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의 여행자
다니구치 지로 지음, 홍구희 옮김 / 샘터사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와의 인연은 개를 기르다를 읽으면서 부터이다. 꽤 오래된 만화이지만 어쩌다 보니 이제서야 읽게 되었고, 그후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를 검색하다 보니 너무도 괜찮은 작품이 많아 보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일단 먼저 집어든 것은 바로 이 책인 동토의 여행자.
푸른 하늘과 눈 덮인 산, 사냥꾼인 듯한 한 남자의 모습과 강인한 눈빛의 개 한마리. 표지부터 무척이나 강렬하다.

이 책에는 총 6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대부분 자연과 인간에 대한 것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송화루는 그것과는 좀 거리가 있어 이질감은 있지만,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작품으로 생각하면 그걸로 된 것이겠지?

일단 표제작이자 첫작품인 동토의 여행자는 미국의 소설가 잭 런던을 등장시킨다. 실제로 잭 런던이 알래스카에서 겪은 일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단편은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과 백인들이 들어오면서부터 깨진 자연과 인간의 공존과 균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혹독한 환경을 탓하는 것보다는 자연을 경외하면서 살아 가는 사람들과 사금에 눈이 멀어 알래스카에 들어온 백인들의 이야기는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연을 단순히 이용한다기 보다는 그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아주 오랜 옛날 우리 인간들은 모두 그러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얀 황야는 잭 런던의 하얀 이빨 제 1장을 재구성한 만화라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원제를 우리말로 발음한 화이트 팽이란 제목으로 번역서가 나와 있고, 늑대개 화이트 팽이란 제목으로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이다. 영화는 소설의 3부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나도 이 에피소드는 처음으로 접한다) 북극의 황야를 가로질러 가는 동안 차례차례 썰매개들은 이리에게 잡혀 먹히고, 헨리만이 살아 남는다. 혹독한 날씨와 엄습해 오는 공포. 자연과 맞서는 인간의 사투를 그리고 있는 하얀 황야는 자연에 남겨진 인간은 그자체로 얼마나 약한 존재인가를 보여주는 듯 하다. 하지만 인간은 약하디 약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강해질 수 있는 존재기이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산으로는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쇼와 시대를 배경으로 마타기들과 마타기 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왠지 우리나라의 호랑이 사냥꾼들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던 작품이기도 하다. 늙고 노련한 곰에게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마음과 반려인에 대한 충성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는 마타기 개. 자연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는 혹독하고 가혹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다른 생명을 주는 존재인지도...  마지막 장면이 정말 울컥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가이요세섬은 우리 조부모 세대나 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친척집에 맡겨진 도시 소년과 고아가 된 후 그 집에 맡겨진 섬 소녀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 너무나도 순박한 두 아이의 모습에, 그리고 그 아이들이 품고 있었던 상실의 아픔이 자연속에서 치유되어 가는 과정이 너무도 따뜻했던 작품.

앞서 말했듯 이 작품에서 가장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송화루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작가 자심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듯 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나는 송화루.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도시 괴담을 떠올리게 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더 큰 부분을 차지 하는 건,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 싸여 살아가지만 본질적으로는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랄까.

바다로 돌아가다는 동토의 여행자에 실린 작품 중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김과 동시에 가장 깊은 감동을 주기도 했다. 바다에 사는 생물중 가장 거대한 포유류인 고래. 하지만 그들의 삶은 비밀스럽기만 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그들의 죽음과 고래 무덤이란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아주 오랜 옛날 인간과 고래의 관계와 더불어, 죽음이란 것이 두려운 것만은 아닌, 다음을 위한 깊은 꿈이라고 이야기한다. 올드 딕과의 우정, 그리고 올드 딕의 죽음. 삶을 소중히 여기는 건 인간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의 삶이 다했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고래의 이야기는 아름답고 경이롭기까지 했다.

자연과 인간.
사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들은 오만으로 자연을 정복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자연을 이용할 수 있을 때 뿐이란 것을 모르는 듯하다. 자연의 가혹한 법칙은 너무나도 혹독해서 감히 인간으로서는 맞설수는 없다. 가혹한 환경에서 살수록 인간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자연이지만, 한편으로는 한순간 인간을 몰살시킬수도 있는 자연. 인간은 늘 자연에 속해 있는 것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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