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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소리 - 일본 ㅣ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나쓰메 소세키 외 지음, 서은혜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평점 :
일본 근대 문학은 아직 많이 접해 보지 못했지만, 현대 문학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물론 현대 사회와 근대 사회의 차이점이 크기도 하겠지만, 사고 방식 자체가 현대인들과는 좀 다르달까 그런 느낌을 많이 받는다. 하긴 메이지 유신 자체가 일본과 일본인들에게 있어 큰 사건이었을 것이고, 그후로부터 급속이 진행된 근대화는 사회적으로 여러가지 큰 영향을 끼쳤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책 목차를 보면서 내가 아는 작가가 누가 있을까하고 세어 보니 나쓰메 소세키, 타니자키 준이치로, 시마자키 토손 그리고 카와바타 야스나리 정도였다. 그중에 직접 책을 읽어 본 작가는 나쓰메 소세키가 유일하다. 카와바타 야스나리의 경우 그의 원작으로 만들어진 설국을 영화로 봤고, 타니자키 준이치로는 슌킨쇼에 대해 줄거리만 파악하고 있는 정도이다. 시마자키 토손의 경우 우연한 기회에 이름을 접하게 되었을 뿐 실제 작품은 잘 모른다.
일본 근대에 대한 배경 지식도 희박하고, 여기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거의 접하지 못한지라 걱정이 많이 되었다. 시대가 다르면 이해의 폭이 확실히 좁아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껏 접해본 작가들이 아쿠카타와 류노스케나 다자이 오사무의 경우 사소설 경향이 강해서 작가의 생애를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겁만 내고 있어서는 아무것도 안되는 법. 한 단어도 놓치지 않기 위해 평소보다 더 느린 속도로 책을 읽어 나갔다. 또한 하나의 단편이 끝날 때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음 작품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현대 소설과는 다른 느낌이라 연달아 읽기 어려웠던 점도 있긴 하다.
쿠니키다 돗뽀의 대나무 쪽문은 당시 사회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빈부의 격차라고 할까. 물론 현대 사회도 빈부의 격차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근대 사회는 그 나름대로의 격차가 컸다. 대나무 쪽문으로 겨우 이어졌던 빈자와 부자의 가느다란 연결점. 그건 대나무 쪽문처럼 부서지기 쉬운 것이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이상한 소리의 경우에는 처음엔 괴담처럼 보였는데, 똑같은 현상도 받아 들이는 사람의 사고 방식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위장병을 앓았던 나쓰메 소세키는 말년에 접어 들어 투병을 계속했었고, 그러한 자신의 경험이 들어간 소설을 많이 쓰기도 했다. 왠지 병원이나 병이란 소재가 들어가면 나쓰메 소세키와 겹쳐보이는 건 나만일까.
시가 나오야의 오오츠 준키치는 당시에도 남아 있던 계급 제도와 차별에 관한 이야기인데, 지금은 계급 제도가 없어졌다고 하지만 돈 자체가 계급을 나타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현대 사회도 근대 사회와 별반 다른 게 없다 느껴졌다. 미야모토 유리코의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 역시 당시 극심했던 빈부의 격차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가 한 행동은 어찌 보면 순진하고 어찌 보면 이상주의자처럼 보였다. 뼛속 깊이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부유하게 자란 사람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랴.
타니자키 준이치로의 이단자의 슬픔은 작가가 머릿말에 밝혀 놓았듯이 사소설이다. 가족과의 어긋난 관계, 자신의 재능에 대한 자부심과 그걸 몰라주는 사회에 대한 원망, 뭐든 저질러 놓고 수습은 나몰라라 하는 비뚤어진 근성 등 읽는 내내 한숨이 저절로 나왔던 작품이다. 이런 사람은 현대에도 많지.. 뭐 이런 생각도 들었는데, 그래도 가장 안타까웠던 건 역시 완전히 망가져 버린 가족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시마자키 토손의 클 준비는 부녀가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머니 없이 아버지 손에서 자란 딸이 커가면서 느끼는 위화감과 괴리감이랄까. 그것이 무척이나 잘 표현되어 있다. 아버지는 딸을 인형으로 키웠지만 결국 언젠가는 품을 떠날 존재. 그것은 성장이란 것으로 넘어야 할 고비일지도 모르겠다.
오오카 쇼헤이의 모닥불은 현대 소설이라 해도 믿고 싶을 정도였다. 일종의 법정 소설이랄까, 피의자가 자신의 죄를 담담히 고백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쟁의 상처로 인한 비뚤어진 인격 형성이 나은 비극이랄까. 그것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그녀가 저지른 범죄는 용서받지 못할 죄임에는 분명하나 그래도 안타까운 느낌이 드는 건, 어떤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정신적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전쟁의 피해자였을 뿐이니까.
전반적으로 당시 사회상을 담고 있는 이 단편 소설들은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함으로써 그 재미를 더해준다. 옛날 이야기라고 하면 고루할 것만 같지만, 근대 소설들은 현대 소설과 확실히 다른 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 오히려 그런 점이 더 흥미롭기까지 하다. 특히 현대에 비해 더 억압받으며 살아야 했던 여성들의 삶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일본 현대 소설은 정말 많지만, 근대 소설은 몇몇 작가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접하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아마도 인기가 없다거나 안팔린다는 이유에서 이겠지만, 좋은 작품이 그대로 묻히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렇게나마 여러 작가의 여러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건 무척이나 색다르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앞으로는 이러한 책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또한 창비에서 나온 세계 문학중 같은 동양권인 중국 소설이나 쉬이 접하지 못했던 폴란드나 스페인 문학도 여건이 되면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이 소설 모음집에서 날 가장 당황스럽게 만든 건 일본어 발음의 표기였다. 현재 발행되고 있는 책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표기 방식이 어색했다. 마치 몇 십년전 책을 읽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랄까. 위화감이 많이 드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실제 일본어를 5년 가까이 공부해오고 있는 나는 외국어 발음을 우리나라 발음으로 정확히 옮기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요즘 추세에 맞는 발음 표기를 써줬으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