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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귀야행 베스트 에피소드 - 하 - 리츠의 환영기담
이마 이치코 글 그림 / 시공사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백귀야행 베스트 에피소드 上이 오지로와 오구로가 중점적으로 등장하는 에피소드였다면 백귀야행 베스트 에피소드 下는 리츠의 할아버지 료우(혹은 가규)와 할머니 야에코의 젊은 시절에 관한 일화와 할아버지와의 추억과 관련된 일화가 많다. 따라서 과거사만 나오는 경우도 있고,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는 에피소드도 있으며, 현재 리츠의 주변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다룬 것이 있는 등 다양한 에피소드를 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백귀야행 베스트 에피소드 下라고 할 수 있다.
첫번째 작품인 살풀이는 민간 신앙 혹은 집에 모시는 신이란 것과 관련된 에피소드이다. 우리나라도 부엌신인 조왕신이나 조상신, 삼신, 성주신, 터주신, 뒷간신등 집에 관련한 토속신만 해도 굉장히 많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집집마다 모시는 신은 조상신을 비롯해 여러 신이 있지만, 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것은 집지킴이 신으로 일정기간 마다 제를 올려 신께 감사를 전하고, 집의 풍요를 비는 목주제란 것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그런 민간 신앙과 토속신에 대한 믿음이 흐려지면서 발생하는 것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별반 다름이 없는듯 하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리츠와 츠카사를 중심으로 벌어진 일. 이 이야기를 보니 문득 중고교 시절의 괴담이 떠올랐다. 한밤중에 지나가는 버스를 보니 귀신들이 타고 있더라라든지, 종점까지 가는 버스는 저승가는 버스라든지 하는 류의 괴담에 관한 이야기를....
버스의 엔진 이상으로 한적한 정류장에 내린 사람들. 그들에게는 저마다 사연이 있는 듯 보이는데.. 특히 여기에서는 자살자들의 이야기가 많은데, 자살을 했더라도 자신이 죽은 사실을 몰라 계속 자살을 시도하는 영혼들의 이야기는 왠지 섬뜩하면서도 안타깝단 생각이 든다. 또한 자살자는 아니지만, 갑작스런 사고로 죽은 영혼의 경우에도 자신의 죽음을 자각하지 못해 이승을 떠도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대부분 지박령이 되기도 한다. 죽은 걸 실감하지 못하니 성불도 못하는 영혼들의 안타까운 사연들.
병풍 뒤에서 생긴일은 젊은 시절의 료우(리츠의 할아버지)와 현재의 리츠가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때의 아오아라시는 아직 작은 요마에 불과했다, 그게 또 어찌나 귀여운지.... 할아버지의 누님(리츠의 고모할머니)과의 사연도 볼 수 있는 에피소드.
웃음 짓는 술잔은 일본의 명절 중의 하나인 오봉과 관련된 에피소드이다. 오봉은 1년에 한 번 죽은자들이 산자들을 찾아오는 날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날은 오봉 며칠전이긴 하지만.... )
리츠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장례식에 간 날 밤, 리츠의 집에서는 햐쿠모노가타리 놀이가 진행된다. (실제로는 초가 15개밖에 없었지만... ) 리츠의 집으로 하나씩 찾아오는 요괴들과 죽은 자의 영혼. 사람들에게 수전노로 손가락질 받았던 한 노인과 그 노인이 귀여워하던 고양이의 사연이 왠지 가슴 찡하게 다가왔던 에피소드. 그러나 리츠가 넘어지면서 자신이 만든 결계 위의 다리가 되었다는 설정에 빵~~하고 웃음이 터져 버리기도.
귀신의 신부맞이는 리츠의 할아버지인 료우와 할머니 야에코의 첫만남을 그린 에피소드이다. 료우의 친구의 어머니가 도깨비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실행한 일의 대가는??? 귀신에게 무언가를 받으면 그 배로 돌려줘야 한다는 교훈이 있었을지도... 그리고 귀신은 거짓말을 잘 하니 그 말에 혹하지 말라는 교훈이 있었을지도....
여름의 손거울은 약속에 관한 이야기이다. 죽은 뒤에도 약속을 지키러 오는 영혼들의 이야기랄까. 여기에선 리츠의 할아버지 역시 영혼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길 잃은 집(마요이가)는 빈집에 함부로 들어가 물건을 가져오는 일은 삼가해야한다는 교훈을 준달까. 그것이 재앙으로 바뀔수도 있으니 빈집에는 함부로 들어가지 말자. 사실 빈집이라고 하는 건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다. 사람의 손길이 안닿았다는 것만으로 집은 금세 흉가처럼 변한다. 예전 시골 할머니댁에 갔을 때 빈집이 간간히 보였는데, 그 옆을 지나가기만 해도 오싹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눈길은 리츠의 어린 시절과 관련된 에피소드이다. 할머니가 나오는 독이라는 이야기의 모티브를 따 만든 에피소드라고 하는데, 귀신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알려주지도 말고, 초대도 하지 말아라라는 교훈을 주는 에피소드. 어린시절 왕따였던 리츠의 사연과 귀신에게 잡힐 위험에 처한 리츠를 구하기 위한 아오아라시의 기지가 돋보이는 에피소드였다. 특히 아오아라시의 인간으로의 변신 모습은 웃음 빵~~터지게 웃겼다. 정녕 그것이 인간의 모습이란 말이냐????
장님놀이는 리츠의 아주 어린 시절과 현재가 교차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였는데, 우리중에 다른 사람이 몰래 섞여있었다면? 왠지 여행지에서 벽짚기 놀이를 하다 귀신을 만났다는 괴담이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술래로 죽어서 죽은 후에도 술래가 되어 이승을 떠돌던 한 가여운 영혼의 이야기. 그 영혼은 동생의 사과를 몇십년 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리의 안은 여우 요괴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우란 사람을 홀려 간을 빼먹는 구미호로 멀리 해야 할 요괴이지만, 일본의 경우 집에 들어온 여우 요괴는 집안을 번성시키는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여우가 늘어가면 집안에 문제가 생기니 일찌감치 쫓아낸다고 하는데... 여우 요괴를 사랑한 남자와 인간을 사랑한 여우 요괴의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요괴들의 사랑이 인간들의 사랑보다 더 깊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리츠의 할아버지의 장례식에 관한 에피소드이다. 여자아이 행색을 한 어린 리츠와 아오아라시의 첫만남이랄까. 리츠의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부탁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리츠와 아오아라시 간에 처음으로 맺어진 계약에 관한 에피소드라 보면 될 듯.
백귀야행 베스트 에피소드 下에서는 上에 나왔던 잠깐씩 나왔던 할아버지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무척이나 즐거웠다. 게다가 할머니의 젊은 시절 이야기까지... 그리고 현대 괴담을 떠올리게 하는 에피소드도 있었고, 일본의 전통 풍습이나 문화를 소재로 한 이야기까지 백귀야행을 보다보면 다양한 일본의 전통 문화와 민간신앙, 요괴 이야기에 대해서 알게 된다고나 할까. 귀신이라고 해봐야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는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은 귀신도 요괴도 그리고 모시는 신도 정말 다양하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화되었지만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민간신앙과 다양한 신의 존재. 이는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의 한 단면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