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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물고기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노벨 문학상 수상작.
이 단어를 보면서 먼저 떠올린 것은 어려운 책이 아닐까 하는 걱정스러움이었다. 국내 문학상을 받은 책 중에도 난이도가 높아서 읽으면서 절망스러운 기분을 느꼈던 때가 종종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금 물고기는 술술 읽힌 편이었다.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이 소설의 스토리가 가진 흡인력에, 작가의 필력에 금세 책 내용에 몰입되었다.
황금 물고기는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 납치된 후 팔려 가게 된 소녀 라일라. 그녀는 납치되는 순간 이제까지의 기억을 모조리 잃어 버렸다. 자신의 이름조차도 잊어버렸을 정도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소녀는 랄라 아스마를 만나 공부를 손녀처럼 키워지고 공부도 하게 되었다. 팔려온 인생치고는 그래도 괜찮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행복도 잠시. 랄라 아스마는 노환으로 인한 병으로 사망하고 라일라는 랄라 아스마의 아들과 며느리의 집으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학대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라일라는 결국 그들곁에서 도망을 쳐나왔다. 이것은 라일라의 끊임없는 방황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라일라는 도망친 후 여관에서 자밀라 아줌마를 비롯한 여섯 공주(아마도 창녀들)과 함께 살아 가면서 다시 공부를 하게 된다. 하지만 라일라를 돌봐 주거나 라일라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늘 그녀를 구속하려하고 자신들 곁에 두고자 한다. 그러나 라일라는 한 곳에 머룰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들의 투망으로 부터 도망쳤다.
라일라는 밀입국이란 방법으로 파리로 건너가고, 그후엔 다시 이탈리아로, 또다시 미국으로...
그녀는 계속 자신을 덮쳐오는 그물을 피해 도망을 다녔다. 라일라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도움을 받고, 그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라일라가 원하는 것은 구속이나 정체가 아니었다. 그녀의 여행은 자신의 본질, 뿌리, 근원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채, 랄라 아스마가 지어준 라일라라는 이름만을 가진 소녀는 수많은 도시를 거쳐 수많은 사람을 거쳐 결국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라일라는 새로운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모든 것은 자신의 뿌리로 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
라일라의 여정은 늘 고달팠다. 물론 그녀를 도와준 손길도 많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그녀를 자신들의 손안에 두고자 함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라일라의 여정에서 이젠 그만 정착을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때도 많았다. 이젠 고생을 안하고도 살 수 있을 정도가 된 것같은데, 왜 라일라는 끊임없이 도망을 치고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대충 남들처럼 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건 아마도 내가 누군지, 나의 뿌리, 나의 근원이 어딘지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라일라처럼 자신이 누군지, 어디에서 자신의 근원이 시작되었는지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멈추기 전에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황금 물고기를 읽는 순간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만큼 섬세한 소설이다. 라일라가 기뻐할 때, 라일라가 절망하고 슬퍼할 때, 그 모든 순간을 늘 라일라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라일라가 아프리카 인들의 북소리를 들으며 심장이 맥박치던 순간, 라일라가 노래를 부르고, 라일라가 시몬느에게 배운 춤을 추던 순간이 눈앞에 그려 진다. 그 모든 것은 라일라를 라일라가 시작된 순간으로 끌어당기던 순간이었고, 시작의 표지가 아니었을까.
라일라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한 마리의 연어처럼 보였다.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가기 위한 연어의 힘찬 펄떡임. 라일라는 빛나는 한 마리의 물고기였다. 그녀를 잡기위한 그물과 올가미를 피해 헤엄치던, 탁류 속에서 빛나는 한 마리의 황금 물고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