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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 2010 제3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ㅣ 청춘 3부작
김혜나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처음 책을 펼치고 작가 이력에 대한 부분을 읽었을 때 깜짝 놀랐다. 1982년생. 나보다 무려 *살이나 어리다. 정말 젊은 작가로구나 하는 감탄도 잠시, 곧 나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소설의 주인공은 20대의 여대생이다. 중고교 시절부터 공부를 비롯해 다른 부분에 있어서도 남다른 재능이 없이 주변 인물로, 때로는 날라리 학생이란 이미지로 살아온 그녀. 대학생이 되어도 미래에 대한 생각이나 준비없이 그저 용돈을 받아 술 먹고 노는데 탕진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런 그녀가 어느날 여령 언니와 미주와 함께 들른 노래바란 곳에서 도우미를 불러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녀의 파트너의 이름은 제리. 여령 언니나 미주와는 달리 그녀는 파트너인 제리와 있는 것이 못내 불편하다.
그렇게 제리와의 첫만남이 있은 후, 그녀는 옛남자친구인 강을 만나 함께 술을 마시고 모텔로 향한다. 늘 그렇듯.
책 내용은 대부분 그녀가 사는 삶의 방식이란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부모와는 일찌감치 대화가 단절되었고, 어영부영 야간 대학에 진학했지만 미래에 대한 준비나 꿈이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울적하면 강을 불러내 술을 마시고, 모텔에 들락날락하지만, 제리가 쉽사리 잊혀지지 않아 다시 제리를 도우미로 불러 낸다.
사랑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제리를 곁에 두고 싶어 한다. 제리의 시간을 돈으로 사고, 그와의 관계는 육체란 것으로만 이어져 있다. 예전 남자친구인 강과도 그랬듯이.
하지만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불편함을 느꼈던 것은 지나치게 많은 혹은 노골적인 섹스 장면은 아니었다. 내가 정말 불편했던 것은 주인공인 <나>와 제리 모두 세상만을 탓하고 있는 것에서 비롯된다. 두 사람 다 자신의 문제점 보다는 세상을 탓하는 것에 그친다는 것이다. 물론 고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가진 것 없고, 별 능력 없는 사람은 도태되게 마련이지만, 세상에는 그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많은데, 이들은 이미 자신들을 루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의 경우 용돈 받은 건 술로 탕진하고, 제리의 경우 그 생활을 버리고 다른 일을 할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 또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자신은 자살이란 방법을 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자기자신은 안다. 정말 나약하고 삐뚤어진 청춘들이 아닌가.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신보다 더 잘 사는 사람, 더 잘 나가는 사람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렇다 보니 자신이 제일 불행하고 못났다고 여길뿐 다른 것은 시도조차 해보지 않으려 한다.
주인공이 이미 헤어진 연인 강과의 만남을 반복하는 것, 제리를 곁에 두고 싶어하는 것은 누군가와의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임은 이해할 수 있다. 누군가 자신 곁에 있어줬으면 하는 바람, 그것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방법에 불과하다. 결국, 주인공 <나>는 타인과 관계 맺는 방법 자체를 모르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한 마지막 장면도 그렇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푸르고 따뜻한 물..... 왠지 어머니의 자궁속을 연상시키는 물이란 표현. 그것을 보면서 차라리 이 주인공은 다시 태어나고 싶어하거나, 어머니의 자궁속에서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기를 바라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에.
책 뒷표지의 심사평과 책 광고 문구를 읽으면서 조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너무나도 거침없는 표현에 움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20대들의 모습을 보면서 씁쓸함만이 밀려 왔다. 물론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는 소설도 많다. 그런 면에서 이런 청춘들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시도는 훌륭했을지 몰라도, 밑도 끝도 없이 공허함만을 주는, 그리고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불쾌할 뿐이었다. 물론 내가 20대를 거쳐 30대가 되었기 때문에, 20대때의 힘겨움을 잊어 버렸기에 그럴수 있다고도 생각하지만, 끝까지 정체되어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쉽게 받아 들일 수는 없었다. 내가 보기엔 이들에겐 희망이란 없다. 그저 한없이 세상을 원망하며 살아갈 모습만 그려진다.
대한민국에 이런 20대들만이 없다는 게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