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4
다비드 쇼벨 지음, 신윤경 옮김, 사비에르 콜레트 그림, 루이스 캐럴 원작 / 세미콜론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요즘 다시 난 앨리스에 푹 빠져들었다. 작년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완판본인 주석 달린 앨리스 시리즈 를 읽었고, 얼마 전에는 헬린 옥슨버리의 그림으로 그려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었다. 헬린 옥슨버리의 앨리스는 존 테니얼이 그린 앨리스와는 또다른 느낌의 소녀라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이번엔 그래픽 노블이다. 사실 그래픽 노블이란 장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래픽 노블이라고 하면 주로 헐리우드 액션 영웅들의 이야기가 많아서 여자인 나로서는 왠지 구매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내가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표지를 봐도 이제까지와는 다른 모습의 앨리스. 책을 받아 든 순간부터 내 가슴은 두근거림으로 고동치기 시작했다. 앨리스의 캐릭터도 이렇게 달라졌는데, 다른 캐릭터들의 모습은 어떨까, 대부분이 그림으로 이루어진 그래픽 노블에서 앨리스 이야기는 어떻게 표현될까 등 내 머릿속은 앨리스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게 되어 버렸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첫 장을 열었다. 전체적으로 다소 어두운 감은 있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앨리스의 환상적인 모험에 대한 이미지를 더욱 높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제껏 봐왔던 앨리스보다는 약간 성숙한 모습의 검은 머리 앨리스였지만, 이런 앨리스의 모습도 무척 매력적이었다. 

토끼굴에 떨어진 후 하트 여왕님의 파이 사건까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그래픽 노블은, 그림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래픽 노블의 특성상 이야기가 좀 축소되어 있는 편이었다. 게다가 앨리스 시리즈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동음이의어를 사용한 말장난이 거의 없어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게다가 생쥐와 앨리스의 대화에서도 말장난에 대한 설명이 아예 없어서 앨리스 시리즈 완역본을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게 뭘까 하고 궁금해 할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앨리스에 나오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변신 모습과 글로서만 상상해야했던 세세한 부분들을 모두 그림으로 즐길 수 있었다는 점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또한 이야기는 축소된 경향이 있지만 새로 각색하지 않아 원작에 최대한 충실하게 만들어졌다는 점이 돋보인다.  


사비에르 콜레트가 그린 그림은 정말 환상적이다. 특히 우울한 쐐기벌레를 이런 식으로 그려낼 줄이야... 마치 우주 한가운데 떠 있는 듯한 이 그림을 보고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왠지 나른한 모습의 쐐기 벌레.. 그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 하다.
그러나! 난 오른쪽 위에 있는 그림을 보고 푸하하하핫하고 웃어버렸다. "넌 누구냐" 의 앞뒤만 바꾸면 영화 올드 보이에 나왔던 "누구냐, 넌" 이란 대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저 음험한 표정의 쐐기벌레... 웃지 않으려야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쐐기벌레의 배경에 있는 꼬부라진 고사리 모양의 언덕은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에서 해골 잭이 서있는 언덕의 모습과 비슷한 느낌을 줘 무척이나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을 때는 먼저 체셔 고양이를 찾는다. 체셔 고양이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존 테니얼, 헬린 옥슨버리의 체셔 고양이와는 또다른 느낌의 체셔 고양이. 특히 조금씩 모습이 사라져 웃는 입만 남는 이 장면은 너무도 잘 표현되어 있다. 체셔 고양이의 몸색깔도 평범한 고양이가 아닌 정말 '이상한' 나라에만 존재할 것 같은 고양이의 모습이었다.


체셔 고양이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몇 몇 장면에 등장하는데, 그중 처음은 공작 부인의 집이었고, 그다음에는 숲속에서, 그다음은 여왕님의 크로케 경기이다. 그중 난 이 장면을 제일 좋아하는데, 길을 헤매는 앨리스가 체셔 고양이에게 조언을 구하는 장면이다. 늘 이 장면을 보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이 고민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길을 선택해야할까 하는 고민이랄까. 그러나 체셔 고양이 말대로 그건 누구에게 물어봐서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해결해야 할 일이란 걸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캐릭터중 가장 포스가 강력한 캐릭터는 누구일까? 당연히 하트의 여왕님이 아닐까. 수시로 목을 쳐라!! 를 남발하는 하트의 여왕님. 평소 보던 하트의 여왕님과는 다른 색다른 하트의 여왕님 모습을 보라.. 내가 알고 있던 하트의 여왕님은 뚱뚱한 몸매에 거만한 표정이었는데, 여기에 나오는 하트의 여왕님은 비쩍 마른 몸매에 신경질적인 표정을 하고 있다. 정말 이 하트의 여왕님 눈밖에 나면 목이 달아날까 심히 두려워진다.


이 장면도 보다가 웃음이 터져버린 것 중의 한 장면이다. 그리폰과 가짜 바다 거북이 바닷가재 춤을 추는 장면인데, 나중에 앨리스와 함께 셋이서 춤을 추는 장면을 보면서 모 개그 프로그램에 나왔던 리마리오 춤이 생각나 버렸다. 어찌나 웃었던지.... 비록 그리폰과 가짜 바다 거북 편에 나오는 말장난 파트가 대부분 생략되어 버렸지만, 이런 즐거움덕분인지 아쉬움은 훨씬 덜했다. 

이야기가 축소 생략된 부분을 생각하자면 완판본을 보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픽 노블이란 것의 장점을 떠올린다면, 그런 아쉬움은 사라질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번역에 충실한 작품을 읽고 싶은 사람은 그런 책을 읽으면 되고, 그런 책을 이미 읽은지라 색다른 앨리스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분명 큰 만족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환상적인 색감과 다양한 캐릭터들의 새로운 모습은 큰 즐거움이다.
 
앨리스는 오랫동안 읽혀온 소설이지만, 놀라우리만치 풍부한 상상력으로 똘똘 뭉쳐진 작품이다. 그러하기에 이렇게 다양한 모습의 앨리스가 존재할 수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앨리스의 모험은 비록 앨리스의 꿈속에서 일어난 일인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늘 그런 꿈을 꿔왔다. 어딘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환상적인 사건들이 펼쳐질 환상의 나라. 어린 시절 우리의 꿈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 앨리스는 어른이 된 지금의 나에게도 꿈을 꾸게 해준다. 앨리스는 언젠가 어른이 될테지만, 앨리스는 순수함은 그대로 가진 채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을 어린 아이들에게 나눠줄 것이다. 그리고 어른인 우리에게도 잊어버린 채 살고 있던 꿈을 되찾아 줄 것이다.
 
사진 출처 : 본문 中(26p, 38p, 37p, 49p, 58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