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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돌
이시다 이라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이시다 이라의 소설은 이번이 세번째이다. 첫번째는 성장 소설이었던 4teen이었고, 두번째는 사랑의 여러 가지 모습을 담은 1파운드의 슬픔이었다. 두 작품 다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고, 무척 좋은 인상으로 남아 도쿄 돌도 아무 망설임없이 선택했다. 또한 표지나 제목 자체가 눈길을 잡아 끌 만큼 인상적이었다.
게임 크리에이터와 게임 캐릭터의 모델이 되는 여성 사이에서 생겨나는 사랑. 왠지 이것만 보면 뭐 그다지 별 것 없는 소설처럼 느껴지긴 한다. 하지만 게임 제작이란 능력 외에는 일상 능력이 거의 상실되고,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사는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는 설정 자체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게다가 그 여자에게는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특출한 능력까지 있으니 이야깃 거리는 충분한 셈이다. 또한 연애 이야기에서 늘 양념처럼 첨가되는 삼각 관계, 남자의 우유부단함도 추가되어 있다.
사랑 이야기 외에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창작자의 고뇌나 힘겨움을 보여 주는 점이나, 작은 회사가 대기업에 점차 잠식되어 가는 모습, 처음의 이상이나 꿈을 버리고 자본을 쫓아하게 되는 동료들의 모습등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또한 게임 크리에이터인 MG가 게임 캐릭터의 모델이 된 요리와 함께 도쿄의 밤거리 곳곳을 다니면서 촬영을 하는 모습이라든지 풍경 묘사는 무척이나 섬세하다. 그래서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던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진짜 사랑이란 것을 하게 된다.. 설정은 이랬던 것 같은데, 뒤로 갈수록 남자의 마음이 흐지부지해진다. 물론 사랑이란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임에 분명하지만, 고작 그렇게 흔들리고 마는 것이 진실한 사랑일까. 안정된 사랑과 격정적으로 몰아치는 사랑,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은 물론 이해가 된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 가운데 선택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MG의 모습은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다. 또한 MG의 회사를 손에 넣으려는 거대 회사의 움직임이 너무 쉽게 봉쇄되었다는 것도 이해가 안된다.
분명 한 장면 한 장면의 묘사는 아름답고 역동적이며, 그들의 사랑은 위험하면서도 격정적이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뿌리가 얕아 거센 바람이 불면 쉽게 쓰러지고 마는 카드로 만든 집처럼 보인다. 게다가 요리를 인형으로 취급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요리는 인간이요, 요리를 모델로 만든 게임 캐릭터가 MG가 창조한 인형이란 생각이 든다. 요리 역시 스스로를 MG의 인형이라 말하는데, 작품 전체를 통해 드러난 요리의 성격과는 다소 맞지 않아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작품 속에는 피그말리온 신화가 언급되어 있지만, 피그말리온의 이야기와는 비교 불가이다. MG와 요리의 사랑은 피그말리온의 사랑과는 비교조차 될 수 없을 정도로 얄팍하다.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너무나도 사랑한 남자 피그말리온. 그의 사랑은 깊고도 깊어 신까지도 감동시켜 그 조각상을 인간 여자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MG와 요리의 사랑은 기껏 인간인 나조차도 감동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둘의 관계에 대해 실망감을 줄 뿐이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났을 때, 밀려오는 허무와 공허.
도쿄 돌은 텅빈 정신의 소유자들의 사랑 이야기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