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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자 귀신아! 벚꽃
임인스 지음 / 보리별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들어 부쩍 웹툰의 단행본화가 늘었다는 게 실감이 난다. 예전 직장 생활할 때는 비는 시간에 몰래 몰래 웹툰을 보곤 했는데, 이젠 다양한 작품을 단행본으로 만나볼 수 있으니까. 사실 요즘엔 웹툰은 거의 보지 않다 보니 이렇게 단행본이 되어 나와야 보는 일이 더 많다. 이 만화도 단행본으로 나오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렇게 서평을 쓸수나 있었을까? 속으로 은근히 다행이라 되뇌고 있는 1人. (笑)
책 제목을 보면 '귀신'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나야 원래 공포물같은 걸 좋아하는데다가, 이렇게 더운 여름이다 보니 당연히 이런 소재에 눈이 간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이라 많이 다른 내용 전개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저 귀신이라는 소재를 빌어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그런 작품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인공은 3 + 1명으로 압축된다. 어린 시절부터 귀신을 보는 아이로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고 다른 사람들을 멀리하면서 자란 봉팔, 사고로 죽었지만 미련으로 이승을 떠도는 현지, 그리고 봉팔의 첫사랑이자 봉팔의 앞에서 자살하고만 혜림. 또하나는 사람은 아니고 귀신인지 뭔지 하는 존재로 혜림의 마음속을 파고 들어와 자신을 의지하게 만든 몽마(혹은 인큐버스)(일지도...).
사실 남들과 다른 존재란 것은 불편한 일이다. 특히 귀신을 본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아주 감당하기 힘든 부분일 것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주변 사람들과 멀어지고 스스로 혼자가 되어 고립되고 싶은 봉팔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없는 이상 봉팔은 언제나 혼자일 것이다.
그런 봉팔에서 손을 내민 건 혜림이란 학원 친구. 늘 밝고 명랑하고 인기많은 혜림은 봉팔에게 다가오지만, 혜림에게는 무서운 비밀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보고, 그와 소통을 한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적당히 어울리는 듯 보여도 실제로 혜림이 의지하고 있는 것은 산 자의 영역의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영역에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봉팔과 혜림은 비슷한 점도 있어 보이지만, 속성은 전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봉팔은 죽은 자들에게 시달리면서도 산 자들의 영역에서 살아가려 안간힘을 쓰고, 혜림은 산 자들과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은 죽은 자들의 영역에 있다는 것이다. 사실 봉팔의 사연만 알고 혜림의 사연을 몰랐을 때는 난 혜림의 편이었다. 늘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 다른 아이들은 유치하며, 자신이 왕따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왕따시킨다는 생각을 하는 봉팔을 보며, 뭐 이런 거만한 녀석이 다 있나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혜림이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을때 그걸 외면해 버렸다.
결국 혜림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여전히 지박령이 되어 그곳에 머무른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보다는 상대를 원망하면서. 현지는 비록 혜림의 사고에 휘말려 죽게 되었지만 그 일에 대해서는 원망을 하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죽었으니 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텐데도 말이다. 오히려 특별한 아이였던 봉팔이나 혜림보다 평범한 현지쪽이 귀신이 되어서도 더 건전한 사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가 아닐까?
입시에 시달리는 학생 시절은 누구나 힘들다. 그리고 그 힘겨움의 무게는 그 상황은 모두 다를지도 모른다. 또한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내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를 보며 넌 절대로 날 이해못할 것이란 것이다. 물론 사람들끼리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힘들지라도 서로 상처를 주고 받을지라도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상처하나 없는 완벽한 인간은 없다. 흉터자국 하나 없는 인간은 없다. 살면서 절망에 몸부림쳐보지 않은 인간은 하나도 없다.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아니면 굴복하느냐에 따라서 그 뒤가 달라진다.
죽음은 모든 걸 해결해 주지 않는다. 상처입었다고 당장 죽는 건 아니다. 오히려 상처에 새살이 돋아나는 과정을 거침으로서 비 온뒤 땅이 굳듯 마음을 더욱더 강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혜림은 자신이 좋아하는 벚꽃처럼 한순간에 피고 한순간에 져버렸다. 물론 혜림의 마음을 아예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동정은 안간다. 오히려 죽은 뒤에도 남은 자에게 원망을 쏟아내는 혜림이 그저 측은할 뿐이었다.
작화나 스토리가 약간은 서툴다는 느낌도 있지만, 오히려 그러한 것이 고교생의 심리를 더욱 잘 잡아낸 것처럼 보인다. 싸우자 귀신아!의 다음 이야기도 나와있던데, 그건 또 어떤 이야기인지 무척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