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미나토 가나에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소녀라는 단어에서 받는 느낌은? 이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은 풋풋함과 말간 웃음, 그리고 순수함이란 것이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물론 그것이 소녀를 정의하는 단어의 아주 일부일지라도, 또한 요즘 아이들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를지는 몰라도, 그런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 건 사람마다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 책의 첫장을 편 순간, 그런 이미지는 와르르 무너진다.
누구인지도 모를 유서로 시작되는 이 책은 우리가 생각했던 소녀들의 이미지를 와르르 무너뜨리고 그 속알맹이를 가감없이 드러낸다. 사실 이미지란 것 자체가 겉모습만을 보고 규정하는 것이니 작가가 우리가 가진 생각의 맹점을 사정없이 찌르고 들어 온다고 해도 배신감을 느낄 여유는 없다.

맨앞부분과 맨뒷부분의 유서를 빼고는 모두 두 사람의 일기 형식으로 진행된다. 일기 형식은 두 주인공이자 두 화자의 생각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형식이며, 화자가 교차되는 서술 방식은 주인공 자신의 속마음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일기의 주인공은 유키와 아쓰코. 둘은 흔히들 말하는 절친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서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절친한 사이라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예뻐 보일수는 없다. 유키의 경우 아쓰코를 좋아하지만, 경멸의 시선을 섞어서 아쓰코를 보고 있고, 아쓰코의 경우에도 유키를 무척 좋은 친구라 생각하지만, 반대로 약간의 두려움의 시선이 섞여 있다. 둘 다 검도를 잘해서 검도로 유명한 학교로 진학하려 했지만 유키는 손목 부상으로, 아쓰코는 자신의 실수로 인해 팀의 패배가 원인이 되어 그 학교로의 진학을 포기했다.

이렇듯 서로에 대해 좋은 친구라 생각하면서도 약간은 서로 어긋난 시선으로 서로를 바로 보는 두 사람은 자신들이 진학하고 싶었던 학교에서 전학온 사오리란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묘한 결심을 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가 죽는 순간을 목격하고 싶다는 것. 그러한 순간을 목격하게 되면 또래 집단과는 다른 존재로 거듭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고교 시절까지는 또래 집단과의 집단 생활이 위주가 된다. 물론 대학생이 된다고 집단 생활이 아예 끝나는 것도 아니고, 시회 생활을 한다고 집단과 동떨어져 지내는 건 아니지만, 그것과는 확실히 다른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이 바로 또래 집단이다. 또래 집단의 특징은 그 무리와 동일시 되는 것은 무척이나 싫어하면서도 반대로 그 집단에서 소외되는 것 또한 두려워한다는 특징이 있다. 즉, 자신은 또래 집단에 속해있으면서도 그 또래와는 차원이 다른 특별함을 가지기를 원한다. 하지만 어른의 입장에서 보기엔 다 똑같아 보이고, 그러하기에 이 시기에는 어른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어른도 마찬가지이며, 어른들은 그 시기를 거쳐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이 지나면 그 시기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려들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의 내용을 보면 대부분 자신과 비슷한 또래에 관한 이야기이며, 관심도 그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어른들은 오만하고 거만하며,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나온다. 사춘기란 특성되 있겠지만, 이 나이대에는 어른들을 일단 거부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리라. 또한 어른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것은 일시적이며 감정적인 것 뿐이고, 대부분은 그 순간이 지나면 자신을 위주로, 자신의 또래 집단을 위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유키와 아쓰코의 일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의 내용은 얼핏 여러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크게 보면 큰 줄기를 가진 하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 시기의 아이들의 행동 반경이나 만나는 사람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는 뜻도 된다. 이야기 자체가 뒤로 가면서 너무 딱딱 맞아 들어가서 극적 성향이 너무 강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런게 또 이 책의 묘미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원조 교제나 치한 누명 씌우기 등 십대 소녀들이 가진 어두운 비밀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아주 비뚤어진 십대 소녀들이 저지르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책의 결말을 보면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 여학생들은 유키나 아쓰코 옆에서 웃고 떠들던 그런 평범해 보이는 소녀들이며, 유키나 아쓰코 역시 그들과 별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하는 결말 부분은 오싹하기까지 하다. 특히 아쓰코가 상대에게 가졌던 동정과 연민의 마음이 아쓰코의 현실적인 부분과 맞딱뜨렸을때 이미 지난 과거의 일이 되어 버린다. 아쓰코에게 있어 그것은 찰나적인 감정에 불과했던 것이다. 유키 역시 마찬가지로 또래 집단을 경멸하면서도 그 속에서 낙오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십대의 또래집단은 어찌보면 애증의 관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해사한 얼굴에 말간 미소, 예쁜 꿈을 가진 십대 소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의 어둡고 음침한 부분을 그려낸 소녀. 이 책을 읽으며 섬뜩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이 책의 주인공들은 평범해 보이는 여고생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이들은 스스로 성장한다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아픔과 좌절, 절망을 보면서 성장해 나간다. 또한  또래 집단을 경멸하면서도 그속에 섞이길 원하며, 어른들은 자신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다고 단정지으며, 다른 사람의 아픔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일보다 앞설수는 없다. 이렇듯 어두운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이 부각되어 있어 유키가 아쓰코를 위해 썼던 소설 요루의 외줄타기에 대한 감동이란 부분이 상당히 죽어버린 경향도 있는데, 그점이 무척이나 아쉽다.

하지만, 십대 소녀들의 심리 묘사는 오싹할 정도로 사실적이며, 스토리 역시 조금씩 어긋나 있는 듯 하면서도 모든 것이 결국 하나의 귀결점을 맞는 짜임새 있는 구성은 무척이나 흥미로우며, 한편의 미스터리 소설을 보는 느낌도 준다. 미나토 가나에의 책은 <고백>다음으로 두번째 읽는 소설인데, <고백>에서 보여준 것 만큼의 임팩트는 덜하지만, 오히려 이 책이 더 재미있게 느껴졌던 건 역시 십대 소녀들의 심리 묘사를 사실적으로 해냈다는 부분일 것이다.

이미 나도 십대 시절이 언제였지...라고 생각할 나이가 되어 버린지라 이 소녀들이 가진 마음을 모두 이해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나 역시 십대 시절을 떠올리면 나 역시 또래 집단에 대해 가졌던 마음이나, 절친한 친구에게 가졌던 이런저런 마음이 떠올라 뜨끔해지는 건 사실이다. 물론 내가 보냈던 십대 시절과 지금의 아이들의 보내는 십대 시절은 다른 점이 많겠지만, 또래 집단과의 관계, 어른들과의 관계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른게 없어 보여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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