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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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를 봤을 때 처음으로 든 생각은 왠지 라이트 노벨같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제목도 그렇지만, 표지 그림이 그런 느낌을 많이 준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좀 가벼운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책 띠지에 나오는 대립되는 두 인물의 모습 또한 현실을 좀 뛰어 넘는 게 아닌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일단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펴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왠걸. 문장은 짧고 간략하나 분위기 자체는 조금 무거운 느낌이 든다. 그것은 책에 나오는 인물들의 삶과 그들의 이야기가 어둡기 때문이리라. 주인공 나는 소매치기이고, 기자키는 뒷세계의 거물로 보인다. 또한 주인공 <나>가 관계를 가지는 아이와 엄마 역시 사회적인 입장으로 볼 때 밝은 세상이 아니라 어두운 세상에서 사는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은 소매치기 주인공인 '나'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과거와 현재가 엇갈려가면서 진행되는 스토리. 주인공 나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흔히 접하지 못하는 소매치기의 세계를 엿보게 된다. 또한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기 떄문에, 주인공의 심리 상태가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러하기에 자신이 하고 있는 일, 했던 일에 대한 중압감이 시종일관 주인공의 뒤를 따라 다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인 <나>보다는 가끔 등장하는 기자키란 인물에 관심이 많이 갔다. 기자키란 인물의 등장 횟수는 적지만, 그가 한번 나올때 마다 움찔하게 된다. 특히 한 노예의 운명을 쥐락펴락한 귀족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또한 그 이야기는 기자키와 주인공 <나>의 이야기를 빗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기자키란 인물이 구체적으로 추구하는 이상이라든지 목적은 자세히 언급되지 않고, 그가 저지른 듯한 일들만이 간간히 언급되는데, 사실 그러한 것은 책을 읽다 보면 그렇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물론 그가 처음으로 기자키에게 의뢰받은 일에 대해서는 상세히 나오긴 하지만. 결국 책의 흐름에서 주인공 나와 기자키의 일대일 관계에 더 관심이 가게끔 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단절된 세상속에서 깊은 인간관계를 맺어오지 않았던 주인공인 나는 우연히 한 소년과 그의 엄마를 만나며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있어 속박이 되어 버렸다. 기자키가 그 상황을 이용하게 된 것이다. 기자키가 주인공 나를 선택한 이유? 솔직히 말하자면, 이유 따윈 없다. 그때 그곳에 주인공 '나'가 있었을 뿐이고, 기자키는 그들 대상으로 선택한 것 뿐이다.

기자키의 말대로 그의 운명을 조종하는 것이 기자키인지, 기자키에 의해 운명이란 걸 잡히는 것이 그의 운명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주인공 '나'가 기자키의 손바닥 위에서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조종되고 있다는 것 하나뿐이다. 

어둠의 세계에서 살아가던 주인공에게 갑자기 서광이 비칠 일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주인공 역시 자신의 말로가 좋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는 희망을 걸어 보는 것으로 이 책은 끝이 난다. 이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복잡해져 왔다. 그것 또한 기자키가 마련해둔 하나의 장치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요즘같은 세상에 그런 것에 신경쓸 사람, 혹은 신경쓰고 싶어할 사람이 있기나 한 것일까. 스스로 사회와 단절된 삶, 단절된 인간 관계속에서 살아 왔던 주인공이 마지막에 이르러 미약한 끈이라도 연결하고자 하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과연 그의 바람은 이루어질수 있을까.
그는 기자키가 만들어 놓은 운명의 덫을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아니면, 그의 운명은 또다시 독자들의 판단이라는 것에 맡겨진 것일까.

덧> 책 제목인 쓰리에 관한 짧은 생각.
원제인 掏摸는 한자어 발음 대로 읽으면 도모. 일본어로 읽으면, すり(스리)
소매치기란 뜻이다.
사실 원제랑 우리말 제목을 보면서 조금 고민했다.
제목은 도대체 뭘 뜻하는 것이지?
소매치기를 뜻하는 스리를 쓰리로 쓴 것일까, 아니면 기자키가 주인공에게 내준 세가지 의뢰를 뜻하는 쓰리(three)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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