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롤 지음, 김석희 옮김, 헬린 옥슨버리 그림 / 웅진주니어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어린 시절 읽었던 책 중에서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도 즐겁고 신나는 책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때 모두 앨리스였기 때문이다. 아이들만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융통성, 그리고 상상의 날개. 앨리스를 읽으면서 앨리스의 모험을 보면서 나도 저런 세상에 가고 싶어라고 생각한 사람은 나말고도 많을 것 같다. 옷을 입고 회중시계를 든 토끼를 보면 쫓아가고 싶어지지 않을까. 물론 어른이 되어 그런 걸 받아 들이긴 힘들지만, 아이였을 때는 그 모든 것이 가능해 보였고, 또한 나도 그런 세상들과 만나고 싶었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앨리스는 이제 기억속에 묻혀 거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너무도 오랫동안 앨리스에 대해 잊고 살았기 때문이리라. 그러다가 주석 달린 앨리스 시리즈를 읽으면서 다시 앨리스의 세상속으로 푹 빠져들었다. 주석이 워낙 세세하게 달려 있어 책 내용보다는 주석에 신경을 쓰면서 읽다 보니 스토리는 정작 기억나는게 거의 없었다. 다음에 또 한 번 더 읽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이번엔 주석이 없는 순수한 스토리만 있는 책을 찾게 되었다. 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또한 내가 먼저 읽은 앨리스 시리즈는 존 테니얼의 그림이었으나, 이번엔 그림 작가도 다르다. 역시 영국인인 헬린 옥슨버리의 그림인데, 존 테니얼의 그림이 고전적인 앨리스를 그리고 있다면, 헬린 옥슨버리의 그림은 현대적인 앨리스를 보여 주고 있다. 처음엔 미국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그림이었는데, 앨리스의 머리카락이나 옷차림이 미국 아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왠지 이건 편견같지만 영국 소녀들 같으면 깔끔한 게 다림질된 퍼프 소매의 원피스에 하얀 에이프런을 착용하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짝 놀라기도 했지만, 새로운 앨리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토끼를 쫓아 굴속으로 떨어진 앨리스의 모험을 그리고 있다. 이곳은 정말 제목 그대로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등장 인물들과 이상한 사건들만이 존재하는 듯 하다. 모든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된다기 보다는 감성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사실 앨리스가 커졌다 줄었다 목만 늘어났다가 목과 발만 있다거나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하리. 모험은 흥미진진하기만 하다.



이 장면은 앨리스가 토끼 뒤를 쫓아 굴로 떨어진 후 커졌다 줄었다를 반복한 후에 생긴 일이다. 거인이 되었던 앨리스가 흘린 눈물에 퐁당 빠졌다가 몸이 흠뻑 젖게 된 동물들과 함깨 코커스 경주를 하는 장면인데, 이 코커스 경주는 정해진 규칙도 없고, 승자도 패자도 없다. 어른들의 세상은 정해진 규칙으로 움직이는 경기만이 존재하고, 승자와 패자는 분명이 갈리게 된다. 이런 걸 보면 어린 시절 산으로 들로 아무런 장애없이 뛰어다니던, 그것만으로 그저 즐겁기만 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이 장면은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앨리스와 미친 삼월의 토끼와 모자장수와 겨울잠쥐의 티타임 장면이다. 늘 시간이 6시에 맞춰져 있는 모자 장수의 시계. 그래서 늘 그는 티타임을 보내야 한다. 모자장수와 앨리스 사이의 대화를 보면 시간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앨리스는 잔꾀를 부려 시간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에 대해 그다지 좋은 것이라 느끼지 않는다. 사실 어른이 되면 어쨌거나 근무 시간이 빨리 가서 점심 식사 시간이 되거나 퇴근 시간이 되길 바라게 되는데, 앨리스는 오히려 어른보다 어른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이 장면은 여왕님의 크로켓 경기 장면이다. 살아있는 홍학이 크로켓 채가 되고, 고슴도치가 크로켓볼이다. 현실에서 이렇게 한다면 동물 학대가 되겠지만, 여긴 이상한 나라가 아닌가? 무엇이 나와도 이상할 게 전혀 없다. 게다가 여왕님과 왕 병사들은 모두 카드인인데, 그게 더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나오는 하트의 여왕님은 수시로 저 놈의 목을 쳐라!! 라고 외치는데, 역시 앨리스에 등장하는 캐릭터중에 가장 포스가 강한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笑)


 
체셔 고양이는 여기에 등장하는 등장 인물(?)들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이다. 특히 체셔 고양이의 웃음과 사라지는 장면은 정말 좋아한다. 존테니얼의 체셔 고양이는 약간 괴기스러웠는데, 헬린 옷슨버리의 체셔 고양이는 뭐랄까 좀더 고양이스럽다고 할까. 좀더 많이 찢어진 입과 많은 이빨은 보이지 않지만, 이 체셔 고양이도 나름의 매력이 가득하다. 난 체셔 고양이와 앨리스의 대화도 무척이나 좋아한다. 특히 체셔 고양이의 대답이 명답이라 생각하는데,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떨지....

이 외에도 불쌍한 도마뱀 빌, 그리폰과 가짜 거북, 우울한 쐐기 벌레 등 다양한 등장인물(?)은 재미를 배가 시켜준다. 또한 중간중간 나오는 재미있는 말장난 - 영어가 함께 씌어 있다 -은 어른들이 읽어도 너무나 재미있다. 이것은 그리폰과 가짜 거북 편에서 최고점을 달하는데, 동음이의어가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렇듯 이곳에서 앨리스는 다양한 등장 인물과 만나게 되는데, 과연 어른이 이런 상황에 직면했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이유는 지난 해 만들어졌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어른 앨리스가 등장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모든 것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조리 상상이며 현실이 아니라고 외친다. 앨리스가 커버리면, 어른이 되면 어린 앨리스가 받아들일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되는 걸까 하는 씁쓸함이 밀려 왔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앨리스의 언니의 생각이 그것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아이에서 어른이 되면서 달라지는 사고 방식 즉, 사물에 근접하는 법과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힘은 오히려 어른이 되면서 미약해진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융통성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은 어쩌면 어린이에 한정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어른이 되어 경직된 사고를 하게 되었다고 풀죽을 건 없다. 우리는 앨리스를 읽음으로 해서 다시 한번 어린 시절의 즐거움을 떠올릴 수가 있으니까. 분명, 우리는 한때 모두 앨리스였다. 이는 우리가 지금 잊고 사는 것일 뿐이지 없어진 사실은 아니다. 어른이 되어 다시 앨리스와 만났을 때, 난 다시 앨리스가 되었다. 이상한 나라에서의 모험은 모두 자연스럽게 받아 들일 수 있고, 더 나아가 그것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오랜 시간 동안 명작으로 읽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앨리스로 살고 있는 아이들에겐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해주고, 지금은 어른이 된 우리가 어린 시절 꾸었던 아름다운 꿈같은 순간들을 떠올리게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사진 출처 : 본문 中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44~45p, 118~119p, 136~137p, 106~107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