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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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는 표지부터 매력적이다. 마치 한폭의 유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책 띠지를 벗겨 쭈욱 펼쳐 놓고 한참을 바라 보았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어둠 속에서 관능적인 보랏빛의 꽃을 피운 나무, 조용히 풀을 뜬는 당나귀, 두터운 커튼을 열어 젖히는 한 처녀의 뒷모습과 그녀에게 비쳐드는 햇살과 눈부신 봄의 풍경과 커튼 뒷쪽에서 그녀를 탐욕스럽게 바라보는 한 남자. 그리고 나무 뒤에 숨어 쭈그리고 앉아 그녀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한 노인의 모습까지...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왠지 이 그림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알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아마도 책에 등장하는 노시인의 마음이 그려낸 풍경이 아닐까 하는....

책의 구성은 변호사 Q, 시인의 노트, 서지우의 일기라는 큰 제목 아래 부제가 붙어 각각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변호사 Q의 이야기의 경우 이적요 시인의 사후 1주기에 그가 남긴 노트를 열어 보면서 시작된다. 즉 현재의 이야기가 된다. 

시인의 노트는 서지우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와 그와 서지우 그리고 은교란 여학생 사이에 있었던 일을 중심으로 기술되며, 시인의 노트인만큼 이적요 시인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된다. 서지우의 일기도 마찬가지로 서지우의 입장에서 씌어진 1인칭 시점이며, 이적요 시인과 그가 겪었던 일에 대한 이적요 시인과는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비록 은교가 1인칭으로 나오는 부분은 없지만, 그녀는 과거에 그리고 현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본문 속에 나오는 인물 중 이름이 언급되는 것은 이적요 시인, 서지우, 은교 그리고 시인의 아들인 얼뿐이다. 나머지는 다 이니셜로 표기되어 있어, 그들의 비중은 얼마 되지 않으며, 얼은 거의 등장하지 많으므로 이 이야기는 이적요 시인, 서지우, 그리고 은교만의 이야기란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들에게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미 그들 중 두 사람은 고인(故人)되어 버렸다. 남은 것은 그들이 남긴 노트와 일기, 그리고 그 일의 중심에 있던 은교란 소녀뿐이었다.

17세의 은교, 69세의 노시인 이적요, 37세의 서지우.
이적요와 서지우는 사제 관계로 이적요는 성공한 시인이고, 서지우는 베스트셀러 소설가이다. 평소 깐깐하며 속내를 쉬이 비치지 않는 이적요를 수발하고 공양했던 서지우와 이적요의 사이에 묘한 균열이 온 것은 은교란 소녀의 출현으로 시작되었다.

노인은 소녀를 사랑했다. 우린 흔히들 사랑에는 나이도 없고 국경도 없다고 하지만, 이럴 경우 대부분 노인네가 노망이 났다고 손가락질을 한다. 띠가 한바뀌만 돌아도 도둑놈 심보라고 하는데, 50여년의 나이 차이가 나는 소녀를 사랑한다니.... 하지만, 사랑이란 그런게 아니던가.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져있다. 바로 그런게 사랑이 아니던가.

이적요 시인은 평생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아들은 하나가 있다. 우연한 관계속에서 태어난 아들 얼. 그뿐이었다. 노시인이 평생 사랑한 것은 자기자신뿐이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자신의 죽음 뒤 자신을 영원히 살아 있게 만들게끔 계획되어 있었다. 어차피 당뇨와 합병증으로 무너져가던 육체였으니 미련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그를 은교란 소녀가 바꿔 버렸다. 그 소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삶에 대한 열망, 사랑에 대한 갈망의 맛을 알아버리게 된 것이다. 또한 질투와 가슴 아픔이란 것도..

노시인의 눈빛은 언제나 은교를 향했다. 그녀와 말을 나누는 것, 그녀를 차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것은 일상의 기쁨이 되었다. 그러나 그 기쁨을 단지 추태와 노망이라 생각한 자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서지우였다. 이적요의 제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라 알려진 서지우. 그 역시 은교를 못내 가지고 싶어 했다. 왜? 도대체 왜?

서지우가 은교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가 난 궁금했다. 정말 사랑스러워서일까, 아니면 늘 그림자처럼 스승의 뒤를 좇아 왔기에 그랬던 걸까. 서지우는 선생님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대의명분을 가슴에 새기지만, 결국 그는 스승을 닮고 싶었던 것 뿐이고, 스승을 이기고 싶었던 것 뿐이었다. 그는 스승의 눈빛은 더러운 욕망으로 가득하며. 시들어 버린 육체는 자신의 것에 비할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점점 더 스승을 웃음거리로 치부해 버린다.

하지만, 서지우. 내가 보기에 제일 추악한 인간은 바로 그다. 그가 보기엔 이적요 시인이 은교에 비해 터무니 없을 정도로 나이가 많아 보였겠지만, 은교의 입장에서는? 은교의 입장에서는 서지우 역시 아버지뻘이나 되는 남자에 불과했다. 게다가 스승의 뒤를 좇기도 바쁜, 그런 남자였던 것이다.

서지우의 일기를 읽으면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더러운 욕망의 눈빛으로 은교를 바라보던 건 누구인가. 바로 그대가 아닌가. 스승을 지키겠다는 것은 거창한 대의명분일 뿐, 너는 스승을 이기고 싶었던 게 아닌가. 스스로를 은교에게 잘 어울리는 상대라 생각한 거만하고 오만한 인간일 뿐이지 않은가. 특히 술집의 F를 시켜 이적요 시인에게 행한 행동은 용서받지 못할 정도로 노시인에게 가혹함을 던져 주었다. 게다가 스승을 배반하고, 스승에게 반기를 들었다. 스승을 좋아하면서도 사랑하면서도 스승의 관심이 은교에게 기울어지는 것을 못견뎌한 것일까. 그래서 은교를 유린하려 했던 것인가.

문득 서지우를 보면서 이런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한담을 나누다가 이성계는 무학대사가 돼지로 보인다고 하고, 무학대사는 이성계가 부처로 보인다는 일화. 사람의 마음이 어떤 것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눈에 보이는 것이 달리 보이는 것이라는 교훈을 주는 이 일화는 서지우가 어떤 감정을 마음에 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그의 마음이 추악함으로 덮였기에 그가 보는 것은 추한 것들 뿐이었다고....

사실 시인의 노트와 서지우의 일기만을 통해 진행되는 이야기이기때문에 정작 당사자인 은교의 마음은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그들은 그들의 생각만으로 자신의 사랑을 주장했고, 상대를 바라 보았으며, 은교를 대했다. 결국 은교의 마음이 처음으로 드러난 것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였다. 물론 본문에서도 어느 정도 짐작이 되긴 하지만 확정적인 것은 역시 마지막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 은교가 통곡하며 뱉어낸 이야기에선 이런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오누이가 고개를 넘어 가다 갑작스런 비에 옷이 젖어 누이의 속살이 드러나 오빠가 누이에게 욕정을 느끼고 자살했다는 이야기. "달래나 보지"라고 울면서 따라서 자살을 했던 그 누이의 모습에 은교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사람은 언제까지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일까.
아마도 죽을때까지도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늙는다는 것은 육체의 퇴행 현상을 이른다. 하지만 마음은 늙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껏 노인들의 사랑이란 감정은 무시하는 사회속에서 살아 왔다. 그 반증이 바로 서지우란 인물이다. 자신도 늙어 가고 있고, 또 언젠가는 시인의 나이가 되리라. 또한 시인도 은교였을 나이가 있고, 서지우였을 나이를 지나온 존재다. 이는 시인의 노트 호텔 캘리포니아 편에서 잘 드러난다.

평생 사랑이란 걸 모르고 살았고,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한 노인이 처음으로 사랑을 했다. 그것은 정녕 기뻐해야할 일이 아닐까. 그 사람도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이었고, 가슴의 심장이 맥박치는 인간이었다는 반증이기에... 하지만 질투와 시기로 눈먼 남자에게 그것은 욕망의 표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 소설은 시인이 주인공인 소설답게 시와 소설의 일부, 애틋한 노래 가사가 많이 수록되어 있어 소설의 묘미를 더해 준다. 한편 극적인 행간 띄움은 거대한 한편의 서사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름답지만 처연한 단어들과 문장 구사력은 가슴을 절절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적요 시인의 안타깝고 애틋한 마음이 드러날 때는 그러한 단어들이 더욱더 처절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태양 은교를 사랑한 달 시인 이적요.
그리고 그 달을 너무나도 사랑해 그를 닮고 싶어 몸부림치던 남자 서지우.
그들의 이야기는 사랑과 욕망, 질투와 집착, 애증으로 뒤섞여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아름다웠다.
이적요 시인은 일생 단 한 번 꽃을 피운채 죽어 버리는 대나무같은 사람이었다.
비록 세간에 알려진 것은 그의 마음에 숨어 들어 있던 것과 배치되는 것일지는 몰라도, 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대나무같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꼿꼿함과 정열은 그의 심장을 바로 찌르고 그의 몸을 온전히 태워버렸다.

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며 문득 떠오른 생각은 지금 이 나이에 읽을 수 있어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은교같은 나이였다면 이적요 시인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20대에도 이적요 시인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른 중반을 바라 보는 나이, 서지우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 가는 나이에 일을 수 있어 감사하다. 비록 서지우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고, 용서할 수 없었지만, 난 노시인의 사랑과 열정과 갈망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그렇게 생의 마지막에 남은 열정과 열망을 다 태우고 떠날 수 있던 사람이라 부럽기도 하다. 아직 난 그렇게 마음을 다 태워버릴수도 있는 사랑을 해보지 못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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