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이제껏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은 7권 가량을 읽었지만, 데뷔작을 읽어 볼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가인데도 불구하고, 신간에만 신경쓰느라 정작 중요한 것은 잊어 버렸던 모양이다. 원래 한 작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의 데뷔작이 궁금해지는 건 당연한 일인데 말이다. 이 책도 사실 그의 데뷔작을 찾아 읽어야지 하는 결심보다는 이런 저런 책을 검색하다가 구입하게 되었다. 1997년에 마흔 살이란 나이로 데뷔한 오쿠다 히데오. 이제껏 읽었던 그의 책들은 배꼽 빠지는 유머와 잔잔한 감동을 함께 주었던 작품이 대부분이었던지라, 데뷔작은 어떨까 싶었다. 존의 수상한 휴가 역시 읽으면서 역시 오쿠다 히데오의 책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후에 나온 책들에 비해서는 유머 코드가 좀 약한 면은 있지만, 오히려 더욱더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책이었다.

그럼 제목에 나온 팝스타 존은 누구일까.
리버풀. 4인조 그룹의 멤버.
그리고 1980년에 살해당한 인물.
이정도만 언급하면 아하.. 하고 무릎을 탁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 팝스타 존은 바로 존 레논이다.
이 소설은 존 레논이 살해당하기 한 해 전, 일본의 가루이자와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를 배경으로 씌어진 소설이다. 이름은 간단하게 존이라고 언급되어 있고, 그의 아내 요코는 게이코란 이름으로, 아들은 주니어란 이름으로 나온다. 물론 가루이자와에서 여름을 보낸 것은 맞지만, 본문에 언급된 그 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모두 픽션이다. 다만 존 레논의 과거에 대해 언급된 것은 알려진 사실과 같다.

그럼 그해 여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존은 그해 여름 알 수 없는 없는 복통과 악몽에 시달린다. 병원에 찾아가 봐도 신경성 질병이란 진단을 내릴 뿐. 그러나 점점 증상은 심해지고, 숨쉬기도 괴로울 만큼의 호흡 곤란 증세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아내 게이코는 존에게 한 명의 의사를 소개시켜 주게 되는데, 그 의사의 진료를 받은 후 부터 묘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20여년전에 일어났던 사건들과 관련된 사람들의 유령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그 사람들 중에는 어린 나이에 치기로 저질렀던 범죄 행각의 피해자도 있고, 학교 친구의 어머니, 자신의 매니저였던 인물, 게다가 키스 문까지 등장한다. 

어라라.. 이쯤되면 이게 현실인지 판타지인지 슬슬 헷갈린다. 뭐,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현실 + 판타지 쯤으로 생각해도 무방할 듯 하다. 실제 인물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또 상당 부분은 작가의 상상이 더해진 픽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유령들은 왜 나타난 것일까. 

그것은 모두 존의 마음속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해했다고 생각했던 선원에 대한 죄책감, 애정결핍을 겪게 만들었던 어머니, 비뚤어진 십대 때의 치기 어린 반항으로 사람들에게 입힌 상처, 인종차별 발언을 서슴치 않으며 상처를 입힌 매니저 등... 그렇다. 존은 이들에 대해 마음속으로는 늘 미안해 하고 있었고, 속에 있는 말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한 채 그들을 떠나 보낸 것을 무척이나 신경쓰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오래되어서, 혹은 사과도 하기 전에 세상을 떠나버린 그들. 그들에게 사과를 하고 싶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던 존의 마음이 일본의 오봉 때와 시기적으로 일치해서 영혼들이 그들 찾아오게 된 것이다. 이미 죽은 사람들이지만, 그들과의 만남에서 존은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청하게 된다. 그것은 분명 신비한 경험이며 존의 마음을 치유해 주는 한 과정이 되었다. 

일본의 오봉(혹은 우란분(盂蘭盆)이라고도 함)에는 조상들의 영혼이 찾아 온다고 한다. 조상을 맞이하는 불 무카에비(火)를 피우면 조상이 찾아 오고, 삼일 후 조상을 배웅하는 불인 오쿠리비(火)를 피우고 조상을 떠나 보낸다고 한다. 이러한 것은 외국인을 주인공으로 하면서도 일본의 풍습을 교묘하게 연결시켜 놓은 설정이라 무척 재미있다. 또한 여기에 등장하는 니테 다리(二手橋)에 관한 이야기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일본에서는 다리를 이승과 저승의 경계로 보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존이 그 다리를 건널 때마다 이상한 일을 겪었던 것은 아마도 그것과 관련이 있는 듯 하다.   

실제 존재했던 인물과 실제 있었던 일, 그리고 작가의 머릿속에서 탄생한 상상의 이야기는 일본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와 섞이면서 무척이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었다. 이는 작가 오쿠다 히데오가 존 레논이란 한 사람의 팝스타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래서 최대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피해를 주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하지만,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아마도 그런 죄책감이 있는 채로 죽는다면 죽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비록 픽션이지만, 존은 그해 여름 자신이 상처입혔고 피해를 줬던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고 용서를 받았으며,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하고, 어머니와의 화해에 성공하게 되었다. 
 
오쿠다 히데오의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는 상실과 재생, 용서와 화해, 그리고 치유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따스한 감동이 있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소설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기도 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사르르 감싸주기도 한다.  
우리가 치유계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편안해지는 것은 누구나 몇 개쯤은 자신의 마음속에 깊에 숨겨둔 상처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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