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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큰 지나의 다리 ㅣ 이정애 컬렉션 1
이정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이정애라고 하면 난 열왕대전기가 먼저 떠오른다. 당시 만화 잡지에 연재되는 걸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완결을 본 기억이 없었다. 당시 내 경우 만화를 볼 때는 단행본보다 잡지에 연재되는 걸 주로 읽었던지라 완결을 못 본 것에 대해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었다. (단행본으로 봤으면 되었을텐데...) 어쨌거나, 그후로는 만화에 손을 거의 대지 않고 지냈던지라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요번에 작가의 단편들이 복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도 반가웠다. 사실 쿠스모토 마키의 만화를 보면서 아, 우리나라의 이정애 작가랑 그림체가 비슷하게 느껴진다.. 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는데, 이젠 진짜 이정애 작가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게 되어 너무나도 행복하다.
이정애 컬렉션 1에는 표제작 키 큰 지나의 다리 외에 두 편의 단편이 더 수록되어 있다. 키 큰 지나의 다리. 사실 하도 오래전에 읽었던지라 내용이 가물가물했었는데, 다시 읽어 보니 역시란 생각이다. 샴쌍둥이로 태어나자마자 생모에게 버림받고, 그후 수술로 형과 분리가 되면서 지나의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지나가 잃은 건 다리만이 아니었다. 그건 자신의 일부이자 자신의 전부이기도 했던 형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런 지나에게 없어진 다리 한 쪽은 마음의 구멍이자 그의 상실감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지나의 곁에 있는 한은 동생 채은을 생각하며 마음속으로는 칼을 갈며, 복수를 다짐한다. 지나를 철저하게 파멸시키고 싶어 하는 한. 그런 한의 마음은 애증으로 가득했다. 한은 에블린에게 지나를 증오한다고 하지만, 그게 진짜 한의 마음이었을까.
한과 지나. 둘을 보면서 이 둘은 정말 멀리 돌아가는구나 싶었다. 비뚤어진 마음을 비뚤어진 식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지나. 그는 한을 외롭게 만들어 자신의 곁을 떠나지 못하도록 했고, 그건 지나만의 지독한 사랑 방식이었다. 그런 식으로 밖에 살아갈 수 없는, 그런 식으로밖에 숨을 쉴수 밖에 없는 지나를 보면서 미운 감정보다는 애처로웠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가 저지른 일들이 정당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깊은 증오, 깊은 사랑, 그리고 그보다 더 깊고 깊은 슬픔.
현실적으로는 서로를 파멸의 길로 이끌수 밖에 없었던 두 사람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안타까웠다.
나머지 작품인 성홍열과 사랑하기 좋은 날은 판타지 성향에 가까운 작품이다.
성홍열은 다크 판타지를 차용한 미쉴라의 성장이야기로 보여진다. 성홍열을 앓고 난 후 미쉴라는 그저 보통의 아이로 돌아가 버렸으니까. 아주 어린 시절과의 결별이라고나 할까. 누구나 겪어가는 과정이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이야기.
사랑하기 좋은 날은 귀신이 나오긴 하지만 오히려 유쾌하다. 근데, 아신태자가 정말 귀신일까?
혹시 아신태자가 있는 캠프 주변이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그런 지점이 아니었을까... 라는 뜬금없는 생각도 잠시. BL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 줄 스토리에 흐뭇한 미소도~~
꽤나 오래전의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낡은 느낌이 없다. 물론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이 약간 옛날 느낌이긴 하지만, 스토리 자체는 요즘 나온 만화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듯하다. 역시 좋은 작품은 시간을 뛰어 넘는달까. 이정애 컬렉션 2권인 별에서 온 이상한 소식도 얼른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