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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성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르한 파묵의 책은 내이름은 빨강으로 먼저 접했다. 솔직히 말해 오르한 파묵도 터키 문학도 내겐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좀 어렵지 않을까,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란 우려를 했지만, 두 권이라는 꽤 많은 분량에도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었다. 각기 다른 화자가 등장해서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요소이기도 했고, 세밀화와 세밀화가, 그리고 당시의 시대상에 대해서도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이야기가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얀성은 읽으면서 내내 난감한 기분을 느꼈다. 확실히 말해, 내 입장에서 볼 때, 하얀성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는 이 책이 역사소설이란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난 오스만 제국의 역사란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게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파룩 다르븐오울르라는 사람이 한 고서를 발견해 그것을 번역해 책으로 펴내었다라는 것으로 시작한다. 왠지 이 번역자가 오르한 파묵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왜냐면 그는 이 하얀성을 쓴 작가이기도 하기 때문에...
어쨌거나, 오스만 제국 시절 한 베네치아인이 항해 중 포로로 잡힌 후 터키인 호자의 노예가 된다. 천체학, 수학, 물리학, 의학에 대한 지식이 있던 그는 호자에게 서양의 학문을 가르쳐 주고, 그와 함께 여러가지 일을 해나간다. 그러는 동안 수십년의 세월이 흐르고,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많은 이해를 하게 된다. 학문적인 이해뿐만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도. 하지만 두 사람이 늘 좋은 관계인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동양과 서양의 학문이란 것이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호자는 서양의 학문에 대해 배우고, 이탈리아어에 대해 배우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자신의 지식이 그렇지 않음을 배우게 된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주변의 상황들을 참을 수 없어 하게 까지 된다. 한편 베네치아인은 끝끝내 이슬람교로 개종하지 않지만, 동양적인 것에 대한 매력을 알아가게 된다.
겉모습마저 너무나도 많이 닮아 있던 두 사람은 학문이란 공통 사항으로 서로 친밀한 관계가 되어 가지만, 서로에 대해 많이 알아갈 수록 대립점도 많아진다. 이는 각기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경험했던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있을 수 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 두사람이 파디샤의 신임을 얻게 된 후, 서로가 바라보는 오스만 제국과 베네치아, 그리고 파디샤에 관한 시선은 사뭇 달라지게 된다. 특히 호자의 변화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이 책은 호자와 베네치아인이 신분을 바꿔 호자가 베네치아로 떠나고, 베네치아인 학자가 호자로 살아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더욱 흥미로운 부분은 이 기록을 남긴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저자는 그것을 독자 재량에 맡겨 두었다.
터키인 호자와 베네치아인 학자.
서양과 동양의 학문과 문화적 대립과 충돌이란 요소도 있지만, 난 이 두사람의 묘한 우정 관계에도 흥미가 많이 갔다. 특히 호자의 학자적인 관심과 개인적인 문제가 충돌하면서 호자는 매우 혼란스러워 하지만, 상대적으로 베네치아인 학자는 느긋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때로는 호자가 우위를 점하고, 때로는 베네치아 인이 우위를 점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는 것은 바로 그러한 것 때문이기도 하다.
호자는 자신이 이제껏 알아 오던 세상보다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베네치아인 학자를 만나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속해 있는 세상이 아니라 외부 세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베네치아인 역시 자신이 몸담고 있던 세계를 벗어나 새로이 발을 들여 놓은 세계에서도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인간은 끊임없이 사고하고 성찰하는 존재이다. 그렇다 보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고 얻어내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는 존재이기도 하다. 즉,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찾든, 자신이 속하지 않은 외부 세계에서 찾든지 간에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존재이라 생각한다. 호자와 베네치아인 학자 역시 그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갈구해 왔다. 호자의 경우 결국 자신의 세상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남겨진 베네치아인은 수십년전 자신의 인생이 새롭게 시작된 그곳에서 새로운 삶으로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기본적인 자기 가치관이 허물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신분은 뒤바뀌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누구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잊지 않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