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이야마 만화경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수첩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모리미 도미히코는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작가이며, 손가락으로 꼽을 때도 상위권에 들어가는 작가이다. 그래서 신간이 나오기를 목 빼고 기다리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 요이야마 만화경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재빨리 구매했다. 이 책이 손에 들어온 날, 어찌나 가슴이 뛰던지... 만화책같은 알록달록한 표지에 그려진 것들을 구경하느라 한참을 쳐다 보았다. 요번엔 어떤 이야기로 나를 즐겁게 해줄까, 요번엔 또 어떤 등장 인물이 등장할까 등등 혼자서 별별 상상을 다해봤다. 하지만 모리미 도미히코는 언제나 상상 이상의 것을 가져다 주는 작가이다. 그리고 요이야마 만화경 역시 상상이상이었다.

이 작품은 총 6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단편들은 두 개씩 짝을 지워 보면 딱 들어 맞는다. 또한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또한 6개의 단편이 모두 연결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요이야마 자매 - 요이야마 만화경은 어린 자매가 중심 인물로 등장하고, 요이야마 금붕어 - 요이야마 극장은 나와 오토카와, 그리고 나를 위해 색다른(?) 축제를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중심 인물도 등장한다. 요이야마 화랑 - 요이야마 미궁은 야나기와 지즈루, 그리고 그녀의 삼촌이 중심 인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이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조금씩 겹쳐진다. 중심인물이 누구냐로 갈리는 것 뿐이다. 게다가 조연급의 사람들도 많이 등장하니 잠시 집중력을 떨어 뜨리면 중간중간 카메오처럼 등장하는 인물을 놓칠 수도 있다. 이들은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도 처음에 읽을 때는 몇 명의 인물과 몇 개의 사건이 겹치는 것을 놓치기도 했지만, 두 번째 읽으면서 세부적인 것에 대해 거의 대부분을 짜맞춰 볼 수 있었다. 

요이야마 만화경은 그의 전작인 여우 이야기의 기담같은 느낌,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의 평행 세계 느낌, 그리고 태양의 탑이나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에 등장해 수많은 재미를 안겨주었던 청춘들의 이야기 느낌 등이 맛있게 섞여 있다. 특히 요이야마 극장에 나오는 등장 인물중에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에 나왔던 그 대학생들이 다시 출연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혹시 게릴라 연극 풍운 괴팍왕을 기억하시는가? 바로 그것을 연출한 학생들이다. 이렇게 전작에 나온 등장 인물들을 깜짝 출연시키는 것 또한 모리미 책의 또다른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그의 청산유수같은 말솜씨가 전작보다 줄어 들어든 느낌이라 아, 전작과 조금은 달리 차분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요이야마 금붕어의 독특한 포스를 내뿜는 오토카와가 나오고, 요이야마 극장에서 대학생들이 나오는 대목에서는 그의 청산유수같은 언어구사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요이야마 미궁과 요이야마 만화경은 왠지 기담 냄새가 풀풀 풍겼다. 금붕어가 자라서 잉어가 되고, 잉어가 승천해서 용이 된다던지, 끝없이 반복되는 요이야마의 밤, 그리고 인간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만화경등은 기담적 요소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또한 등장 인물이 교차하는 것은 마치 평행 세계를 보는 듯 하다. 각각의 등장인물은 요이야마의 밤에 무슨 일을 겪게 될까. 이런 구성은 마치 6개의 세계가 나란히 펼쳐져 진행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왜냐하면 모든 등장 인물들이 요이야마의 밤을 보내면서 겪는 일은 다르지만, 등장 인물들이 조금씩 겹쳐서 나오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세상이 아니라 긴밀한 연결 구조를 가진 평행 세상으로 보인다. 이런 구성은 작품의 제목과 딱 맞아 떨어지는 것 아닐까.

만화경은 초등학교 때 누구나 접해 보았을 물건이다. 둥근 통 속에 몇 개의 거울을 넣고 작은 종이 조각을 넣고 조금씩 돌리면 그 안쪽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무슨 뜻인지 알수 있으리라. 요이야마 만화경에 나오는 각각의 단편들은 나오는 등장 인물이 겹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사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음에 돌릴 때는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모르는 만화경 속 세상. 바로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모리미 도미히코의 요이야마 만화경이라 할 수 있다.

기온마츠리를 소재로, 그것도 요이야마의 밤을 한정으로 해서 묘사된 6개의 사건들. 길 끝에서 끝까지 노점으로 꽉 차있고, 몰려든 사람들로 복닥이는 마츠리 중에는 왠지 여우탈을 쓴 요괴가 몇 쯤은 섞여 있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듯 하다. 또한 그들도 마츠리를 즐기지 말란 법도 없을 것 같다.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기온 마츠리의 요이야마의 밤. 그곳에는 자신들이 꿈꾸었던 것을 마츠리 무대로 바꾸어 뿌듯함을 느끼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있고, 오래전 행방 불명된 딸을 찾아 하염없이 요이야마를 반복하는 아버지의 모습도 있다. 요이야마의 밤 속에는 환상적인 즐거움과 요사스러운 어둠이 함께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아야 하고, 이세계의 존재들은 이세계에 발을 딛고 살아야 한다. 동생을 찾아 헤매던 언니가 요이야마님을 만나 요이야마님을 따라 가지 않고 동생을 찾아 다시 길을 나서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축제의 시끌벅적함이 선사하는 즐거움, 괴상하고 요상한 캐릭터의 등장이 주는 웃음, 딸을 만나기 위해 요이야마를 반복하는 아버지의 안타까움과 슬픔 등이 이질감 없이 조화되어 있는 요이야마 만화경. 역시 모리미 도미히코의 작품은 언제나 내게 기대 이상의 것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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