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귀야행 베스트 에피소드 - 상 - 오지로와 오구로
이마 이치코 글 그림 / 시공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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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마 이치코의 백귀야행 시리즈 중 오지로와 오구로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이 단행본은 총 11편의 에피소드가 실려있다. 오지로와 오구로가 요마가 된 사연과 그들의 첫등장, 그리고 오지로와 오구로가 어떻게 리츠를 주인으로 모시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여기에 실린 에피소드들은 연재순으로 실려 있는게 아니라 리츠가 고교생이다가 수험생이다가 재수생이다가 대학생이다가 하는등 시간의 뒤죽박죽이라서 조금 헷갈리기는 한다. 그렇다 보니 오지로와 오구로가 리츠를 주인으로 모시는 이야기가 나오다가 갑자기 그들이 첫등장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각각의 에피소드가 완결성이 있어서 그다지 신경쓰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또한 리츠의 아버지의 시체에 살고 있는 아오아라시의 존재도 조금만 읽으면 대충 그 정체를 알게 될 것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간추려 말하자면, 백귀야행 시리즈를 읽지 않은 독자라해도 읽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이야기)

첫번째 작품인 식인귀의 정원은 일본의 축소지향적 문화랄까, 그런게 엿보이는 소재를 쓰고 있다. 상자정원(하코니와)는 작은 상자속에 정원 모형을 만들어 놓은 것인데, 이런 걸 보면 일본인들은 작은 것을 참 좋아해.. 이런 생각이 든달까. 어쨌거나 그속에는 식인귀의 원령과 그에 잡아먹힌 사람들의 영혼이 여전히 존재하고, 식인귀는 여전히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헤친다. 특히 강에 다리를 놓으면 식인귀의 영혼이 밖으로 나올수 있다는 게 흥미롭다. 일본에서는 다리가 이계와 연결되는 지점으로 보기 때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작은 벌레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쓸쓸히 죽어간 아이의 유령과 아이를 유산한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유령이란 존재가 무섭다기 보다는 안타깝고 애처로왔달까. 성불하지도 못한채 이승을 떠도는 아이의 유령. 이런 존재는 정말이지 슬픈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나무새 이야기는 나무의 정기를 흡수하고 사는 요마 오지로와 오구로가 첫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오래된 나무는 신목으로 공양을 드리는 존재이기도 한데, 현대 시대에 들어서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오래된 나무들은 잘려 나가기 일쑤다. 그렇다 보니 그것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요괴나 신들의 터전이 없어지는 건 당연한 일. 이는 뒤에 나오는 신이 다니는 길과도 비슷한 흐름의 이야기이다. 일본에는 팔백만 신이 존재하다 보니 그들은 인간의 일상과도 밀접하게 연결된 존재였으나 언제부터인가 인간에게 잊히고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가끔 짓다가 중지하는 건물들이 있곤 한데, 그런 경우 대부분 산신이나 지신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가까운 나라인만큼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게 일본과 우리나라의 이야기랄까.

그외에도 오지로와 오구로가 요마가 되게 된 사연을 그린 천상의 우두머리, 자신이 살고 있는 나무에서 쫓겨날 신세가 된 오지로와 오구로가 자신의 아버지격인 텐구에게로 돌아가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남쪽 바람 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남쪽 바람의 경우, 오지로와 오구로가 새집을 얻으려면 250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는 걸 미루어 볼 때, 일상에서 신이나 요괴가 차지하는 공간이 점점 빠르게 줄어간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또한 요괴들에게도 결혼 풍습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푸른 비늘과 같은 이야기도 있고, 버려진 개가 요괴가 되어 자신의 인간 동생을 찾아다니는 이야기인 연홍색 여인도 있다. 사실 연홍색 여인은 예전 여인들의 삶의 불행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자신을 버린 인간을 여전히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개의 원혼을 보여준다. 난 사람의 이야기보다는 요괴의 이야기에 더 끌리는데, 인간은 수시로 서로를 배신하지만 동물이나 요괴는 먼저 사람을 떠나거나 배신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슬퍼야할 이야기이지만 적절한 유머코드가 가미되어 웃으면서 봤던 단편이 바로 연홍색 여인이기도 하다.

밤에 우는 나무는 벚나무 밑에는 시체가 숨겨져 있다란 속설과 비슷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 경우에는 벚나무 위에는 시체가 있다고 해야 할까? (笑)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심어진 벚나무에 얽힌 이야기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암행야로의 경우, 귀신에게 발목잡힌다는 이야기가 진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 순간 무서워졌다고나 할까. 왠지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은 정말 존재하는 이야기에서 나온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여우술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우리나라와는 달리 여우는 인간에게 재물과 복을 가져다 주는 존재인가 보다. (우리나라의 경우 도깨비가 그런 존재) 하지만 시간이 흘러 현대에 이르른 지금은 누구도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에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가는게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눈먼 여우요괴와 눈먼 소년의 교감은 오히려 짠한 기분이 들었다.  

일본의 풍습, 민속, 문화를 바탕으로 현대 사회와 요괴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백귀야행 시리즈는 요괴가 등장한다 해도 공포스럽고 잔혹하다기 보다는 때론 안타깝고, 때론 슬픈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옛날에는 인간과 신, 요괴가 공존하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두려움을 주는 존재를 위해 사당을 짓고, 제를 올리며 그들을 공양했던 시대와는 달리, 요즘은 그들의 존재가 부정되고 있다고 해도 퇴치되어야 할 존재로 인식된다. 공존이 아니라 반목과 대립의 구도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인간은 자신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와 함께 갈아가는 '그들'의 존재만큼은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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