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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여우 헬렌 ㅣ 쪽빛문고 9
다케타쓰 미노루 지음,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난 동물 이야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동물이 나오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도 좋아하고,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 책 등도 너무나 좋아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것을 고를 때 주저함이 생기기도 한다. 늘 행복한 결말을 맺으면서 끝나기를 바라지만, 결국 그들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다케타쓰 미노루 선생의 책은 이번이 두번째이다. 첫번째로 읽었던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물병원>이란 책이었는데, 그 책은 다케다쓰 미노루 선생이 운영하는 동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살아가는 동물 환자들에 관한 책이었다. 많은 종류의 야생동물이 등장하고 그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들을 야생으로 돌려 보내기까지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 책 <아기 여우 헬렌>은 제목 그대로, 도로변에서 구조된 북방여우 새끼 헬렌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물론 다른 동물 환자들인 참새 준도 잠시 등장 하고, 할머니 여우 멘코도 많이 등장하긴 하지만, 헬렌이 주인공이다.
태어난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은 헬렌은 왜 도로변에 혼자 웅크리고 있었을까. 책에 나온 여우의 습성대로라면 혼자 있을 이유가 없었는데 말이다. 진찰 결과 헬렌은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후각이나 미각 또한 현저히 떨어져 우유를 줘도 고기를 줘도 스스로 먹으려 하지 않았다.
사실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건 어떤 것인지 나는 모른다. 굉장히 힘들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할 뿐이었다. 하지만 수의사 다케다쓰 선생은 직접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헬렌이 느끼는 것을 느껴보려고 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그건 밑도 끝도 없는 어둠속에서의 불안이라고 한다. 아직 한달밖에 안된 헬렌이 자신의 가족과 떨어지게 되어 버린 후 얼마나 불안했을까.
헬렌은 다케다쓰 부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조금씩 우유를 먹을 수 있게 되고, 고기도 받아 먹게 되었다. 우리 안에서 조금씩 움직이기도 하면서 기력을 회복해나갔고, 할머니 북방 여우인 멘코와 함께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헬렌은 눈이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았기에 자신이 우리에서 부딪히지 않고 돌았던 감각을 기억하며 바깥에서도 그렇게 한자리를 맴돌았다고 한다. 그러나 풀에 발이 걸리거나 하면 누군가 자신을 방해한다는 생각을 하는지 풀을 물어뜯고 발버둥을 쳤다. 우리도 만약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멘코와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아기여우 헬렌. 멘코는 뒷다리가 없어 제대로 뛰지는 못하지만 늘 헬렌곁을 떠나지 않았다. 헬렌은 비록 시각과 청각을 상실했지만 멘코의 움직임으로 인한 진동에 반응을 보이며 멘코를 따라다녔다.
사람에게 구조된 이후, 자신의 새끼는 한 번도 갖지 못한 멘코. 하지만 멘코는 이제까지 아기 여우들을 너무나도 잘 돌봤고, 헬렌도 돌보려 애썼다. 하지만 아무런 감각이 없는 헬렌에게는 멘코도 단지 무섭고 두려운 대상일 뿐이었다.
헬렌은 양털위에 누워있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한다. 따스한 엄마품이 그리웠던걸까. 멘코 곁에 있으면 엄마의 체온을 느낄수 있었을텐데... 멘코를 거부하는 헬렌도, 거부당하는 멘코도 너무나 가여워 견딜 수 없었다.
헬렌은 구조된 후 한 달여 만에 발작을 거듭하다가 천사가 되었다. 헬렌이 시력과 청력, 후각과 미각을 잃게 된 것, 그리고 혼자 남아 있게 된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고, 사고로 인한 후유증일수도 있다. 너무나도 짧았던 삶이었다. 헬렌은 구조된 후 한 달여의 삶이 행복했었을까. 사람 입장에서는 돌봄을 받고 사람의 품안에서 떠나게 된 것이 그래도 혼자서 죽어가는 것보다는 행복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헬렌은 한 달전에 구조되지 않았더라면 그자리에서 다른 야생 동물의 공격을 받거나 교통사고로 로드킬을 당했을 수도 있다. 그에 비하면 보호받고 사랑받으며 살았던 마지막 기억이 조금은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헬렌이 발작을 한다는 글을 읽으면서 마지막이 온다는 걸 예감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사정없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서평을 쓰면서도 그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핑돈다. 생명에는 경중이 없다. 오래 건강하게 살다가 죽는 것도, 짧은 삶은 병으로 지내다 죽는 것도 모두 슬픈 일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안타까움과 가여움이 더해진다. 조금만 더 버텨줬으면, 조금만 더 세상의 좋은 점을 더 많이 알고 갔으면 하는 그러한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헬렌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소중함과 더불어 행복과 사랑을 전해 주고 떠난 천사였다. 세상에는 헬렌처럼 우리에게 사연이 알려진 동물들도 있을 것이고, 알려지지 않은채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 동물도 많을 것이다. 어찌보면 외롭게 힘들게 혼자서 죽어가는 동물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비단 헬렌같은 여우뿐 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안심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은 정녕 오지 않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동물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 (93p, 120p, 140p, 15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