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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 최고의 쇼
마이크 레너드 지음, 노진선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한 괴짜 가족이 한 달간의 미국 횡단 여행을 결정했다. 18개의 주를 지나면서 총 1만 2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을 캠핑카 두 대에 의지해서 간다는 건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놀라운 일이다. 또한 가족 삼대가 함께 여행을 한다니!!!
사람이 너무 좋아 탈인 아버지 잭, 걸쭉한 입담과 욕설이 특기인 어머니 마지, 그리고 작가 자신, 그리고 그의 아들, 딸과 며느리까지.. 사실 직장에 다니고, 학교에 다니는 사람이 한달여의 휴가를 내서 여행을 한다는 것은 솔직히 무리한 생각이었을지는 몰라도, 이 가족은 그렇게 결정했고, 그렇게 길을 나섰다.
가족이란 자식들이 어릴 때는 유대감이 높지만, 사실 자녀들이 커가면서 그 유대감은 점점 옅어진다. 물론 그것이 더이상 가족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학교 생활, 사회 생활을 하면서 점점 교류의 폭이 넓어지다 보니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점점 줄어 들게 되는 것 뿐이다. 그러다 보면 가족과 자신과의 성격이나 생각이 꼭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다 보면 약간은 소원해지기도 하는 게 또한 가족의 특성이기도 하다.
특히 독립한 자식들의 경우에 더 그렇다. 더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니라면서 자신의 위치를 확실하게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토 면적이 좁아서 이민이라도 가지 않는 이상은 하루생활권에 속하지만, 미국의 경우 워낙 넓은 국토 면적을 가진 나라이다 보니 가족이라도 거리가 너무 멀어 몇 년씩 만나지 못할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점점 그 유대감은 옅어질지도 모른다.
실제로 저자 마이크 레너드 역시 부모님의 전화는 피하기 일쑤였던 불효자이지만, 자신의 첫딸 메건의 출산을 앞두고 부모님을 모시고 일생일대의 여행을 계획한다. 그것은 피닉스에서 시카고까지의 여정으로 편도 1만 2천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여정이다. 가족간에 일정을 맞추기도 힘들었겠지만,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차량으로 이동을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평생을 고생하면서 살아오신 부모님께서 넉넉한 노후도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피닉스의 깡촌에 사시게 된 걸 마음 아파하는 아들 마이크 레너드는 부모님께 최고의 선물을 선사하기로 한다.
레너드 가족의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대부분 과거의 이야기인데, 하나는 저자 마이크 레너드의 개인적인 가족사이고, 하나는 아버지 잭의 이야기로 이것은 미국사와도 관련된 꽤나 범주가 큰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아일랜드 이민자로 미국땅에 정착해서 살아왔던 아버지 잭. 외국인 이민자의 힘겨운 삶과 대공황, 세계대전등을 겪어온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유쾌하게 이야기되고 있지만, 그 속에 깃든 깊은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와는 조금 다르게 저자 자신의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더불어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던 과정, 그리고 아내 캐시와의 사랑 등 지극히 개인적인 역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걸 통해 레너드 집안의 가풍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잘 알게 되었다.
이들의 현재 모습은 여행을 하면서 주고 받는 대화나 그들의 행동등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물론 미국인들과 우리 한국인들 사이의 유머 코드가 다른 점은 분명 있다고는 느꼈지만, 요즘처럼 가족이 해체되는 시대에서 보면 이 가족의 유대감은 부러울 정도다. 물론 이 여행이 그걸 더욱 견고히 만들어 주었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저자가 방송국 일을 하면서 친분을 쌓게 된 사람들과 보내는 즐거운 한때,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교 방문과 가족 묘지 방문등을 통해 아버지와 어머니의 옛날 이야기까지 듣게 된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에게 젊은 시절이 없었다고 생각하기 일쑤다. 그러나 그들도 역시 우리와 같은 과정을 겪으면 나이든 것 뿐. 늘 행복하고 넉넉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또한 성격이 극과 극인 부부였지만, 60년이 넘는 세월을 잘 견뎌온 잭과 마지 부부. 그런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면서 손주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분명 그건 긍정적인 생각일테다. 또한 그것은 여행을 통해 더욱더 공공해졌을 것이고, 그들을 더욱더 사랑하게 되었을 거다.
가족간에 거리감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은 서로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어지는 시기가 오면서부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알려는 노력을 하면 다른 시선으로 보이게 되는 건 당연하다. 레너드 가족은 한 달간의 여행을 통해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더 많이 이해하게 되고,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자신들의 뿌리에 대해 이해하고, 서로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된 것이다.
사실 역사적 인물이 아닌 이상 우리 개개인의 인간은 태어났다가 죽으면서 잊혀지는 존재가 된다. 그런 우리를 기억하는 건 역시 가족뿐이다. 가족들이 그들을 사랑하고 기억하는 한 그들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다.
난 이들의 여행에서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이 장면을 꼽고 싶다. 아버지 잭이 호텔에서 실뇨를 했을 때... 아버지 잭과 어머니 마지는 마치 그런 건 별일 아니란 듯이 웃고 넘어가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노인이 되면 자율신경계 조절 장애로 인해 뇨실금이란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것은 한 인간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이 두 노인은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넘긴다. 이들 부부가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이제 살 날이 얼마남지 않은 노인 부부와 갓태어난 증손주의 만남은 너무나도 뭉클했다. 삶과 죽음은 그렇게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영원히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 가족들 간의 사랑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