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도서관 1
요시자키 세이무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집 근처에는 도서관이 없었다. 그래서 난 토요일 4교시 수업이 마치면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오곤 했다. 왜냐하면 토요일에는 이동도서관이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로 찾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소가 늦게 끝나는 날은 열심히 달려와도 번번히 그 차를 놓치기 일쑤였다. 대출 기간은 2주. 당시 변변한 도서관이 없던 중소도시였기에 이동도서관은 내게 큰 보물이었다. 물론버스라고 해도 중형버스정도 크기라 책은 그렇게 많지 않았어도 내 눈에는 보물창고와 다름없이 보였었다.

어린 시절부터 툭하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고 초등학교 입학도 한달이나 늦게 해야만 했던 나에게 있어 책은 또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다. 책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펴고, 또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를 보면서 잔뜩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가방도서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이 존재하는 곳. 하지만 겉보기에 작은 가방에 불과하다. 사서와 도서관 자체인 가방이 여행을 떠나며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사연을 전해듣는 이 만화는 힐링계 작품이다. 총 15가지의 에피소드가 등장하며, 각기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이 담겨 있다. 할아버지의 유품으로 남겨진 책에 관한 이야기, 어머니와 아들의 동반자살에서 살아 남은 아들이 책 한권으로 인생이 바뀌게 되는 사연, 죽은 아들의 책을 만나게 된 아버지 등 책에 관한 추억과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가방 도서관을 만나면서 그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희망을 품게 된다.

하지만 가방 도서관에는 이런 사연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엉뚱하고 때로는 유머스러운 유쾌한 순간들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가방 도서관에게 평범한 삶을 사는게 어떻냐는 가방 수선 장인의 뒤에 숨겨진 사연, 가방 도서관이 일년에 3일은 꼭 휴관을 하는 사연, 가방 마니아 여성의 가방 도서관 유괴 사건등을 비롯해 사서 아저씨와 가방 도서관의 귀여운 실랑이등은 절로 미소를 떠오르게 하거나 웃음이 터지게 한다. 특히 가방 마니아 여성에게 가방 도서관이 선물한 책 제목에 폭소를 떠뜨리고, 가방 레코드와의 만남에서는 또다른 가방이 존재할 가능성에 대해 한껏 기대치를 끌어올리게 한다.


작은 가방 속의 모습은 이렇다. 마치 M.C. 에셔의 판화에 나오는 그런 공간과도 같은 느낌이랄까. 수많은 계단과 수많은 문들. 이 문들의 안쪽에는 다양한 목록으로 분류된 장서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이 미로와 같은 공간안에서는 사서조차도 길을 헤맬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문득 이 공간을 탐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길을 잃고 미아가 될까 두려워진다. 대신 원하는 책이 있다면 말만 하면 된다고 하니,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궁금해지는 것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맨 처음과 맨 나중에 나오는 가방 도서관을 쫓아 다니는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꼭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서 가방 도서관을 찾아다니지만 결국 간발의 차이로 놓치는 여성. 하지만, 그녀는 가방 도서관을 쫓아 다니는 사이에 자기가 읽고 싶었던 책이 무엇인지도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오래전에 절판된 책을 찾아 고서점을 뒤지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아예 없거나 있어도 비싼 가격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던 기억이 난다. 그후 세상에는 읽을 책이 이렇게나 많은데, 굳이 그 책에 집착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여성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가방 도서관을 찾는 일에만 집착을 하다 보니 결국 자신이 무엇을 읽고 싶어 했는지도 잊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각기 다른 책들과 그 책들에 얽힌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 그리고 가방 도서관이 인용하는 괴테의 문구는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따스하면서도 유쾌한 가방도서관의 다음 이야기가 무척이나 기다려진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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