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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네이크 스킨 샤미센
나오미 히라하라 외 지음 / 황매(푸른바람)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처음에 책 제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스네이크스킨 즉, 뱀가죽을 사용한 샤미센이라.. 샤미센은 일본 전통 악기로 중국의 샨시엔이 일본 오키나와(류큐)로 들어와 개량된 것으로 원래는 고양이 가죽을 사용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개가죽을 사용하는 것이 많다고 하지만 어쨌거나 뱀가죽이든 고양이 가죽이든 개가죽이든 다 고개가 설레설레 내저어진다. 아무리 전통 악기라 해도..
그 소재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제목을 봤을 때 일본 전통 악기를 제목으로 내세운 것으로 봐서는 일본인과 관련된 이야기임에는 분명하다. 작가인 나오미 히라하라는 일본인이지만 재미 일본인이니 그런 점도 작용했을 거란 것은 충분히 짐작이 된다.
일본계 미국인들의 파티 현장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살해된 사람옆에는 부서진 뱀가죽 샤미센이 놓여 있었다. 과연 이 뱀가죽 샤미센과 죽은 자 사이에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70대의 노인이자 정원사이며 탐정인 마스 아라이는 이 사건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처음엔 단순한 살인 사건으로 보이지만 이 사건의 이면에는 커다란 진실이 감춰져 있었다. 50년전 사건과 현재의 사건이 맞물려 들어가면서 알고 싶지 않았던,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이 드러난다.
스네이크스킨 샤미센은 추리 소설이다. 하지만 미국에 사는 이민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국은 이민자들을 많이 받아 들였던 나라이지만,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많기로 유명한 나라이기도 하다. 현재는 이민자들의 후손들이 백인들보다 더 많은 숫자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은 백인 중심의 사회이다.
특히 파커 판사가 아라이에게 했던 이야기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생각을 그대로 반영한 것 같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우리가 미국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인디언이든, 캐나다인이든, 남미인이든, 아니면 구리빛 피부에 눈이 갈색인 그 누군가를 말하는 게 아닐세. 미국에서 유서 깊게 내려온 백인들을 의미하는 것이야. 당연히 흑인도 아니지. 우리의 혈족은 독일, 네덜란드, 아일랜드에 퍼져 있는 바로 그 혈족이고 그런 사람만이 진정한 미국인인 걸세. 하지만 자네는 아니지. 물론 자네 친구들도 그렇고. 자네 자식이나 손자야 뭐 더 말할 필요도 없겠군." (417p)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첫발을 대디딘 이민자들. 그들의 후손은 벌써 이민 4세까지 내려갔지만 그들은 여전히 이방인일 뿐이다. 그리고 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과 핏줄이 이어진 동포를 배신하는 일쯤에는 죄책감을 느낄 여력도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은근한 지배에 길들여져 그리고 그 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한 방편이었던 킨조의 선택.
일본의 전통 악기를 소재로 한 이 추리 소설은 어찌 보면 미국 이민자 사회, 그리고 미국 이민법을 고발하는 소설로도 보인다. 샤미센은 오키나와의 전통악기.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점령지였던 오키나와의 전통 악기를 소재로 사용한 것은 작가의 의도적 장치로 보인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작가가 미국계 일본인으로 살아 오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처럼도 보인다.
미국 이민자 사회의 문제는 여기에서 다루어지는 미국계 일본인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백인들, 특히 영국에서 건너온 청교도들의 후손이 아닌 사람들은 모두 미국땅을 떠도는 이방인일 뿐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소설의 내용이 미국계 일본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해도 충분이 납득이 간다. 첫 도입에서 초반부까지는 약간 지루한 면은 있었으나, 중반부로 가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과거의 진실, 그속에 깊숙히 숨겨져 있던 비밀이 드러나면서 금세 몰입된다. 비록 사건은 해결되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 이민자들의 실태가 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백인들의 백인 우월주의가 살아 있는 한.. 그래서 더더욱 현실적이지만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