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기르다 청년사 작가주의 1
다니구치 지로 지음, 박숙경 옮김 / 청년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요즘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에 관심이 많이 간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이 책. 일본에서는 1992년에 초판 발행된 <개를 기르다>는 그 시간만큼 오랜된 이야기이다. 실제로 1990년 끝자락에 세상을 떠난 저자의 반려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그래서 더욱더 가슴에 와닿는다.

개를 기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도 지금 개 다섯마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개를 기른다는 것은 한 생명을 지켜주는 일이며, 그 생이 마감할 때까지 돌봐준다는 의미이다. 나 역시 두 마리의 개를 이미 떠나 보낸 기억이 있어, 이 책의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첫번째로 보낸 녀석은 아직 강아지였지만 장염으로 고통받다가 떠났고, 한녀석은 18살의 나이로 장수를 하다가 갑자기 떠나 버렸다. 강아지였던 바우는 일주일정도 고통스러워하다가 떠났고, 18살의 노령견이었던 가을이는 전날 저녁까지 다 먹고, 다음날 새벽에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그러다 보니 이 책에 나온 탐탐처럼 오랜 기간 투병생활이나 큰 고통은 겪지 않았지만, 그래서 좀 다행이다 싶긴 하지만, 그래도 죽음이란 것의 무게는 너무도 무거웠다.

이 책에는 총 5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표제작인 개를 기르다는 탐탐의 마지막 나날들을 그린 것이고, 두번째 단편부터는 탐탐 다음으로 온 고양이 보로와 보로가 새끼를 낳고 어미가 된 이야기를 비롯해 작품의 주인공의 아내의 조카가 찾아온 이야기가 이어지는 연작으로 봐도 무방할 듯 하다. 마지막 단편인 약속의 땅은 전체적인 스토리 흐름과 동떨어진 이야기였지만, 이는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가 그려내는 자연과 인간이라는 소재의 한 단면을 엿볼수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일단 표제작인 개를 기르다에 나오는 탐탐(일명 탐)은 노령견으로 점점 쇠약해져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단 걷는 것이 불편해지고, 음식을 잘 소화하지 못하게 되는 과정들.. 이는 내가 겪어 보지는 못했지만 동물병원에서 근무할때 간혹 보던 모습이다. 결국 일어서지 못하고 누운 자리에서 배변까지 하게 되는 탐의 모습을 보면서 저자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고통없이 보내는 안락사란 방법도 있었지만, 저자 부부는 탐이 스스로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까지 기다려주었다.

사실 자신의 반려 동물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워하면 그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반려동물도 고통스럽겠지만 사실 그걸 지켜보는 사람 입장도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대신 아팠으면 할 만큼 고통스럽다. 하지만 살려는 의지를 보이는 동물에게 인간이 스스로 판단을 하고 그런 처사를 내리는 것은 어찌보면 부당한 일이다. 탐탐은 생에 대한 의지로 그 힘든 순간들을 버텨냈다. 그리고 부부의 품에서 떠나갔다.

탐을 보면서 1995년에 무지개 다리를 건넌 우리 바우가 생각났다. 내가 집에서 처음으로 키웠던 강아지. 그러나 녀석은 이미 내가 입양을 해올때부터 바이러스성 장염에 감염되어 있었고, 결국 그걸 이기지 못하고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작은 몸으로 고통에 몸부림칠 때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흘렀다. 어떤 식으로 눕든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질렀던 녀석. 지금도 제일 후회스러운 건 잠시 눈을 돌렸을때 그녀석은 무지개 다리를 건너고 만 것이다. 마지막을 지켜줬으면 하는 후회.... 그렇게 아픈데 혼자 떠나게 되어 얼마나 무서웠을까..... 지금도 그 순간이 후회가 된다.

책의 주인공인 저자 부부는 탐을 떠나 보낸 후 생명이 있는 건 다시는 기르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몇달 뒤 난 다른 강아지를 입양하게 되었고, 그녀석은 지금 16살이 되었다. 저자 부부의 경우 우연히 맡게 된 고양이 보로를 키우게 되고, 다시금 동물과의 생활에서 느끼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죽음이란 늘 슬프다. 하지만 추억이 있어 우린 견딘다. 저자 부부도 바로 그런 게 아닐까. 

반려동물을 소재로 한 만화중에는 상큼발랄한 작품이 많다. 대부분 함께 하는 시간의 즐거움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뒤의 이야기는 피하는 경향이 많다. 동물은 인간보다 수명이 짧은만큼, 대부분의 경우 반려인보다는 반려동물이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러한 아픔과 슬픔의 시간을 우린 늘 머리 한구석에서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먼저 세상을 떠날때 잘 보내 줘야하는 것은 반려인의 마지막 의무라고 생각한다.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은 그런 면에서 다른 작품과의 차별성을 보인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사실들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는 것이다. 행복한 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젠가는 이별의 시간이 찾아온다.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은 늘 그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표제작 외의 다른 작품인 <그리고... 고양이를 기르다>와 <마당의 풍경>은 탐탐이 무지개 다리를 건넌 후 우연히 맡게 된 고양이 보로와 보로가 낳은 새끼 고양이들의 이야기이다. 주인집에 아기가 생겼다고 버려지게 된 고양이 보로. 이런 걸 보면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속사정은 비슷한 모양이다. 내가 직접 본 케이스로는 십여년을 키우던 강아지를 아기의 탄생과 함께 안락사를 시켜달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쉽게 생명을 버릴까. 사람과 동물의 생명의 무게가 다르다고 생각한 그 사람은 나중에 자신의 아이에게 어떤 것을 가르칠까. 슬픈 그 녀석의 눈을 보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쨌거나 보로는 저자 부부의 집에 와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자신의 새끼를 낳고 돌봐 주던 보로, 그리고 자신의 새끼가 입양되었을때 새끼를 찾아다니던 보로를 비롯해 탐괴 비슷한 나이의 개 마루 이야기까지... 너무나도 따뜻한 이야기들에 가슴이 포근해졌다. 

네번째 단편은 십대 초반 소녀의 성장이야기로 볼 수 있으며, 마지막 단편은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의 큰 흐름을 보여주는 만화인듯 하다. 자연과 인간이란 소재를 사용한 그의 만화에 대한 맛보기였달까. 
어찌보면 세 편의 만화는 비슷비슷한 이야기지만 나머지 두 편은 책의 제목과는 좀 다른 분위기였다. 그래서 한 권의 책에 묶인 이야기치고는 좀 어색한 느낌도 들긴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다니구치 지로가 그리는 작품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었다는 잇점도 있다.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은 이제 시작이지만, 수많은 작품이 있는만큼 기대가 많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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