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라고! 생각하는 숲 9
사노 요코 글 그림,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어른이 되면 동화책을 멀리하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왠지 다 큰 어른이 그림책을 보면서 하하하하 하고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이기가 쑥스러워서가 아닐까. 아니면, 애들이 보는 책인데 라고 생각하면서 무시하는 것 때문일까. 난 어릴 때 동화책을 너무너무 좋아해서 책장이 나달나달해지도록 보고 또 보았지만, 어느 샌가 동화책은 멀리하게 되었다. 사실상 주위에 아이라고는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내 손으로 동화책을 구입하는 일도 거의 없지만 요즘은 다시 동화책에 손을 대고 있다. 그 이유는 동화책에는 어른들 책이 가지지 못한 순수함과 따스함이 깃들어 있고,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일상적인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사노 요코의 책은 이번이 두번째로, 첫번째로 읽은 책은 100만 번 산 고양이였다. 그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펑펑 쏟아 냈고,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또다시 선택한 책이 바로 이것이다. 

고등어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한 고양이가 산책을 하다가 고등어 대군단의 습격을 받았다. 어라라? 고양이가 꿈이라도 꾸는 것일까. 갑자기 숲속에 고등어가 왜 날아 왔지?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이 고양이는 고등어를 피해 달아 난다. 하지만 극장에서도 고등어들은 고양이를 둘러 싸고 노래를 부른다. "네가 고등어를 먹었지~~"라고. 극장에서도 헐레벌뗙 도망나온 고양이. 숲속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 고등어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그후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고양이는 "나는 고양이라고!"를 외치면 가던 길을 다시 간다.

줄거리 자체로는 무척이나 간단하다. 하지만 보는 내내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난데 없이 숲속에 날아온 고등어 떼라니. 고등어 군단을 본 고양이가 얼마나 놀랐을까. 그런 고양이의 표정이 너무나도 잘 묘사되어 있다. 새파랗게 질려 모자도 담배 파이프도 떨어뜨리고 도망을 가는 고양이의 모습은 너무나도 절박하다. 또한 고등어들의 노래도 내겐 웃음을 던져 주었다. 사실, 고등어 군단이 떼로 나타난 것도 무서운데 노래를 부르다니. 그것도 "네가 고등어를 먹었지~~"라고 노래를 부르면 얼마나 무서울꼬. 게다가 고운 목소리로.. 고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것은 분명히 멋진 일이지만, 고등어가 아무리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고 해도 고양이에겐 위협으로만 느껴졌을 것임에 분명하다.

눈을 감고 도망가는 고양이를 묘사한 페이지는 양쪽 페이지가 모두 새까맣게 칠해져 있어 실제로 눈을 감고 뛰는 모습이 연상된다. 특히 극장안을 둘러 보다가 자신의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고등어들이 줄지어 다시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보면서 난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실제로 당하면 정말 무서운 일일테지만, 보는 나로서는 웃음이 참아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고양이는 고양이! 고양이로 태어난 이상, 고등어를 좋아하는 취향이 있는 이상, 고등어들의 노래에도 바뀌는 것은 없다. 고등어들이 아무리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한다고 해도 자신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몇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고양이의 관점이고, 하나는 인간의 관점에서 본 이야기이며, 또다른 것은 고양이와 고등어의 관계, 즉 먹고 먹히는 관계의 이야기이다.

첫번째로. 고양이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고양이로 태어난 이상은 어쩔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주위에서 뭐라고 해도 고양이는 고양이인걸... 게다가 고등어들에게 쫓기던 수난의 시간이 끝나고 모자와 담배 파이프를 주워 들어 다시 옷매무새를 말끔하게 하는 장면은 고양이의 습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해서 무척이나 즐거웠다. 사실 고양이들은 깜짝 놀라거나 당황하는 일이 있어도 금세 아무렇지도 않은듯 도도한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것 역시 고양이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태어나서 자라면서 형성해온 성격이랄까, 근본적인 어떤 것은 웬만한 경우에는 바뀌지 않는다. 물론 노력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근본적인 것은 거의 그대로 남는다. 억지스럽게 남에게 맞추는 생활로 괴로움을 얻기 보다는 자신의 근본적인 성격을 잘 파악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삶 쪽이 훨씬 좋다고 생각한다. 고양이는 태어날때 부터 고양이. 우리 역시 태어날 때부터 자신으로 살아가는 삶 쪽이 더 행복하고,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본 약자와 강자의 이야기.
사실 자연계의 먹이 사슬 관계에서 누군가는 먹고 누군가는 먹히게 된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늘 먹는 쪽이지 먹히는 쪽은 아니다. 그러하기에 먹히는 쪽의 약함을 업신여기고, 당연시여기는 부분도 있으며, 나아가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강한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또한 나보다 강한 사람에게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약육강식의 세계,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서로 반대되는 입장의 차이점도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짧은 동화이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나는 고양이라고!
간결한 내용과 유머스러움, 그리고 여러가지 상황을 잘 묘사해낸 그림등은 보는 내내 즐거움을 주었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할 꺼리도 던져 주었다. 사실 동화란 것은 받아 들이는 사람 나름의 입장이 형성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 역시 고등어와 고양이의 관계에 미루어 봤을때 고양이의 입장이다 보니 고등어들의 입장을 잘 헤아리지 못한채 고양이의 모습만을 좇았다. 결국, 이런 동화들은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을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는 아주 귀중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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