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한 짐승들의 바다 (단편)
호시노 유키노부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호시노 유키노부의 작품 중 내가 먼저 읽었던 스타더스트 메모리즈는 우주와 인간의 관계, 그리고 우주에 대한 인간의 태도 등을 묘사한 작품이었다면 멸망한 짐승들의 바다는 지구와 인간, 좀더 좁히자면 자연과 인간의 관계와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묘사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총 5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 역시 내게 충격과 감동을 함께 선사했다. 하지만 역시 내용은 암울하고 무거웠달까. 오히려 그러하기에 현재 인류의 과오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첫번째 단편인 레드 체펠린과 표제작인 멸망한 짐승들의 바다는 동서 냉전 체제, 그리고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바다를 지배해 강대국으로 거듭 나려는 미국과 소련의 이야기와 동시에 동서로 분단된 독일에 마음 아파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멋지게 어우러졌던 작품이 바로 레드 체펠린이다. 북극의 빙하밑을 단숨에 통과하기 위한 폴라리스 작전. 이는 동서로 분열된 세계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싶어했던 미국의 야욕을 그리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핵잠수함 시대, 먼 바다를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최단거리 루트를 통해 상대 국가를 공격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기 위한 작전 폴라리스. 그러기 위해서는 얼음으로 뒤덮인 북극의 바다를 정복해야 했다는 설정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 소련이 가만히 있을리 만무. 소련은 소련대로의 자구책을 강구하는데...

멸망한 짐승들의 바다는 독일의 대형 전함 비스마르크의 최후를 백악기 세상을 지배했던 공룡의 멸종에 빗대어 묘사한 단편이다. 거대한 전함이 아니라 작고 빠른 잠수함, 그리고 항공모함의 시대로 바뀌어 가던 시대. 과거의 유물이 되어 버린 전함은 바닷속으로 침몰한다. 인간이 가진 기술 중에서 전쟁과 관련한 기술이 가장 빠른 발달을 하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인간은 인류 발생 초기부터 전쟁을 하며 살아온 종족이고, 전쟁 기술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종족이 아닐까. 무기의 살상력은 이제 지구를 완전히 날려버릴 정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득 소름이 끼친다.

경귀전은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하다. 모비딕에 나오는 고래가 바로 향유고래의 알비노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일본의 옛날 마을을 배경으로 한 고래잡이들과 남만인의 이야기. 바다는 지구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직 그 깊은 비밀을 인간에게 내어주고 있지 않은 존재다. 그런 바다를 지배하려는 것 자체가 인간의 오만일지도 모르겠다.

아웃버스트는 아마존의 밀림을 배경으로 잃어버린 문명에 관한 이야기이며, 자연의 분노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마존의 밀림은 지금도 벌채로 손상되어 가고 있다. 불을 질러 경작지로 만들고,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은 마구 베어지고 있다. 지구의 허파라고 일컬어지는 아마존. 그러나 그곳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식물에 대한 연구는 채 끝나지도 않은 채 파괴되어 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인간의 추악한 욕망으로 더렵혀져 가는 신성한 숲, 아마존. 비록 이야기에서처럼 그곳에 잃어버린 고대 문명이 잠들어 있을지 어떨지는 몰라도, 인간의 욕망으로 파괴되어 가는 숲이 인간에게 저항하지 말란 법은 없을 듯 하다.

죄의 섬은 읽으면서 가장 착잡한 기분을 느끼게 만든 작품이다. 이 역시 인간의 욕망이 일으킨 죄에 대해 우리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자연은 무한정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인간에게 공짜로 주어진 것도 아니다. 단지 자연의 자원을 우리 인간은 빌려쓰고 있는 것일 뿐인데, 인간은 오만하게도 자연을 자신의 것이라 생각했다. 인간의 욕심으로 멸종되어 가는 생명체들, 그리고 유전자 조작으로 다시 태어난 생명체들.. 인간의 죄는 깊고도 깊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자신들의 죄가 무엇인지 모른다. 이런 식으로라면 자연은 반드시 인간에게 복수를 해올지도 모르겠다. 아니 역습이란 말이 더 옳을지도...

우리는 거대한 자연을 이용하고 그에 기대어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샌가 우리는 자연이 주는 모든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자연을 지배하려고 해왔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 지구의 일부일진대... 오만한 인간에게 있어 자연은 단지 이용대상일 뿐일까. 자연을 공경하고 자연과 공존할 방법을 찾지 않는다면 인류의 미래는 더이상 보장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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