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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 ㅣ 지식여행자 5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마음산책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난 어릴 때부터 동물을 너무너무 좋아했다. 특히 네발 달린 동물들. 복슬복슬한 털, 맑은 눈.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녀석들. 시골 할머니댁에 가면 온동네를 돌아다니며, 도꾸야, 워리야라고 하며 개들 이름을 부르고(당시 시골 개들 이름은 대부분 도꾸나 워리였다), 만지고 안고 쓰다듬고 하는 일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하지만 집에서 개를 키우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5년전인 1995년부터이다. 당시 대학 2학년이었던 난 휴학을 하고 강아지를 키우기 시작했지만 그녀석은 장염에 걸려 안타깝게도 내곁에 온지 한달도 안되어 무지개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어찌나 울었던지... 그후엔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을거야라고 다짐했지만, 결국 난 다른 녀석을 입양하고야 말았다. 지금 그 녀석은 할머니가 되었고, 꼬장꼬장하게 늙어가고 있다.
마리 여사의 수식으로 그려보면 우리집 현황은 이렇다.
개 : 1- 1 + 1+ 1+ 1+ 1+ 1+ 1-1 = 5 (작년 5월에 울 가을이가 18세의 나이로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사람 : 1(나)
고양이 : 1 + 1+ 1 -1 = 2 (수수라는 이름의 녀석은 3개월 무렵 입양을 보냈다)
인간 : 2(부모님)
고양이들은 현재 부모님댁에 있다.
가끔, 아니지, 자주 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이 녀석들을 데리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녀석들이 사는 곳에 얹혀 사는 듯하다고. 인간 하나에 개가 여섯마리였으니(지금은 다섯이지만), 그럴만도 하다.
사실 예전엔 인간 수컷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인연이 없어서 그랬는지 오래전에 헤어지고 지금은 혼자다. 그들이 떠난 이유는 한결같았다. "넌 사람보다 동물을 더 사랑하는 것 같아"라는. 그에 대해 부정은 못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을 싫어한다거나 인간들과 거리를 두고 싶어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그저 만난 사람들과 코드가 안맞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이미 지난 일이니 내 알바도 아니요, 그러니 신경쓸 일도 없겠지.
고양이나 개를 키우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절대 외롭지 않다고 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서른 중반이 넘어가도록 혼자 살면서도 전혀 외롭지 않다고 하는 걸 동물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개와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것이다.
마리 여사가 왜 독신으로 살며, 결혼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다만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점, 러시아어 통역사로 일하면서 경제적으로도 넉넉하다는 점,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안아플 정도로 사랑스러운 개와 고양이를 기른다는 점이 그 이유가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을 해본다.
번역사 일을 하다가 만난 겐, 무리, 도리, 그리고 러시아에서 데려온 타냐, 소냐, 겐의 가출후 데리고 온 개 노라, 소냐가 낳은 새끼중 되돌아 온 시마와 료마의 이야기에 러시아 통역사로서의 일에 대한 일화, 그녀가 일을 하면서 만난 여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지루할 틈 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물론 그중에는 재미있고 행복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고, 감동을 주는 사연들도 많다.
어린 고양이 남매 무리, 도리와의 만남, 간호, 성장 과정은 예전 내가 티거와 보리(지금은 부모님댁에 있는 고양이들)를 처음 데리고 왔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겐과의 첫만남에서 겐을 집으로 데려오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고양이들과 인사 시키기를 비롯해 겐이 드디어 내집이다라고 인정한 순간의 감격은 두말하면 잔소리.
타냐와 소냐를 러시아에서 일본으로 데려올 때는 007 첩보 작전을 방불케했고, 타냐와 소냐에 대한 반항으로 가출한 무리와 도리의 이야기는 웃기면서도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후 어미 · 아비처럼 타냐와 소냐를 보살피던 무리와 도리는 얼마나 기특하던지....
겐과 도리와 무리를 데리고 떠난 가족여행에서 만난 다른 개와 고양이 친구들의 사연과 쿠로의 이야기는 너무너무 부러울 정도였다. (쿠로에 대해서는 좀 안타까운 맘이 많이 들기도 했다)
또한 마리 여사가 만난 사람들에 대한 에피소드도 감동적인 게 많았다. 특히 무리와 도리를 발견한 날 그들을 따뜻하게 대해준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며, 러시아 고양이 협회장인 니나의 이야기에서는 그냥 미소가 저절로 지어졌다. 한편으로는 마리여사를 태우고 가던 기사 아저씨가 들려준 며느리와 고양이 익사 사건에 있어서는 분노하고 슬퍼했다. 그 며느리의 유산은 고양이의 복수가 아니다, 그건 가여운 생명들에 대한 신의 벌이 아니었을까. 또한 겐을 산책시키면서 만난 자유스럽지 못한 묶인 개들의 사연에서는 눈물이 핑 돌았다. 녀석은 얼마나 사람 손이 그리웠을까. 그나마 무지개 다리를 건너기 전 마리 여사의 손길을 받고 간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한 러시아에서 타냐와 소냐를 기르던 사람들의 말도 잊히지가 않는다. 소비에트 연방 붕괴후 사람들은 직장에서 자유로워졌고, 더불어 그들이 기르던 개나 고양이도 자유로워졌다고. 그만큼 버려진 개들과 고양이가 많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파왔다.
고양이나 개를 기른다는 건,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이다. 처음 입양을 결심했으면 그들이 무지개 다리를 건널 때까지 돌봐 주어야 하는 것이 사람의 책임이요, 의무이다. 마리 여사의 집에 살던 녀석들이 행복했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토록 살뜰한 보살핌을 주는 반려인을 만나는 것은 반려동물들에게도 큰 행운이니까.
이 책에서는 아직 겐을 찾는 중이라고 나온다. 그후 겐은 다시 마리 여사와 만났을까?
아니면 마리 여사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을까. 무리는 마리 여사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 아마도 천국의 입구에서 마리 여사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후 겐이 세상을 떠났다면 다시 천국의 입구에서 그들은 재회했을지도 모르겠다. 부디 그렇기를 바란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와 달리 사람과 동물 사이의 유대 관계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신비로움을 가진다. 말도 통하지 않지만 종도 다르지만, 그들 사이에는 독특한 유대감이 흐른다. 이는 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봤으리라 생각된다. 나 역시 우리 아그들(난 우리 개들을 이렇게 부른다)과의 사이에는 신비한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운명과도 같은 것일 것이다. 개 여섯마리 중 다섯마리는 유기견 출신, 고양이 세마리 역시 길에서 업어온 업둥이들이다. 길에서 스쳐지나갔을수도 있는 인연이지만, 지금도 내곁에 이렇게 있다는 건 분명 특별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또다시 여름. 사람들은 피서다 뭐다 해서 부산스러워지지만 난 올해도 여름 휴가를 반납했다. 우리 아그들과 같이 갈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을 뿐더러, 간다해도 전부 노령견들이라 장시간 차를 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여름 휴가를 못간다고 해서 억울할 건 하나도 없다. 늘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랑스런 아그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도 (지금은) 인간 수컷은 필요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