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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여단 ㅣ 샘터 외국소설선 3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장르도 작가 이름도 안보고 그저 제목 자체가 주는 느낌에 따라 골랐다. 난 장르 소설중 SF쪽은 그다지 흥미도 없었고, 아는 것도 없어서 많이 보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씩 보는 편인데, 늘 신선한 자극을 받게 된다. 지금 시대와 가까운 미래의 이야기이든, 지금 시대와는 멀리 떨어진 미래의 이야기이든지 간에 흥미롭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대개는 부정적이고 음울한 미래를 암시하는 작품이 많다는 것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이 책을 배송받고, 허걱!
이것이 정녕 시리즈물이었단 말인가...
띠지를 보니 노인의 전쟁 후속작이란 말이 크게 적혀 있었다. 근데 난 왜 이걸 못본 것이지?
먼저 봤다면 노인의 전쟁과 함께 주문했을터인데..
그러나 뒤늦은 후회를 해봐야 별수 없는 법. 일단은 이 책을 먼저 읽기로 했다.
하긴, 앞부분에 노인과 전쟁 줄거리가 간략하게 나와 있어서 대충 어떤 느낌인지는 알 수 있었기에 겁없이 덤빈 것도 사실이다.
책 제목인 유령여단은 죽은 사람의 DNA를 조작해 만든 군인들을 일컫는 말이다. 인간의 수가 늘어 지구만으로 감당이 안되자 우주의 행성들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군인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전쟁에 내가 나가겠소라고 할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리하여 소모품처럼 만들어진 군인들이 바로 유령 여단의 군인들이다. 그들은 16주만에 완벽한 성인으로 성장하고, 뇌도우미를 통해 다른 군인들과 텔레파시를 통하는 것처럼 대화를 하며, 뇌도우미로 온갖 지식을 습득한다. 그들은 인간보다 우월한 힘과 전투 능력을 갖춘 말그대로 인간 병기인 것이다.
유령여단의 군인들은 자신과는 다른 인간들을 진짜배기라고 하는데, 그게 참 묘하게 슬프다. 똑같은 인간의 DNA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인간으로 살아가고 어떤 이들은 병기로서 살아가게 된다니까.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도 감정이란 것이 존재하고, 생각이란 것이 존재한다. "우주에서 인류를 존속시키는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자신들에게 긍지를 가지고 있으며, 동료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등 외적인 모습만 다를뿐 - 유령여단은 초록색 피부와 똑똑한 피를 가진다 - 내적인 면은 인간과 다름없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인류를 배신한 샤를 부탱의 의식을 이식받아 태어난 재러드 디랙이란 인물이다. 샤를 부탱이 남기고 간 복제품의 DNA를 다시 복제해 부탱의 의식을 이식한다라.. 지금 과학 기술로 보자면 인간 복제도 하지 못하는 판에(기술적 문제도 있지만 윤리적 문제가 더 크기 때문에) 인간의 의식을 이식한다는 건 꿈도 못꿀 일이지만, 일단 이 소설내에서는 가능하다.
재러드 디랙이란 이름으로 태어나 동료 군인들과 의식 통합 과정을 거쳐 그들의 동료로 함께 임무를 수행하는 재러드는 약간은 음울하지만 조용하고 소극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반인과는 조금은 다른 유머 감각과 샤를 부탱의 복제품에서 얻어진 우수한 머리를 가진 특별한 존재이다. 하지만 샤를 부탱의 의식이 그의 머릿속에서 언제 깨어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만약 샤를 부탱의 의식이 깨어난다면 그가 왜 인류를 배반하려 했는지 그 이유도 알테지만....
수많은 전투를 거치면서 재러드의 머릿속에서 샤를 부탱의 의식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샤를 부탱의 의식은 재러드에게 여러가지 감정적인 변화를 가져 오게 된다.
우주개척연맹의 인류와 다른 행성에 사는 지적 생명체들과의 전쟁. 그리고 죽은 사람의 DNA 조작으로 태어난 유령여단 군인들. 이 책은 사실 전쟁이야기 보다는 재러드 디랙이란 인물의 탄생과 성장, 변화, 그리고 그가 지키려고 했던 것에 대해 초점이 맞춰진다.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 병기이지만 그가 잊지 않았던 것은 자신이 누군가하는 것이었다. 또한 인간들이 유령여단 군인들을 만든 이유와 그들을 지배하기 위해 인간이 드러낸 치졸함이란 부분은 충분히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다. 자신들은 진짜배기와는 달리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생각하도록 세뇌하고, 통합이란 시스템을 이용해 그들이 유령여단으로 살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살아있는 사람들이며 생각과 감정을 가진 존재이다. 재러드 디랙은 그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거였다. 물론 샤를 부탱의 의식이 그에 한몫한 것은 맞지만, 마지막 선택은 재러드 디랙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SF장르를 기반으로 인간과 인간의 존엄성, 그리고 참된 인간다움이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만들어준 유령여단. 사건 전개가 복잡한데다가 지금과는 다른 과학 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초반부에는 스토리 전개를 따라잡기 좀 힘들었지만, 금세 몰입하게 되었다. 또한 과학 기술의 진보와 맞물려 인간의 정복 욕심은 더욱 더 커지게 되어 평화로운 공존보다는 전쟁으로 우주를 지배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우둔함과 어리석음이 적나라하게 보여지기도 한다. 그와 대조적으로 인간들의 목적에 의해 생산된 유령여단의 군사들이나 다른 행성의 지적 생명체들이 더욱더 인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공상과학 소설이란 장르가 보여주는 미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어쩌면 있을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SF 소설을 읽으면서 무척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점은 어느 시대나 인간이란 똑같은 사고를 한다는 점이다. 배경은 다르지만, 인간들의 과욕과 어리석음은 언제나 그 자리를 맴돌고 있는듯 하다. 그래서 SF 소설을 읽으면 무척 재미있지만, 반대로 씁쓸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건 늘 똑같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음울한 미래의 모습만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그 끝에는 언제나 희망의 메세지를 보여주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