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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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제목을 봤을때, 문득 아메리칸 드림을 떠올렸다. 미국적인 이상사회를 꿈꾸는 아메리칸 드림. 그리고 그것에 이끌려 이민을 떠난 수많은 한국인들의 모습도. 현대 한국 사회의 꿈은 강남 드림.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부를 소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자, 나도 저런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라는 한국인들의 소망을 담은 강남 드림, 그런 말이 아닐까 싶었다. 이 책의 내용은 어느 정도의 의미에서는 이 말에 부합된다. 

소설은 1995년에 발생한 삼풍 백화점 사건을 중심 이미지로 삼아,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조망하고 있다.즉, 해방후 급속한 경제 성장과 부패한 정치, 정경유착등이 불러온 삼풍백화점 참사는 하나의 상징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각각 박선녀, 김진, 심남수, 홍양태, 그리고 임정아로 대변되는 그들은 대한민국 사회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속성과 계층을 대변한다. 박션녀는 가난한 집안의 딸로 태어났지만 타고난 미모로 모델 생활을 하다 유흥업쪽으로 뛰어들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조마담은 대한민국의 첫번째 요정을 운영하던 사람으로 나온다. 처음에는 룸살롱의 새끼마담으로 시작해 호텔 유흥업소의 경영까지 맡게 된 박선녀의 이야기를 보면 유흥업소와 손잡은 조폭의 이야기며, 선녀의 뒤를 봐준 안기부 직원, 그리고 선녀가 유흥업에서 손을 떼고 부동산으로 돈을 벌게 되는 이야기까지 등장한다. 박선녀 개인의 삶으로 보자면 참으로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낸 것이지만, 재미있게도 이는 개인의 역사를 넘어 대한민국의 뒷세계의 역사와도 관련이 지어진다.

김진의 경우 현재 대성 기업 회장으로 대성 백화점(삼풍 백화점을 의미)의 소유주이지만, 그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일제시대 말기부터 시작된다. 만주에서 밀정으로 독립군들을 고발하는 일을 하며 친일활동을 하다가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의 개, 즉 친미파로 돌아서게 된다. 그후에 나오는 수많은 역사적인 사실은 김진 개인의 삶보다는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총망라한다고 보면 된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일제에서 미국으로 이양되는 과정을 비롯해, 남한 단일 정부의 수립, 한국 전쟁, 그후 벌어진 수많은 사건들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부정 선거, 양민 학살, 국민들의 봉기 등을 지나 군사 쿠데타로 인한 박정희 정부 수립, 80년 광주 항쟁과 전두환 정부 수립 등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의 역사가 펼쳐진다. 그 속에서는 처신을 잘못해 숙청당한 인물도 있지만 김진은 끝까지 살아 남아 거대한 부와 권력을 틀어쥐게 된다.   

심남수의 경우 강남 개발과 관련한 부동산 투기 등과 관련한 인물이다. 일명 떼기로 불리는 사고 팔고 하면서 땅값을 올리는 모습, 공무원의 비리 등 한때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부동산 투기 열풍의 이야기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이다. 돈이 돈을 낳는다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는 없다는 게 맞는 말인듯 하다.

홍양태는 박선녀와 함꼐 동업을 했던 인물로 조직 폭력배의 두목이다. 대한민국 뒷세계를 거머쥐려는 조직 폭력배간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비롯해 유흥업소 뒤를 봐주면서 돈을 챙기고, 가짜 양주 생산 등 사실 일반인인 나로서는 알턱이 없는 세상을 사는 인물이다. 하지만 요즘도 재개발 지구의 철거 반대파 주민들을 위협하고, 그들의 세간살이를 부셔버리는 인간들은 용역업자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조직 폭력배들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구역에서 유흥업소를 돌봐주며 받는 보호비로 살던 조직 폭력배 조직은 어느새 정치 세력과도 결탁해 있었다.

임정아는 가난한 집 딸로, 그녀의 부모는 공장에서 일을 했고, 당시 국가 정책에 혹해 광주(지금의 성남)에 자신의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꿈을 안고 천막 생활을 했다. 일명 딱지란 것이 돌고, 그것에 프리미엄이 붙고.. 하지만 집주인이 아니면 혜택을 받을 수 없었던 그 시절이나 지금 재개발지역 사람들 이야기나 한치의 틀림도 없어 쓴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은 내 집 하나 마련하는게 꿈인 것은 대한민국의 변치않는 사실인가 보다.   

이들은 가만히 보면 접점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지만, 어떻게든 이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같은 하늘아래 사는 사람들이니 각각의 계층이나 속성이 다를뿐이고, 직접 영향을 주거나 받거나 하지는 않지만, 에둘러 영향을 받고 살고 있는 것이다.

박선녀는 사고로 죽었다. 김진이 자신의 꿈으로 건설한 대성 백화점은 무너졌다. 심남수는 부동상 투기 광풍 막바지에 손을 뗐고, 홍양태는 수감과 석방을 반복하며 자신의 기반도 잃고 무너져 갔다. 임정아는 사고에서 살아 남았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권력과 재물을 쥔 자는 시대를 쥐고 흔들 힘을 가지긴 했지만, 그것은 오래 가지 않는다. 오래가는 것은 권력도 재물도 없는 일반인들이다. 결국, 큰 역사를 쥐고 흔드는 것은 일부이지만, 그 역사를 존속시키고 지속시키는 힘을 가진 것은 일반인들이란 이야기가 아닐까.  

대한민국이 공화국으로 다시 태어난 건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동안 대한민국은 격변기였다. 그렇다 보니 친일파의 잔재나 적산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고, 그들은 다시 친미파로 돌아서며 사회의 기득권층이 되었다. 피로 얼룩진 정치 역사 역시 제대로 바로 잡지 못했고, 비리와 부정으로 세워진 사회 기반 시설들은 허술함을 드러냈다. 거품 경제와 건설 업체 비리 등으로 발생한 것이 바로 삼풍 백화점 사건이었다. 그러하기에 삼풍 백화점 사건은 단순한 건물 붕괴사건이란 것을 넘어 현대 대한민국 정치와 사회의 부패와 비리가 만들어낸 하나의 표상이 되는 사건이라 볼 수 있다.  

1995년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을때 나는 대학생이었는데, 삼풍 백화점 붕괴사건 뿐만 아니라, 수도없이 많은 사건들이 시도때도 없이 터지던 때였다. 성수대교 붕괴, 아현동 가스 폭발, 대구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 폭발 사고, 서해 페리호 침몰 사건,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대한 항공기 추락 사고등 정신없이 많은 사고들이 1990년대에 발생했다. 또한 UR(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IMF 사태등 뒤에서는 저주받은 문민정부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 내 대학 시절이다. 특히 대구 지하철 공사장 폭발사건의 경우, 내가 그당시 대구에 있었기에 나중에 현장을 찾아 봤을 때, 그 참혹함이 얼마나 큰것인지 눈으로 직접 본 기억이 난다.

대한민국은 앞만 보며 달려 왔다. 물론 전쟁후 복구 과정이란 것이 커다란 영향을 끼쳤겠지만,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그전 시대보다 훨씬 빠른 시간으로 흘러 갔다. 꿈을 꾸며, 꿈을 키우며 살아온 지난 수십년. 2010년 오늘의 우리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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