읽는 나로서는 책에 몰입하는 것이 조금은 어려웠다는 게 단점일까. 그래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신비롭고 사랑스러웠으며, 때로는 안타깝고 측은하기도 했다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