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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트라비아타 살인사건
돈나 레온 지음, 황근하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돈나 레온의 데뷔작이자 귀도 브루네티 형사 시리즈 제 1편인 라 트라비아타 살인사건. 제목만 봐도 이게 음악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소설이란 느낌이 팍팍 온다. 라 트라비아타는 베르디의 오페라로 '춘희'라고도 불리운다. 실제로 작품의 피해자는 라 트라비아타 공연 중 독극물 중독에 의한 사체로 발견된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은 실제 작가가 베네치아에서 20여년이 넘게 살고 있기에 그 정경 묘사가 무척이나 섬세하다. 또한 끔찍한 사건의 반복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의 피해자를 두고 그 피해자를 둘러싼 비밀을 파헤쳐가는 작품이기에 미스터리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잔인성은 그다지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형사와 용의자들과의 대화, 피해자의 숨겨진 과거와 비밀 추적, 주변인들과의 탐방 수사등이 중심이 된다.
따라서 이 작품 전체를 바라볼 때 고전 미스터리 소설이나 추리 소설의 느낌을 받는다고나 할까. 이는 사건의 결말에서도 뚜렷이 볼 수 있는 특성이기도 하다. 오히려 피해자보다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해 동정심이 유발된다고나 할까.
세계에서 몇 손가락안에 드는 마에스트로 벨라우어.
그는 청산가리에 의해 독살되었다. 그는 왜 죽게 되었으며, 하필이면 오페라 공연중에 죽게 된 것일까.
세상에 다른 사람에게 원한을 받지 않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그게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간에 우리는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고 살아가며, 또 누군가를 미워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이 살인 충동으로 바뀌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추리 소설의 법칙에 따른 용의자를 구분해 보면 제 1순위는 역시 마에스트로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2순위는 마에스트로에게 협박을 받고 있는 소프라노 가수, 그리고 3순위는 그의 과거와 연결된 오페라 가수이다. 이들 중에 범인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숨겨진 누군가가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죽기 전까지 비밀을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지켜진다. 하지만 타살이나 의심스러운 사고로 죽게 된 사람들의 경우, 스스로 원하지 않더라도 과거의 치부가 밝혀지기도 한다. 마에스트로 벨라우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가 만약 천수를 누리고 죽었더라면 그의 떳떳치 못한 과거가 세상에 알려졌을까. 그는 다만 뛰어난 지휘자로서만 기억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죽음 뒤에는 감춰진 무엇인가가 있게 마련. 브루네티는 벨라우어의 현재에서 과거로 그의 행적을 추적해가고, 그 속에서 한 인간이 감추고 있었던 추악한 면면을 보게 된다. 동성애에 대한 극도의 혐오, 자신과 공연하는 가수들에게 받아온 성상납, 롤리타 컴플렉스 등 그에 대해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기가 막힐 지경이다. 어쩌면 이건 이런 예술 방면의 세계가 가진 추악함의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도시 베네치아. 그리고 음악의 향기가 감추고 있던 어둠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과연 마에스트로 벨라루어의 죽음을 둘러싼 그 비밀은 무엇일까.
책의 마지막으로 향해 가면서 조금씩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책의 원제가 가진 의미를 알게 되었다.
결말이 생각과는 달라 약간 놀라긴 했지만, 이런 결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결말이 이 책의 전체적인 이미지에 주는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정통 추리 소설의 맛을 잘 살린 부분이 많았기에 결말보다는 그 전개 과정이 더 흥미로웠던 소설이었기에...
그리고 이 사건의 비밀을 파헤친 브루네티의 성격 역시 모나지 않고 튀지 않아 좋았다고 할까. 형사가 등장하는 추리 소설이 많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탐정의 그늘에 가리거나 아니면 극단적인 성격으로 묘사된 것이 많기에 이런 차분하고 가정적인 형사의 캐릭터도 썩 마음에 들었다.
기존 추리 소설이 가지는 반전이나 특성화된 캐릭터는 없지만, 깔끔한 구성과 내용 전개가 무척 마음에 들었던 라 트라비아타 살인사건. 또다른 작품인 사라진 수녀에 거는 나의 기대도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