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구혜영 옮김 / 창해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드디어, 드디어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뷔작을 읽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출간된 소설만 해도 50여권이상에 달하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워낙 다작 작가이다 보니 신간 읽기에도 바빠서 데뷔작은 읽을 엄두도 못냈지만, 그의 추리 소설의 시작이 너무나도 궁금해서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학원물중 가장 최근에 읽은 작품은 동급생으로 남녀공학에서 벌어진 참극을 남녀 학생이 풀어가는 이야기였다. 방과후 역시 학원물, 그러나 이번엔 여고가 배경이다.

여고를 배경으로 선생님과 학생, 그리고 어른과 아이라는 대립적인 입장의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몰이해가 빚어낸 참극. 과연 그 속에 숨은 진실은??

지역에서 명문으로 불리는 세이카 여고에서 수학 교사이자, 양궁부 고문을 맡고 있는 마에시마는 어느날부터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듯한 공격에 불안해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학생지도교사 무라하시가 남자 탈의실안에서 청산가리 중독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현장은 완전한 밀실. 도대체 누가, 어떤 방법으로 그를 살해했을까.

범인은 무라하시와 연인관계라 여겨진 동료 여교사 아소, 무라하시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요코, 양궁부 주장 게이, 그리고 두뇌 명석한 미소녀 검도부 주장 마사미 등 용의자가 차례차례 등장하지만 모두에게 알리바이가 있다. 게다가 여자 탈의실은 잠겨져 있었고, 남자 탈의실에는 버팀목이 있어 완전한 밀실이었는데, 범인은 어떻게 그 밀실을 빠져나가게 되었을까.

그러나 그런 중에도 학교 축제 기간이 다가오고 학교는 축제 준비 분위기로 들썩인다. 그리고 학교 운동회 당일, 또 하나의 사건의 발생한다. 이번엔 체육교사 다케이가 청산가리 중독으로 사망했다. 과연 무라하시 사건과 이 사건의 연결 고리는 어떻게 되는 것이며, 과연 범인과 범인의 트릭, 그리고 범인의 동기는 무엇일까.

학교라는 폐쇄적인 집단내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범인은 대부분 학교 관계자들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렇다면 교사와 학생중 범인이??? 이 소설을 보면서 매우 흥미로웠던 부분은 밀실 트릭일 것이다. 세상에는 완벽한 밀실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역시나 밀실 트릭이 나올 때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든다. 완벽에 가까울수록 멋진 밀실 트릭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줄이야.... 완벽한 밀실트릭이 페이크였다니!! 여기에서 완전히 충격을 먹고 멍~~해져버린 나. 이것은 범인의 정체를 완벽하게 감출 또하나의 위장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동기 또한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나의 여고 시절이 언제였더라.... 라고 생각하는 나이가 되어버린 나로서는 이러한 동기가 사람을 죽이고 싶게 만드는구나 하는 마음에 섬뜩해졌다. 하지만 억지로 그 시절을 되돌려보자면 어른이라면 그냥 넘어갈 일도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경우가 있고, 또한 어른들이 보이엔 별것 아닌 일에도 신경을 쓸 만큼 감수성이 예민하며, 낙엽 굴러가는 모습에도 꺄르르르하고 웃음을 터뜨릴만큼 감성이 예민하기도 한 시기가 바로 여고 시절인 것이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가 1985년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25년전이나 되지만, 이렇게 여학생들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잘 표현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놀랍다. 그것도 남성 작가가 말이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여기에 나오는 여학생들 역시 요즘 아이들 못지 않게 무섭고 당돌하다. 25년전에 씌어진 책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세대와 비교해 봐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을 정도다.

특히 게이의 이 말이 인상에 깊게 남았는데, 여고생들의 마음을 딱 꼬집어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다.
"모르시는군요. 사람을 쉽게 죽일수 있는 약이 있으면 저라도 가지고 싶을 거예요. 그게 언제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자기가 쓰게 될지도 모르고. 저희는 그런 세대예요." (416p)

의외의 범인과 의외의 동기, 그리고 치밀한 범죄 수법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다 싶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웃음이 픽하고 나와버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에시마의 아내 유미코에 대해서 처음부터 의심을 했던 나였지만 왠지 사족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난 유미코가 학교 선생과 불륜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건 유미코가 등장하는 부분에 복선으로 깔려 있는 문장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뭐, 학교 선생은 아니지만 불륜은 맞았달까. (왠지 어디서 본 설정인데.... 아무래도 모 작가가 다른 책에서 이 설정을 가져다 쓴 모양이다) 어쨌거나 여고생들의 이야기와 그 아이들이 그런 일을 저지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납득하던 차에 유미코의 불륜 사실과 마에시마에 대한 공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결말 부분은 아무리 봐도 괜한 덧붙임이란 생각이 든다. 음. 데뷔작이니까 많은 걸 보여 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보면 납득이 좀 가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깔끔한 전개에 지루하지 않은 스토리, 그리고 선생과 학생의 대립, 어른과 아이의 갈등, 그리고 여고생과 학교라는 폐쇄적인 집단내에서의 암묵적인 동의, 여고생에 대한 섬세한 심리 묘사와 절묘한 트릭, 동기는 데뷔작이란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오히려 뒤에 나온 작품중에 이것보다 못한 작품이 있다는 게 아이러니랄까.

방과후는 글 잘쓰는 작가는 데뷔작부터 남다르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만든 책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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