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애보 3
윤지운 외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순애보 2권이 BL물이라 3권 역시 그런줄 알았는데, 순애보는 각 권의 코드가 책마다 다른듯 하다. 순애보 3권의 코드는 고전 + 비극.
고전과 비극이라.. 사실 그 두 가지 만큼 잘 어울리는 소재도 없다고 생각한다. 왠지 지금 이 시대는 비극이란 소재와 어울리기엔 이질감이 드는 건 사실이니까. 비극이 존재한다고 해도 왠지 어설프다거나 애틋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달까. 그래서 그런지 역시 비극은 고전이란 생각이 든다.

순애보 3권은 총 6명의 작가의 다섯 작품이 실려 있다. 남녀 사이의 로맨스와 비극을 그린 작품도 있고, BL물이면서 비극을 그린 작품도 있다. 그러나 고전이란 요소에는 판타지적 요소도 있기에 판타지 풍의 작품이 주류를 이뤘다고나 할까.

첫작품인 윤지운 작가의 월궁(月宮)은 중국 신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로, 바로 예(羿)와 항아(嫦娥)의 이야기이다. 천인이었던 그들이 천계에서 쫓겨나 인간계에서 생활하면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그들 사이의 사랑이 결국 비극으로 끝을 맞게 된다.
 
예는 항아와 함께 인간으로 영원을 함께 하고픈 생각이었거늘... 항아의 의심이 결국 그 비극을 불러 일으켰다. 그후 월궁에 도피해서 사는 항아의 모습을 보고는 속에서 천불이 나는 줄 알았다. 그것이 항아, 너의 사랑이었더냐. 겨우 그것이 너의 사랑이었던 거냐.... 자신의 사람에 대한 믿음이 겨우 그 정도였던 거냐, 항아. 결국 너는 천인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던 것이냐..... 영원을 산다는 천인들의 사랑도 이럴진대 겨우 백년 남짓 사는 사람들의 사랑은 그리 쉬이 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더냐.....

왠지 씁쓸함이 남았다. 사랑이란게 겨우 그 까짓것 밖에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 속이 상했다. 항아의 사랑 역시 인간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자신만을 사랑하는 여자였을 뿐이다. 그리고 예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월궁에 틀어 박혀 자신의 신세만을 탓하면서 살아가겠지.. 너같은 이기적인 여자에게는 그런 삶이 어울린다. 항아아.

이호델라루나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축복을 받은 생명이 아니라 없애야 할 생명이었던 한 소년. 소년은 짐승이라 일컬어졌고, 짐승만도 못한 대접을 받았지만, 그의 마음만은 세상 여느 인간보다 더 아름답고 깨끗했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또 다른 인간의 추악한 면이 돋보였던 작품으로, 사랑이란게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들어 한치 앞도 볼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존재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사랑이란 언제나 밝은 부분만을 보여주진 않는다.

비밀 역시 판타지풍의 작품이다. 그리고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앞선 두 편의 작품이 남녀의 로맨스에 바탕을 둔 작품이라면, 강혜진 작가의 비밀과 이시영 작가의 그리고... 는 BL물이다. 그리고 이 책에 수록된 작품중 이 두 편이 BL물이었다.

비밀은 비밀지킴이와 한 왕의 사랑을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판타지 성향이 굉장히 강한 작품이다. 다른 이의 비밀을 듣고 그 비밀을 간직해야할 비밀 지킴이. 그리고 왕이 그 비밀지킴이에게 말해 준 비밀... 무척이나 가슴 아픈 작품이었다. 사랑이란 언제나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그리고.. 는 순애보 2편에 수록되었던 그러나.. 와 같은 구조를 가지는 작품이며, 같은 등장 인물이 나오기는 하지만 설정이 좀 다르다. 그러나.. 의 경우 일본인 남창 후유키와 일본 이름으로 하루키란 이름을 가진 조선인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었고, 조선인 K가 보답받지 못할 사랑의 아픔을 당한 인물로 그려졌다면, 그리고..의 경우 K가 일본인으로 나온다. 이름은 키요시. 여기에서는 재미있게도 일본인 K와 조선인 윤호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보답받을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을 당하는 것은 후유키. 이 작품이 3부작 시리즈로 나온다고 하는데, 4권에서 또다시 이 엇갈린 사랑을 볼 수 있게 될까?

마지막 작품인 애(哀)는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비극 작품이다. 조선의 종묘사직을 지켜오던 종족 구미호. 한 임금을 사랑해 그를 잊을 수 없어 그의 피가 남긴 구슬을 몸에 지니고 그 임금을 다시 불러 오려 했던 한 구미호 명. 사람의 사랑은 한때에 불과하나 사람이 아닌 존재의 사랑은 어찌보면 사람보다 더 깊고 애틋하다. 그래서 가슴이 더 아프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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