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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거타임
오가와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오가와 요코의 책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읽은 이래로는 <슈거타임>이 처음이다. 노박사와 소년의 우정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낸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읽으면서 가슴 한켠이 따스해지는 경험을 했었지만, 이상하게 다른 책을 읽어볼 생각도 하지 않은채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서야 이 책을 손에 잡게 되었다.
이 책이 일본에서 처음 출판된 것은 지금으로 부터 20여년전. 꽤나 오래전이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초판 발행된 것이 2003년이고 이 두 작품 사이에도 10년이상이란 시간이 있으니, 작품 성향이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역시나랄까.....
<슈거타임>은 제목도 그렇지만 표지도 무척이나 사랑스럽고 달콤하다. 표지 디자인은 우리나라에서 한 것이니 책 제목에 맞춰 그리 제작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책 내용은 그리 달콤하지는 않다. 달콤한 건 이미지뿐이랄까. 오히려 전반적으로 쓸쓸한 느낌이 들기도 하다.
주인공 가오루는 대학 4년생. 그녀는 3주전부터 기묘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신이 먹어 치우는 음식에 대한 일기. 그러나 그것은 다이어트를 위한 일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나도 이상하게 늘어버린 식욕에 대해 기묘함을 느끼고 쓰게 된 일기다. 그렇다면 그 현상은 왜, 어떤 이유로 시작되게 된 것일까. 몸무게는 단 1g도 늘지 않았지만 식욕은 계속 늘고 있다.
가오루는 평범한 여대생이다. 공부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남자 친구를 사귄다. 일상에 큰 변화는 없었다. 그렇다면 왜?? 가오루는 근래 자신의 주변에서 생긴 일들을 되새기며 이유가 될만한 걸 찾아 보지만 크게 납득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로열 아이스크림과 동생이 이사 오게 된 것.. 정도로 납득을 해 버린다.
책을 읽으면서 가오루란 인물 자체에 관심이 쏠렸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하지만, 속사정은 아무도 몰랐다. 아니 몰라줬다고나 할까,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아버지의 재혼, 새어머니, 의붓동생. 아마도 그때부터 가오루는 자신의 주변에 담을 쌓기 시작했을지도 모르?다. 게다가 평범하지 않은 동생. 그랬다. 동생은 키가 자라지 않는 병을 앓고 있었다.
남자 친구와도 뜨거운 연애라기 보다는 플라토닉한 사랑을 해왔다. 사실 그 또래의 청춘남녀라면 지구를 다 태워버릴 정도의 뜨거운 연애를 하게 마련이지만, 이 두사람은 어찌보면 미적지근한 연애를 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끝나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연애.
사실 그런 연애 방식이란 존재할 수도 있어하고 납득해 버리기도 쉽지만, 남자 친구였던 요시다가 사고로 만난 여자와 함께 러시아의 연구소로 떠나버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 두사람의 연애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가오루의 반응에도 의문이 생긴다. 그녀는 요시다에게 무엇을 바랐던 것일까.
음식을 보면 먹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지 못하면서도 음식 자체에 대해서는 사랑스러운 느낌을 갖지 못한다. 남자 친구가 있으면서도 그와의 관계에서는 사랑스러움을 찾지 못한다. 너무나도 담담해서 가오루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지 그 자체가 의문스러울 정도다.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참고 참고 삭여 왔던 가오루의 감정이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닐까. 어떤 것에도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 버린 건 아닐까. 그리하여 그것이 이상 식욕과 남자 친구의 배신과 이별에도 눈물 한 방울 조차 흘리지 않게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닐까.
전체적으로 너무 담담한 이야기 흐름에 건조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뒤에는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청춘이란 눈부심만을 달콤함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때로는 슬픔도 절망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 후에 남겨진 것은 빈껍데기가 아니라 낡은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껍데기로 무장한 또하나의 내가 있다. 그것도 속이 꽉 찬, 잘 여문...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되어 가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