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의 반어법 지식여행자 4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처음 요네하라 마리의 이름을 접했을 때, 어느 나라 사람이지??란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처음으로 구매한 요네하라 마리의 책은 바로 이 <올가의 반어법>이란 책이었고, 올가라고 하면 러시아쪽 이름인데, 요네하라 마리란 이름은 러이아쪽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제 처음으로 이 책을 펼치고 작가 약력을 읽어 가면서 작가가 일본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 일본 소설을 즐겨 보지만, 아직 내가 접하지 못한 작가가 수두룩하니 뭐 당연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인이란 걸 알고 나서 더욱 커지는 위화감. 일본인이 러시아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썼다??? 그 의문도 곧 해소되었다. 요네하라 마리는 실제로 어린 시절 체코의 프라하에서 수학한 경험이 있으며, 러시아 통역사로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올가의 반어법은 1960년대 체코의 프라하 소비에트 학교에서 유학하던 한 일본인 소녀 시마가 자신이 어린 시절 가지고 있던 의문을 풀러 러시아로 간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가 프라하에 있을때 무용을 가르치던 올가 모리소브나는 뛰어난 무용 실력과 더불어, 비난하고 싶을 때는 칭찬을, 칭찬하고 싶을때는 비난을 하던 독특한 어휘를 구사하던 선생님이었다. 한때 시마에게 무용가의 꿈을 심어주기도 했던 올가를 늘 그리워하던 시마는 어린 시절에는 무심코 넘어 갔던 사실에 대한 진상을 파헤치기로 한다. 더불어 올가와 친밀하게 지냈던 프랑스어 선생님 엘레노오라와 그녀들의 딸이라고 말하는 지나에 대한 수수께끼도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차차 밝혀지게 된다.

시마가 회상하는 학창 시절의 올가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무용수이자, 반어법과 욕설을 사용해 학생들을 가르치던 재미있고 독특한 선생님이었고, 엘리노오라는 마치 프랑스 귀족과도 같은 우아함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시마가 떠올리는 학창시절은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의 연속으로 기억되고, 오히려 일본에 돌아가면서부터 시마는 일본의 교육제도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온다. 또한 시마의 제일 친한 친구였던 카챠는 모스크바로 돌아가게 되면서 시마와 연락이 끊기지만, 소비에트 연방 붕괴후, 28년의 세월이 지난후 다시 재회하게 된다.

알제리란 단어와 바이코누르란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올가와 엘레노오라, 그리고 미하일코프 소령과 그 두 사람이 마주쳤을때 서로 놀라던 모습, 뭔가를 몸에 지니고 있던 모습, 그리고 얼마간 두 선생님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던 일을 비롯해, 나이차가 너무 많이 나는 딸 지나의 비밀까지, 올가의 반어법은 미스터리한 구조를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시마가 추적하는 올가의 과거. 그 뒤에 숨겨져 있던 진실은 너무나도 놀라웠다. 도서관의 문서, 당시 올가를 기억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수용소였던 리게라에서 있었던 일을 기록한 수기 등, 이야기는 작은 사실에서 엄청난 사건으로 확대되어 간다. 특히 스탈린 정권 당시 소비에트 연방의 상황에 대한 내용은 너무나 자세해서 작가가 혹시 러시아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묘사를 하고 있다. 당시 스파이 혐의로 몰린 사람은 재고의 여지 없이 총살형, 그리고 그 가족은 수용소로 끌려가 강제 노역에 시달린다. 또한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소비에트 연방 위정자들의 처사는 치를 떨게 한다. 스파이란 혐의만으로 자행되는 숙청과 수용소 격리, 강제 노역, 그리고 아이들은 이름이 말소된 채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그런 이야기는 시마의 학교 친구인 지나와 레오니드의 이야기와도 연관되어 있었다.

질곡의 역사, 스탈린 치하의 광풍. 그 속에서 살아 남은 올가와 여타의 생존자들. 올가가 쓰던 욕설은 라게리에서 배웠던 것이었다. 수용소에서의 강제 노역과 가족과의 이별등으로 피혜해질대로 피폐해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지만, 그곳에서도 희망은 움트고 있었다. 그곳에 수용된 여성들은 서로 도우며 격려했고, 끈질기게 살아 남아 가족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렸다. 

올가는 이런 말을 했다. " 욕설과 함께 권력과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 삶을 배웠단다." (388P) 라고.   
즉, 올가는 욕설로 권력과 권위에 대항했고, 반어법을 이용해 말함으로써 죽을 정도로 힘들었던 시기에 대한 기억을 극복해 온 것이다. 언제 자신의 신분이 탄로나 소비에트 연방으로 잡혀갈지 모르는 상황,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숨어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이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동생의 희생으로 새로 얻은 삶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시마의 학창시절의 이야기는 다소 유머스러웠지만, 그후 밝혀지는 올가의 개인사와 스탈린 정권하의 압제로 인해 피로 얼룩진 역사는 충격적일 정도로 잔혹하고 처절했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논픽션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세세하게 묘사된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 연방. 자국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세세한 역사를 묘사하는데 있어서 작가가 얼마나 많은 자료를 수집했는지에 대해서는 새삼 말을 더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실제 저자의 무용 선생님이었던 올가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그녀에 대한 대부분의 이야기는 픽션이며, 그외의 역사적 사실은 진짜로 존재했던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 올가가 그런 일을 겪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픽션과 논픽션의 결합이란 부분에 위화감이 전혀 없다. 이 소설은 올가란 한 여성의 삶에 대해 그리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올가와 동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에세이 작가로서 첫번째로 쓴 장편 소설이란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탄탄한 구성과 전개를 가진 이 책은 읽는 내내 눈을 뗄수가 없었다. 올가의 반어법은 내가 최근에 읽었던 책 중 가장 크게 가슴을 치고 들어온 소설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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