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으로 가츠오부시를 줄게
마토바 치카코 지음 / 니들북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처음 책을 배송 받고 파본과 낙장을 확인하기 위해 책장을 휘리릭 넘겨 보고서는 고양이 화보집인가 하고 생각을 했었다. 그 이유는 책 대부분이 고양이 사진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페이지부터 찬찬히 읽으면서 그게 아니란 것을 알았다.


책 제목인 '상으로 가츠오부시를 줄게'는 저자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의 이름으로 지금은 세상을 떠난 다비드와의 생활에 대한 것을 포스팅했다고 한다. 가츠오부시는 다비드가 특히 좋아하던 것이라 제목을 그렇게 지었고, 다비드가 없는 지금도 역시 그 이름은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비록 다비드는 무지개 다리를 건넜지만, 그들 부부의 마음속에서는 영원히 살아 있으니까.


위 사진은 다비드의 모습이다. 동글동글한 몸매에 동글동글한 눈.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다비드의 모습을 보니 다비드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을때 저자 부부의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반려묘든 반려견이든 간에 반려 동물과 헤어지게 되는 것은 커다란 상실감을 준다. 특히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겪어보지 않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아픔과 상실감을 가져온다. 나 역시 지난해 5월 10일 가을이를 떠나 보냈기에 그 슬픔과 아픔 그리고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를 잘 알고 있다.

저자 부부는 다비드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 후, 다시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고 한다. 사실 나도 처음 키웠던 녀석이 무지개 다리를 건넜을 때, 그 이별의 무게가 너무나도 무거워서 다시는 개를 기르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생각이 난다. 하지만, 난 그후 곧 다른 녀석을 입양하게 되었고, 그후로도 계속 식구가 늘어 한때는 6마리까지 늘었지만 가을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 후 지금은 다섯마리의 개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다비드가 떠난 후 부부는 반 야생 고양이인 텟판에게 위로를 받았고, 저자의 지인이 기르는 고양이 레옹과 레이아를 잠시 돌보면서 고양이와의 생활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를 다시 떠올리게 되고 두 마리의 아기 고양이 앙미츠와 푸텐을 입양하게 되었다고 한다.


세상에 새끼 고양이만큼 사랑스러운 존재가 또 있을까. 동물들의 새끼는 모두 귀엽지만 그중 지존을 뽑으라면 단연코 새끼 고양이가 아닐까.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잠을 자고 있는 푸텐과 앙미츠. 좋은 꿈이라고 꾸는 것인지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다. 이 사진을 보니 문득 저 핑크색 육구를 만져보고 싶다는 충동이!!!


2개월, 3개월이 된 앙미츠와 푸텐. 어떻게 저렇게 자는 모습까지도 똑같을까. 가끔 고양이를 보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들은 자는 모습을 비롯해 행동 양식이 각각의 개체마다 제각각이지만 고양이들은 무척이나 비슷한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저렇게 깊게 잠든 녀석들을 보고 있을 때 얼마나 행복할까. 이럴때 집사와 하녀는 조용하게 있어주는 것이 센스있는 행동!


이 책은 구성이 무척이나 다양하다. 이건 앙푸의 원컷 극장이란 것인데, 말풍선을 넣어 더욱더 재미있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저자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양이와 보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이런 장면들이 아닐까.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앙미츠와 푸텐의 모습들이 가득 담긴 페이지. 사진에 보이는 고양이들의 행동과 표정에서 반려인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보인다. 또한 뷰파인더 너머로 앙미츠와 푸텐을 바라 보는 반려인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가 저절로 상상이 되는 사진들이다.


만다비는 다비드와 함께 했을때의 에피소드를 그린 만화이다. 다비드가 얼마나 영리하고 귀여운지 한껏 느껴볼 수 있었던 페이지들이다. 더불어 반려인의 바보스러움(?)도! 사실 고양이와 있으면 사람은 바보스러워진다. 이건 나쁜 뜻이 아니다. 그것은 고양이의 매력에 흠뻑 빠져 고양이에 길들여지게 된다는 의미랄까.

흔히 하는 말로 사랑으로 받은 상처는 또다른 사랑이 치유를 해준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반려묘를 잃은 아픔은 다른 반려묘가 치유해줄 수 있다. 하지만 저자도 말했듯이 잊으면 안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새로온 녀석들은 이미 잃어버린 반려 동물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새로 데려온 반려묘를 예전 다비드와 똑같이 생각하려 했다면 그건 잘못된 애정이며 비뚤어진 애정이었을 것이지만, 완전히 다른 개체로 인식하고 사랑을 쏟았기에 그들의 애정은 참된 애정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다비드를 잊고 사는 건 아니다. 다비드는 영원히 그들의 고양이로서 그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니까. 물론 앙미츠와 푸텐이 아직 어리지만 그들도 언젠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면 다비드와 함께 그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안식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저자 부부는 다비드를 잃은 아픔과 슬픔과 상실감을 극복하고, 앙미츠와 푸텐과 함께 행복한 삶을 이어 나가고 있다. 만약 이들이 다비드를 잃은 후 다시 고양이를 기르지 않았더라면 다시 이런 행복을 맛볼 수나 있었을까. 행복은 스스로 먼저 찾아 오지 않는다. 행복은 자신이 스스로 찾아 가야 한다. 그리고 행복은 언제라도 재생될 수 있다. 이들의 행복은 앙미츠와 푸텐으로 인해 다시 재생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진 출처 : 본문 中(위에서부터 순서대로 97p, 75p, 40~41p, 55p, 44~45p, 48~49p, 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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