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책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우리는 가끔 유명인들이 "이 책 한 권으로 내 인생이 바뀌었다"라든지 "내 인생의 지침서가 된 책"이라는 말을 언급하는 것을 듣게 된다. 사실 책이란 것이 인간에게 주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지금과 같은 다양한 매체가 존재하지 않던 오래전부터 책이란 것이 인간에게 지식을 전해주고, 역사를 기록해오는 수단으로, 또한 인간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것으로 존재해 왔으며, 지금도 역시 책은 인간 사회에서 다양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 

흔히 하는 말로 책은 마음의 양식라 한다. 하지만 워낙 다양한 책들이 출판되는 요즘 현실에서는 그 말이 정답으로 보이지 않을 때도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위험한 책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본서를 읽기 전에 위험한 책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를 잠시 상상해 봤다. 반유대주의, 독일민족주의를 설파했던 히틀러의 자서전 '마인 캄프(Mein Kampf, 나의 투쟁)'는 유대인 학살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낳았기에 위험한 책일지도 모르겠다. 그외에도 수없이 위험한 책들은 존재하리란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것은 모든 이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책은 아닐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위험한 책이란 단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사람을 선동하고, 체제를 전복을 꾀하고, 국가의 이념에 반하는 그런 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런던에 있는 캠브리지 대학의 교수인 '나'는 동료 교수 블루마의 사후에 배달된 조셉 콘래드의『새도 라인』을 보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여행길에 오른다. 영국 런던에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를 거쳐 라 팔로마까지, 애서가로 유명했던 브라우마의 행적을 좇아 가는데, 그 여정에서 그는 여러 명의 애서가, 장서가, 서적 수집가 등을 만난다.

그는 브라우어를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만나 브라우어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수많은 책을 읽고 사들이고, 결국 자신이 지낼 공간마저도 책에 내줬던 브라우어. 그는 그 나름대로 서적 목록을 정리하기도 하는 등 책에 대한 커다란 애착을 보이며, 때로는 책으로 사람의 모습을 만들어 침대에 뉘여 놓는듯, 보통 사람이 보기에 해괴한 행동을 일삼았다. 그러던 그가 장서 목록이 불타 버린 후 책을 모두 싣고 라 팔로마의 바닷가에서 책으로 집을 짓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 '나'가 그곳에 도착했을때는 브라우어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고, 책으로 만든 집은 파괴될 대로 파괴되어 있었다. 그는 아마도 블루마가 원하는 조셉 콘래드의 책을 찾기 위해 집을 부술 수 밖에 없었으리라...

나도 책을 좋아하고 모으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책장에 빼곡히 꽂혀 있는 책중에서 두 번이상 읽은 책은 거의 없다. 대부분 한 번 읽고 책장에 꽂아 놓은 책들이 대부분이고, 책장은 포화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또 책을 사들이고 있다.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즐기는 것은 분명 자랑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또한 다른 이에게 권장할 만한 일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선은 긋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인 서가가 도서관같은 시스템을 갖춘다거나 - 내가 소장한 책으로는 서가라는 표현도 부끄럽다 -  훌륭한 서재를 만들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은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사랑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일테지만, 그것이 한계치를 넘는다면 그때는 사람이 책을 소장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 사람을 소장하는 형태가 되어 버릴 것이다. 본말전도라고 할까, 주객전도라고 할까. 이 책에 나오는 브라우어는 책에 주도권을 내어준 사람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책으로 만든 집을 파괴함으로써 그 속박과 주박에서 스스로 벗어났다. 책의 표현대로 새도 라인을 넘어선 것이다.

이 책은 책을 소장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책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애정이 사람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사람의 정신적 자유를 속박하는 것들에 대해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시멘트가 묻은 채 배송된 책 한 권. 그 책이 가진 미스터리를 좇아 가는 가벼운 추리 소설 느낌의 <위험한 책>은 얇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책은 책장에 꽂혀있는 상태로 행복감을 느끼게 될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책이란 것이 사람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감안한다면, 내 책들은 무척이나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본문에 나온대로 책은 구매하는 것 보다 처분하는 것이 더 힘들다. 그래서 한 번 읽은 채로 방치되는 책들이 수없이 쌓여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무척이나 고민중이다. 내 책들을 해방시켜 그들이 가야할 곳을 보내는 것이 옳은 일인지, 스스로의 만족감을 위해 책꽂이에 고이 꽂아 놓는 것이 옳은 일인지....

책을 사랑하고 많이 읽는 것은 분영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랑과 애착이 자신의 정신적 자유와 의지를 옭아매는 덫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를 동시에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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